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0화 (10/200)

< 10 >

아직 새벽빛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산속.

어둠을 틈타 고라니 한 마리가 천천히 낙옆을 뒤지며 주린 배를 채우려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라니는 자신이 뒤적거리던 낙옆도 잊은 채 반대쪽으로 깡충깡충 사라졌다. 고라니가 사라진 적막한 숲속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쭉 뻗은 왼팔이 천천히 감기고, 오른팔이 정권을 내질렀다. 하품이 나올정도로 느린 스트레이트. 하지만 그 느린 속도와는 별개로 소년의 팔은 근육이 움찔움찔 거리며 연식 으드득 거리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오른팔이 감기고 다시금 왼팔이 나아갔다.

이번엔 다른 궤도 쨉을 나아가던 왼손은 안쪽으로 감기더니 훅을 날렸다. 이번에도 느리디 느린 동작이었지만, 소년의 근육은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훅을 날렸던 손이 감기고 이제는 어퍼컷. 그렇게 소년은 같은 동작을 연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엔 어둠의 적막감과 하나 된 듯 느렸던 소년의 동작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얇은 바람막이가 펄럭거릴 정도로 소년의 주먹은 빨라졌다.

훅훅!

마치 바람을 가르는 것처럼 통쾌하게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기의 작은 폭발음마저 들렸다.

머리털부터 시작해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얇은 바람막이는 땀으로 흠뻑 젖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소년은 주먹이 다시금 천천히 느려져 갔다. 마지막은 처음처럼 자연과 하나된 것처럼 느리디 느린 속도.

“후우.”

이마에 물처럼 흐르는 땀을 닦아낸 이는 바로 시우였다.

시우는 등을 펴 숨을 고른 뒤 바위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조식이니 운공조식이니 하는 것들은 알지 못했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명상에 빠져드는 데 이 자세가 가장 좋다는 것은 알 고 있었다.

‘너무 마기에 미처 있었어.’

시우는 며칠전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천천히 빠져들었다.

공마인 덕분에 시우는 벌써 3서클에 올라 있었다. 이계에서의 한번 갔던 길이라 하더라도 너무도 빠른 속도였다.

분노로 무장한 상대와의 싸움은 흑마법사에겐 마나의 바다와 같은 바.

언제쯤이나 찰까 생각했던 서클의 마나는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가득 차 있었다. 넘실거리는 마나가 금세 시우의 머리를 찔러 들어와 시우는 그 쾌감에 스스로를 억제하느라 고생을 했었다.

마기를 다루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할 광기의 가면(Mask of Madness)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무던히도 바로 세웠어야 했다.

더불어 버프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시우는 지난 일주일간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뼈를 잘라 내는 것과 같은 고된 수련을 해야 했다.

흑마법의 대부분 버프는 효과가 강력하고 반응이 빠르며 파괴적이었다. 허나 그만큼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평범한 근육에 마나의 힘을 실어 도움을 주는 타 마법과는 달리 흑마법은 근육과 신경 그 자체의 가속을 건다.

흑마법의 버프 대부분은 정신계의 자극이 포함되어 있는데, 뇌를 빠르게 가동시키고, 근육을 팽창시켜 인간이 평소에 낼 수 없는 미지의 힘을 뽑아내게 되는 원리였다.

이계에서도 고서클의 흑마법사들은 대부분 곱추거나 신체가 무너지는 등의 부작용에 의한 불구가 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달랐다.

팽팽하게 당겨져 피로해진 근육과 신경계의 젖산과 피로물질을 그냥 두지 않았다. 억지로 올린 근육의 팽창에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피로감을 없애고, 충분한 휴식과 넘치지 않을 정도의 영양조절을 통해 부작용을 없앴다. 다른 흑마법사들에겐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것들을 일반 기사들이 특수 훈련을 하는 것처럼 역이용 했다.

시우는 버프를 사용할 때마다 그 단단한 근육을 가지게 되고, 신경전달속도는 점점 빨라지게 되었다.

이는 인체에 대한 시우의 지구의 기본상식이 빛을 발했었다. 알게니하 대륙은 마법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였지만, 반대로 인간의 신체 구조나 자연 본연의 모습을 연구하는 이들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마나로 시작하여 마나로 끝나는 곳. 그곳에서 시우는 스스로만이 특이한 수련법을 통해  부작용을 해소 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동료에게도 방법을 알려 주려 했지만, 다들 혀만 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게 일상이었다.

-마법을 연구하는 자가 어디 경망스럽게.

그런 사회의 쓴말들을 무시하고 신체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시우는 얼마든지 부작용을 견뎌내었다. 아니 당대에 가서는 극고의 수련을 쌓은 소드마스터들에 육박하는 건강한 육체미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휴우.”

한차례 명상으로 마기를 가라앉힌 시우는 바위에서 훌쩍 뛰어 내리며 기지개를 폈다. 한쪽 팔을 들어 옆구리를 펴려고 할 때 시우의 눈에 빤짝거리는 돌멩이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어떻게 이게?’

시우의 손에 들린 것은 주먹 만한 평범한 돌맹이였다. 하지만 그 돌맹이를 강하게 내려치자 안쪽은 검은색 일색의 은은한 빛을 비추는 흑석이었다.

알게니하 대륙에서도 일부지역에서 밖에 나지 않는 흑석이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다크 사이드 탓인가?”

흑석은 다크마나가 담긴 마력석으로 주로 흑마법사들이 자신의 보호를 위한 알머스트나 지팡이를 제조할 때 많이 쓰였다. 특히나 다크마나를 각성하는 중엔 일부러 무계열의 마력석을 가져다 후일 자신의 아티팩트 제조에 사용하곤 하였다.

“어디!”

멍한 표정을 짓던 시우는 이제 3개의 고리가 된 서클을 풀어 마나에 공명을 일으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개로 갈라진 흑석은 작게 흔들거리며 시우의 마나에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음 아마도 대기 중의 마나가 이토록 유형화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나중에 마나의 농도를 실험해봐야 겠다.”

시우는 ‘아싸’하는 심정으로 흑석을 품에 넣고, 주위를 더 둘러보았다.

뷰 마나 포스(View Mana Force)

시우의 손엔 어느새 작은 완드가 쥐어졌고,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휘둘러진 완드 끝으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내 마법진은 형체를 사그라트리다가 펑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파장을 일으키며 뻗어 나갔다.

“응?”

더 이상의 흑석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나의 물결 안에서 자연의 것이 아닌 다른 기운이 잡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곳은 커다란 바위 위로 오래된 노송이 나무를 뚫고 나라있었고, 두터운 나뭇잎이 오랜 세월 쌓여 작은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여긴데.”

시우는 주위 나뭇잎을 걷어내고 바위 밑으로 작은 틈을 발견했다. 썩은 나뭇잎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약화, 약화, 약화, 약화, 약화, 약화

시우의 완드는 다시금 춤을 추듯 빠르게 마법진을 그려나갔고, 마법진이 허공에 사라지기 전 수 없이 많은 마법진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잠시 후 바위 위로 천년의 세월을 자랑하던 노송은 썩어서 버석거리고, 바위는 세월을 잊어버린 듯 강도를 잃었다.

마나탄(Magic Bullet)

완드 끝에 모인 작은 마나결정이 퍼석하며 바위에 박혀 들었고, 바위는 힘없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건?”

바위와 노송을 걷어내자 작은 틈은 사람 허리만큼의 작은 공간을 들어냈다.

그 공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자 공간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수분은 적당하고, 온도의 변화는 없고, 이끼하나 끼지 않은 걸 보니 자연이 묘한 조화를 만들어 냈네.’

한참을 들어가자 막다른 길목이 나왔고, 그 앞에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보였다.

시대를 알 수 없는 낡은 옷가지, 오래된 장검, 갈색빛의 목갑.

“이것 때문이었나?”

시우는 장검을 들었다. 뷰 마나 포스는 한줌의 작은 마나라도 지니고 있는 것들을 찾아낸다.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물건에까지 자연이 가진 평균치 마나를 상회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 마법에 걸린 장검은 꽤나 큰 양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틱, 스르릉

오랜 세월 때문인지 장검은 잘 열리지 않았지만 시우가 힘을 주어 뽑아내자 그 검신을 내보였다. 푸르스름한 검신에 날카로운 검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진 알 수 없으나 검은 기이하게도 아직 그 본연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디.”

검을 두 어번 휘둘러본 시우가 이번엔 목갑을 보았다. 목갑에서도 검에 비해 뒤지지 않을 만큼 기이한 마나의 향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시우의 손에 닿자 흩어지듯 사라졌다.

“재밌네. 아티팩트와 같은 원리인가?”

시우가 손을 때자 목갑에는 다시금 마나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목갑 안에 있는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안배가 되어 있었던 듯 했다.

목갑 안에는 작은 또 다른 상자와 가죽으로 쌓인 아주 옛날의 것으로 보이는 책 여섯 권이 나왔다.

“천···살···?”

여섯권은 책은 모두 한자로 제목을 적어 놓았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시우가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천살(天殺) 두 글자 뿐이었다.

“호오. 기연인가?”

설마하니 무협영화에 나오는 일들이 실제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시우는 작게 탄성을 지르며 작은 목갑을 열어 보았다. 기이하게도 작은 상자를 열자 은은하지만 기분 좋은 한약냄새가 흘러 나왔다.

“청심환···처럼 생겼네.”

과거 천년숭산의 소림사(少林寺)에서 오십년에 한 개 만들기가 힘들다던 대환단(大還丹)을 패천무림의 절대지존이자 온 무림을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만들었던 천살지존(天殺至尊)이 소림사를 털고, 온 무림을 지배하기 직전 신성과도 같이 떨어진 태극무제와 칠대 검협을 중심으로 마지막 힘을 짜낸 정파무림의 합공에 대패하여 고려까지 도망치며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날을 되찾기 위해 챙겼던 대환단이란 것을 생각하면 청심환이란 시우의 말은 이젠 고혼마저도 사라져 버린 천살지존이 경기를 일으킬 만한 일이었다.

“바로 먹으면 안 되겠지?”

그래도 들은 이야기는 많았던 탓에 시우는 입안에 약을 넣으려다 다시 상자를 닫았다.

책은 읽을 수 없지만 그림 등이 함께 그려져 있는 걸로 봐선 분명 무공서적이 분명했다.

“이계에 가기 전에 얻었다면 좋았을 것을.”

약간의 씁쓸한 웃음을 짓던 시우는 목갑과 검을 챙기곤 옷가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동굴을 나왔다. 그는 동굴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향해 완드를 흔들자 그 커다란 바위가 둥실 떠올라 동굴을 막았다. 그리곤 시우는 책에서 본 글자를 바위에 새겨 넣었다.

천살(天殺)

시우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산을 내려갔다. 내일은 지혜를 만나는 날. 흑석도 얻었고, 아직 알 수 없는 기연도 얻었다. 시우의 발걸음은 그처럼 가벼운 적이 없었다.

서울 강남의 어느 바.

간판도 안내표시도 없는 이 바는 일반인은 입장조차 할 수 없는 비밀리에 운영되는 가게였다.

가입된 회원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이 바는 철저하게 외부인을 거부했다.

직원부터 업자까지 완벽한 비밀을 지킬 자격을 갖춘 자만이 일을 했다.

회원은 기존 회원들의 추천이 있어야만 들어설 수 있고, 혹여 들어선다 하여도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가격에 질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복도을 지나 다다른 한 룸에 옅은 조명아래서 요즘 들어 부쩍 마시는 술이 늘어난 김세중 회장이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 테이블 너머에 속이 비치는 옷을 입은 체 술을 따르는 바텐더에게 희롱이라도 해볼법 했지만, 해결되지 않는 근심 때문에 의욕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뒤 그의 근심을 해결해줬어야 할 인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얀 양복에 하얀 페도라를 쓴 남성은 느긋하게 들어와 바텐더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 앉아 술을 받았다.

“약속 시간이 많이 늦었소.”

김세중이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무가 바빠 늦었소, 미안하외다.”

“바빠서 늦었다? 깡패가 바쁠 일이 뭐가 있지? 고등학생 하나 못 잡아서 바쁜가?”

“김회장, 말이 지나치시오?”

여전히 느긋하게 미소까지 보이는 마성창의 행동에 김세중은 술잔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우릴 속였더이다.”

“속여?”

“잡아오라는 그 학생 말이오, 우리 조직원 하나를 완전 작살을 냈오. 단순히 애 하나 잡는 게 아니었단 말이지.”

“······지금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마성창이 쥐고 있던 술잔을 내리쳤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박살나며 안에 담긴 술과 얼음이 넘처 흘렀다.

바텐더는 깜짝 놀라 행주로 마성창의 손을 잡으려 했다. 통상 손 안에서 깨진 유리잔들은 손바닥을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내기 마련이었다.

“회장님 여기 피를···.”

하지만 말을 잇던 바텐더는 마성창의 손에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의아해 했다.

마성창은 그런 바텐더에게 술잔 하나를 더 주문할 뿐이었다.

“사무실이 털리고, 팔 다리가 잘려나간 조직원이 다섯,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하는 미친놈들이 스물 두 명이오.”

술을 받은 마성창은 단숨에 술을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의뢰를 받은 이상 놈은 우리 손에 죽을 거요. 그 여자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이 일로 인해 김회장 당신은 제대로 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요.”

마성창의 협박에 김세중이 이를 갈았다.

자신이 누군가 명색이 삼진그룹의 2세다.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삼진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고, 대한민국에 힘 있는 자들을 전화 한통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 뿐인 후계자 김종철이 여느 다른 재벌처럼 돈을 뿌리며 놀았다면 이런 굴욕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뿌리며 즐기는 유흥에 별 관심이 없었던 종철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느 다름 없는 젊은이들처럼 유흥을 즐겼던 것이다. 거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이번처럼 꼭 사고를 치곤했다.

“자네 내가 누군지 모르나? 자네 같은 깡패들은 전화 몇 통이면 끝장낼 수 있어!”

“······김회장. 돈이 당신을 얼마나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뭐, 뭐?”

“명심하시오. 당신이 가진 힘은 내가 가진 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는 것 말이오.”

마성창은 그 손에 쥔 유리잔을 악력 만으로 깨버리며 그 조각들을 김세중에게 보란 듯이 뿌려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손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놈은 내 손에 반드시 죽을 것이오.”

< 10 > 끝

ⓒ 진(JIN)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