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
“시, 시바, 뭐여? 도깨비여?”
한 조직원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공전절후의 대 히트작 드라마였던 [도깨비로소이다]에서 본 도깨비와 똑같은 모습을 시우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은 조직원을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두목인 신기철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 시발! 뭐해! 죽여!”
두목의 광기 어린 외침에 번쩍 정신이 든 조직원 셋이 동시에 달려 들었다.
“야이 개새끼야!”
“어디 차력을 써!”
“이런 시바!”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해보려는 듯 욕설을 지껄이며 살기를 내뿜었다.
펑! 펑! 펑!
시우의 양 손이 야구공을 던지듯 가볍게 휘둘러지고, 그의 손에서 피어난 불꽃이 조직원 두 사람의 얼굴을 맞혔다.
“끄어어어어억!”
“얼굴! 얼굴! 어, 굴,. 어구···.”
한 명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사방을 휘젖다가 쓰러졌고, 다른 한명은 말을 하다 혀가 불에 눌러 붙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불을 피했다고 안심하던 조직원 하나가 곧장 사시미를 시우에게 찔러 넣었지만, 시우는 가볍게 그의 사시미를 피하며 그의 어깨에 불을 붙였다.
“부, 불! 불! 불을 꺼줘!”
사시미를 놓친 조직원이 뒤로 도망치며 달려가자 다른 조직원이 소화기를 들고 나와 불을 껐다.
소화기에 의해 불이 꺼진 것을 보고 조직원들은 저거라고 생각하며 곧장 주변의 소화기와 정수기 물통등을 들고 시우의 양 손에 들린 불을 향해 쏘아댔다.
사무실에 매케한 하얀 연기가 가득 했다.
한 조직원이 창문을 열고 대형 선풍기를 키자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시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행히 그의 손엔 더 이상 불꽃이 일렁이지 않았다.
멀쩡한 시우와 큰 화상을 입고 있는 조직원들을 보며 신기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죽여!”
이미 신기철의 이성은 어디론가 훅 날아가 버린 뒤였다.
조직원 다섯 명이 동시에 시우에게 달려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조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광기의 파도와 같은 기세로 갖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 나갔다.
쾅! 콰쾅!
맨 처음 달려들었던 조직원이 못 달린 각목을 휘두르기도 전에 시우의 어퍼컷에 천장에 튀어 올랐다가 석고보드 조각과 함께 후드득 떨어졌다. 이미 정신을 잃은 뒤였다.
놀랄 만한 시우의 신위에 조직원들은 순간 우뚝 서 있었지만, 시우는 씩 웃으며 손바닥으로 까닥 거렸다.
시우의 주먹이 내질러지면, 조직원 하나의 가슴뼈가 다 부러지고, 동시에 일시적인 심장마비까지 왔다. 그 틈을 타 장도리 하나가 시우의 머리를 부술 듯 날아오다 시우의 팔에 막혔다.
“헉! 뭐 이런···커헉!”
장도리를 휘두르던 조직원은 기이한 방향으로 두 번이나 꺾인 장도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시우의 발차기에 맞아 창문을 깨고 1층으로 떨어졌다.
실로 놀랍도록 튼튼하고 강인한 신체였다.
흑마법의 버프를 받은 것도 있었지만, 방금 전의 타격은 실로 원시적이라고 할 만한 마나의 운용에 의한 것이었다.
서클 안에 잠들고 있는 마나들은 시우의 주문에 줄기줄기 힘을 뽑아내어 손으로 팔로 마구 보내고 있었다.
주먹은 주먹만의 힘뿐만 아니라, 순수한 시우의 분노에 이끌린 마력을 포함하여 시우의 의지를 돕고 있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칼 안 꺼내!”
두목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직원들은 저마다 사시미 칼을 한 자루씩 꺼내었다. 개중엔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몸을 낮게 낮춘이도 있었다.
“그럼 나도 꺼내도 되지?”
말을 하며, 시우는 뒤춤으로 완드를 가져갔다 빼내었다.
1.3미터 길이의 거대한 장도가 그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조직원들은 검은색 일색의 그 검을 보며 저마다 멍하니 ‘미친’ ‘시발’등의 욕설을 내뱉었다.
“덤벼 양아치 새끼들아.”
시우는 일부러 조직원들이 가장 싫어 할 만한 말을 내뱉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의 칼을 휘두를 때마다, 조직원들의 팔이 잘려 나가고 뼈가 부서져 나갔다.
피해를 보지 않는 이는 없었다. 수가 아무리 많다 하여도, 갖은 버프를 범벅한 체 1.3미터의 장도를 휘두르는 시우와 억지로 비계를 키운 팔뚝만한 길이의 사시미 칼은 어느 정도 결과가 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시우는 정식으로 검술을 익히지 않아, 드믄드믄 사시미칼에 미세한 상처들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은 두목은 조직원들을 더욱 독려 했다.
“죽여! 저 새끼 죽이란 말이야!”
어느새 자신도 날카롭게 벼려진 일본도를 잡어 기세를 잡고 있었지만, 쉬이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이미 피바다가 되어 가고 있었다. 천정이며, 바닥이며, 벽과 책상 소파 할 것 없이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밀집된 공간에서 화마가 사방에 들끓고 혈향이 가득해지자 시우는 더 없이 마나가 들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우는 늦지 않게 자신의 감정 또한 분노와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마나를 쫓아갔다.
“크하하하하하!”
“크악! 내팔!”
“사, 살려 줘, 살려줘!”
“비켜, 비키라고!”
분기탱천하여 씹어 먹을 것 같았던 두목의 표정이 이빨이 덜덜거릴 정도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아, 악마, 악마야.”
“응? 뭐라고?”
방금 전 잘리다 만 부하의 팔에서 장도를 뽑아 다시금 내려친 시우가 천천히 웃으며 두목 앞에 섰다. 스무 명에 달하던 조직원들 중에 멀쩡한 이가 하나 없었다. 언제나 민간인의 피로 가득했던 사무실이 지금은 조직원들 자신의 피와 살로 매워졌고, 라이터 기름으로 지폈던 불은 소화기에 의해 꺼지다가 다시금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며 한 폭의 지옥도를 그리고 있었다.
“신경 써서 자른 다고 잘랐는데, 잘 잘려진지는 모르겠어, 아마도 몇몇은 다시금 붙일 수도 없겠지? 그래도 뭐, 다 자신이 뿌린 업보다 생각하시고, 우리 사장님은 나랑 조금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눠보자. 알았지? 나 데려오라고 한 놈이 누구야?”
“크윽···, 대체, 대체 넌···. 크아악!”
두목은 자신의 손등이 불이 지져진 것처럼 뜨거움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땅을 집고 앉았던 자신의 손등으로 시우의 장도가 깊숙이 박혔다.
“다시 물어 볼게, 나 데려 오라고 한 새끼가 누구야?”
“크아악! 커헉! 커헉! 커헉! 아, 아, 안돼 안돼! 크아아아아악!”
두목이 고통에 몸부림 치며 대답을 하지 않자 시우는 장도를 뽑아 그의 반대 손을 바닥에 놓고 똑같이 찔러 버렸다.
“흠. 말귀를 못알아 듣네. 깡패답게 깡다구가 좋은 건가? 발목을 자르면 얘기하려나?”
장도를 뽑아낸 시우가 발을 한손으로 잡고 톱을 켜듯 자세를 취하자 깜짝 놀란 신기철이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사, 삼진그룹 김세중 회장입니다. 삼진그룹.”
“흠, 삼진그룹 같은 거대 그룹이 너네 같은 구멍가게 깡패들이랑 일을 한다고?”
“네, 네! 그렇습니다.”
신기철의 눈을 보던 시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역시 안 되겠다. 진실을 말하는 눈이 아니야. 발목 자르자. 그다음엔 고추를 자르고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거야. 대충 중지 손가락 자를 때쯤엔 다 말하더라고.”
신기철은 필사적으로 발을 빼보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우는 괴물 같은 악력으로 자신의 발을 놓아 주지 않았다.
그 압박감이 신기철의 이성을 날려 버렸다.
“서, 성창파! 성창파 마성창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일입니다. 그저 그 뿐입니다.”
“응? 성창파? 그게 뭐야?”
“커억! 컥! 다···당금 수도권의 주먹계를 펴···평정하신 협사님이십니다.”
“키히히. 미친···협사는.”
탕!
시우는 도면으로 두목의 이마를 팡하고 때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제가 아는 건 그것 뿐입니다.”
두목은 시우의 비아냥에 인상을 찌푸리다 이마에 닿는 딱딱하고, 차가운 물체에 화들짝 놀랐다.
“사장님. 내가 요즘 주머니가, 빈약해서 그러는 데. 사장님 금고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돈 같은 거 좀 있나?”
“···도, 돈 말씀이십니까? 네. 있습니다. 금고 가득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가득 합니다.”
“오! 그래? 잘 됐다. 앞장서.”
“아, 네. 네.”
두목은 장도가 지나간 양손을 고통에 몸부림치며 덜덜 거리며 겨우겨우 사장실 문을 열었다.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소파 한편엔 옷이 갈갈이 찢겨진 여대생 한명이 부들부들 떨며 속살이 훤히 보이는 자신의 몸을 가려보려 애쓰고 있었다.
신기철은 시우가 말없이 우뚝 선 걸 보고, 살기가 흘러 나온다고 느꼈다. 그는 재빨리 변명했다.
“···아, 저. 저 사람은 그게, 사채, 사채 때문에···.”
시우의 눈이 여대생에게서 움직이지 않자. 두목이 변명하듯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사채 썼어? 왜 그런 걸 써? 아가씨도 명품 좋아하나?”
시우가 핏물이 뚝뚝 흐르는 장도를 어깨에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대생은 사무실 창문 너머로 일련의 사태를 본 탓인지. 시우를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아,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이런 개 같은 새끼들을 봤놔!”
“······.”
시우가 쌍심지를 켜며 두목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버지 빚 대신에 딸을 강간해? 이런 쌍팔년도 양아치 같은 새끼들!”
“크아악!”
“꺄악!!”
시우는 지체하지 않고, 두목의 왼쪽 다리에 장도를 찍었다. 피분수가 천정까지 닿으며 여대생이 비명을 지르고, 시우는 얼굴에 튄 피를 쓰윽 닦아 냈다.
“커어억!”
“개만도 못한 놈들 같으니. 너희 같은 쓰레기들 때문에 소시민들이 착하게 살면 안 된다고 자꾸 다짐하는 거 아니냐.”
시우는 끌끌 웃으면서 신기철을 두고 커다란 금고 앞으로 갔다.
미국 락커드 사의 TX시리즈인 최신형 금고는 억지로 문을 열려 할 경우 좌물쇠 역할을 하는 걸쇠가 그대로 고정이 되어 망가져 버리고, 화재와 악천우 속에서도 내용물을 튼실하게 보호하기로 유명한 제품이었다.
시우는 장도를 휘둘렀다. 이내 완드로 바뀌고, 완드에선 수십개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곳엔 그 소시민들의 피와 땀이 가득 하겠지?”
약화, 저주, 파괴 등등의 갖은 저주가 금고를 뒤덮고 EMP충격파에도 대비되어 있는 전자기기가 그대로 망가져 버리며 금고는 기괴한 음성과 함께 부서져 내렸다.
시우가 완드의 움직임이 멈췄을 땐 금고는 수 백 년의 세월을 보낸 것처럼 녹슬고 부서져 있었다.
“와우.”
시우는 금고안의 각종 현금 다발과 무기명 채권 금괴 등을 보면서 작게 탄성을 질렀다.
차곡차곡 금고의 돈과 채권을 가방에 담은 시우는 여대생을 이끌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놈. 네놈을··· 크윽. 살려 둘 것 같으냐! 우리 성창파에서 네놈을 지옥 끝까지 추격할 거다. 지옥 끝까지!”
두 눈에 핏줄이 모두 터진 것처럼 두목은 붉은 두 눈으로 시우를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하긴. 겨우 이 정도로 너희들이 떨어져 나갈 거라곤 생각 안 해.”
사무실을 나가려던 시우는 돌연 돌아서서 두목 앞에 섰다.
“그거 아냐?”
“끄윽. 뭐, 뭘 말이냐!”
두목은 시우가 지그시 발을 올린 자신의 상처에 금방이라도 두 눈을 뒤집어 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네놈 몸에선 냄새가 나.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냄새가.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말이다.”
[디 베스티드 라이프]
시우의 완드에서 작은 빛이 세어 나오고 신기철의 정수리에 빛이 닿자 신기철은 전류에 감전된 사람마냥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커헉!”
살기로 번뜩 였던 그의 눈이 점점 이지를 상실하고, 온 몸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신기철은 몸의 제어권을 상실해가며 막히고, 의식이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선전포고라면 이 정도는 되야 겠지.”
신기철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본 여대생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 갈 거예요?”
두려움에 떨던 여대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우를 곧장 뒤따라 나서려 했다.
“옷! 옷!”
거진 나체의 차림으로 나서려는 여대생을 제지하고 시우는 조직원들이 입던 옷 하나를 건냈다.
안쪽 사무실을 나오자 바깥쪽 사무실에선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 조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여대생은 비명을 지를 뻔 하여 순간적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다.
시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조직원들에게 하나하나 다가가 신기철에게 시행한 저주 마법인 [디 베스티드 라이프]를 연신 사용했다.
기절해 있던 조직원들은 신기철이 그랬던 것처럼 괴로움 속에서 부르르 떨다 온 몸을 뒤틀며 이지를 상실해 갔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별거 아니 예요. 나쁜 놈들이라 죗값 받으려고.”
동화속에 나오는 것처럼 악의 화신인 흑마법사들이 민간인을 데려다 피를 뽑고 장기를 꺼내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공마인(人魔供)은 만들긴 한다.
공마인이란 인간의 감정을 조정하여 마기를 발산하는 희생체이다.
흑마법은 다른 오대 원소 마법과는 달리, 자연과 마계 그리고 인간에게서 마력을 뽑아 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순도 높은 흑마력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마기.
공마인이 된 희생체들은 끔찍한 악몽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신체는 음식만을 갈구하는 아귀가 되어 먹고 싸기만을 반복하고 끔찍한 악몽 속에서 발산한 마기는 시전자가 어디에 있든 그에게 전달된다.
한마디로 원격 충전 배터리 같은 것.
시우가 대륙을 정벌할 때, 공마인(人魔供) 200구를 가진 흑마법사와 조우하여 군대의 반을 잃은 적이 있어 그 괴랄한 파괴력은 잘 알고 있었다.
2서클에만 오르면 익힐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마법이지만 그 파괴력은 결코 쉽고 간단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인간 아닌 객체에는 통하지 않는 다는 점과 하급 무구, 하급 성수, 하급 신관의 기도에도 금세 저주가 풀려버리는 것이 약점이지만 만약 수천구의 공마인을 가진 흑마법사가 있었다면 시우는 대륙을 정벌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우는 흑마법을 익혔지만, 공마인을 만든 적이 별로 없었다. 전시였고, 잘잘못을 한 자들이 있다면 실력으로 단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세계로 돌아온 시우는 악인들이 오히려 법에 보호를 받는 모습들을 보며 그들의 죄값을 공마인의 술(術)로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구나 현 세계에서 과연 누가 공마인의 술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조직원 전부를 공마인으로 만든 시우는 여대생을 부축하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조직원의 사무실에는 서서히 불길이 커지고 있었다. 동시에 멀리서 소방차 출동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앞 우체통 옆에 분필로 그려진 뭔가를 슥슥 발로 지워낸 시우는 천천히 걸으며 작은 가방을 여대생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그쪽이 당한일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받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시우는 핏물이 가득한 자신의 얼굴은 생각지도 않은 채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전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저 치들은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거에요. 그래도 모르니까. 두렵다면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어차피 아버지 사업 때문에 사채를 썼다면 불 보듯 뻔하겠죠?”
시우의 날카로운 질문에 여대생은 순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매일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들과 건달들 때문에 생활은 파탄이 나버렸다. 동생은 학교까지 찾아온 깡패들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엄마는 노이로제에 걸려 문소리만 나도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대곤 하였다. 더 이상 한국에서 살아갈 곳이 없었다.
여대생은 조심스레 가방을 받았다.
“저기 성함이라도······.”
어디서 비슷한 시추에이션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시우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시우라고 해요. 최시우, 그보다 잠깐 이것 좀 봐줄래요?”
여대생이 고개를 든 순간 시우의 손에서 완드가 번뜩 불빛을 밝혔다.
기억 속에서 자신이 등장한 순간을 모두 지워버린 것이다.
여대생의 눈빛이 돌아오자 시우는 다급하다는 듯 말했다.
“어, 어서 도망가요. 놈들이 쫓아오기 전에 이제 곳 경찰과 소방관들이 올 테니까!”
시우가 급박하게 말하자 여대생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가방을 들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우는 여대생이 사라진 걸 보고 자신도 큰 가방을 어깨에 맨 체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어젯 밤 11시경 중정로 인근 사무소에서 불이나, 스무명이 중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습니다. 경찰은 경쟁조직과의 싸움에 의한 것으로 여기며 조사를 착수 중이고···
고즈넉한 실내안 마호가니풍의 가구들과 고급 석수들. 방안엔 은은한 난향이 감돌고, 하얀 백발의 사내 손엔 따듯한 국화차가 올려저 있었다.
“중정로면··· 누구냐··· 기철이 사무실아니냐?”
“네. 회장님.”
백발의 사내의 고즈넉한 말에 뒤에 시립하던 젋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삼진 회장 일을 맡겼지?”
“네, 그렇습니다.”
“흠, 삼진 김회장이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나 보구나.”
“어떻게 처리 할까요?”
“우선 알아 보거라. 난 삼진 김회장을 다시 만나봐야 겠다.”
“네, 알겠습니다.”
백발의 사내는 아름답고 반듯한 외모의 아나운서가 하는 이야기를 지그시 응시했다.
“오늘은 저 아이를 만나 볼까···.”
백발의 사내의 두 눈이 음산하게 번들거렸다.
< 9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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