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서울.
그 서울을 그리고 이 나라를 움직이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 종로.
종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 위치한 삼진그룹 회장실에선 연신 얼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불 꺼진 사무실 안에서 서울의 야경을 술안주 삼아 연신 비싼 꼬냑을 들이키는 사내는 다름 아닌 김세중.
이 시간까지 그가 회사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거래의 결과도 강남의 어느 지하 술집이나 한남동의 고급 한식집에서 받았던 그를 생각하면 그의 이런 모습은 낯설었다.
몇 번의 잔이 비워지고, 취기가 슬슬 올라갈 때쯤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영상통화?’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에 평소라면 절대 받지 않았을 그였지만, 어쩌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소식일지도 모른다 생각한 김세중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이윽고, 화면이 밝아지며 나타난 인물은 생김새만해도 무식함과 과격함을 가득 품은 천박한 얼굴의 사내였다.
전화를 받은 김세중이 말 없이 노려보자 상대방이 너스레를 떨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이번에 일을 맞은 신기철이라고 합니다.
“그 연놈들은 잡았나?”
-하핫! 듣던 대로 호쾌하시네. 초면에 반말은 지껄이시고.
“······.”
어둠속에 보이는 김세중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신기철은 금세 말을 돌렸다.
“결과가 나왔을 때만 전화 하라는 말 못들었나?”
-당연히 성창 형님께 들었죠. 하지만 저도 이참에 삼진그룹에 선을 대볼까 해서 이렇게 전화 드린 겁니다.
김세중이 인내심을 발휘해가며 통화를 이어가던 중 그의 눈에 신기철 뒤로 반 나체의 여자의 뒤태가 보였다.
“거기 그 여자가 내가 찾는 그년인가?”
자신의 금지옥엽 종철을 반병신만든 계기를 준 여자라 생각하자 당장이라도 목을 뜯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이년이요? 그 년은 아니고, 이번에 빚 대신 팔려온 년입니다. 어디, 맛 좀 보실렵니까? 아직 대학생이라 파릇파릇 한데.
신기철이 피를 흘리며 얼굴에 멍이 든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비치며 낄낄 웃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내가 왜 마성창 회장한테 직접 부탁했는지 있었나?”
-잘 알지요. 그래서 마성창 형님이 제일 총애하는 혈견 신기철한테 이 일을 맞기신 거 아닙니까.
“똑바로 처리하게. 만약 제대로 처리 못하면···.”
-못하면?
김세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김세중과 통화하던 신기철은 갑자기 끊어진 전화를 보며 낄낄 거렸다.
애송이 고삐리와 여대생 하나를 납치해 오라는 말 같지도 않은 의뢰는 사실 평소라면 절대 받지 않았을 테지만, 현 서울을 지배하고 있는 총회단인 성창파의 명령이라면 군말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런 일로 총회단의 빚을 지워두면 차후에 어떤 이득이라도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신기철은 피떡이 되어 잡혀올 고삐리와 여대생을 기대하며 반 자체의 여인을 발로 짓이겼다.
“아악! 사, 살려주세요.”
“지랄 살고 싶으면 돈 갚아! 그러고 보니 여대생이 하나 있다고 했지? 고년, 맛 좀 봐도 별말 않겠지? 흐흐흐.”
음탕한 상상을 하며 신기철은 연신 나체의 여자를 희롱하고 폭행하기 시작했다.
끼이익
도로를 넘을 듯 거칠게 달려오던 승합차가 멈춰 섰다.
운전석의 있던 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부리나케 건물 사이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어두컴컴한 복도 사이로 다 낡은 사무실 창문에서 옅은 할로겐 등이 깜빡 거렸다.
콰당.
“혀, 형님!”
하얗게 얼굴이 변해버린 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땅에 쓰러져 가운데 있는 신기철을 애타게 불렀다.
“뭐, 뭐야!”
“다, 당했습니다. 모두 당했습니다.”
“당하다니? 무슨 소리야!”
고등학생 하나와 여대생을 납치하기 위해서였다.
곤죽을 만들어 놔도 상관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는 평소 험악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이 거친 세계에 평범한 소시민을 끌고 와 겁을 주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오라는 소시민은 안 오고, 놈을 잡으러 갔던 녀석만 개거품을 물고 졸도할 듯 속사포처럼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고 있었다.
“똑바로 얘기 안 해!”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착 가라 앉으며 신기철이 일갈을 터트리자 사무실이 쩌렁하게 울렸다.
“에, 헉허, 예. 예. 그게 그러니까···.”
숨을 고른 개거품의 말을 듣던 신기철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점점 가라 앉은 눈동자 안에서 번들거리는 분노가 일렁거렸다.
“너 이 새끼..”
신기철이 벌떡 일어나 다가섰다.
“지금 그 말을 믿으란 거야!”
“크아악!”
개거품의 부하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지만, 신기철은 멈추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자신의 부하의 얼굴을 구두로 짓밟고 콧잔등을 부쉈다.
부하는 금세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쓰라린 신음소리만을 낸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컥! 뜨거! 뜨거워!”
그때, 사무실 밖에서 옅은 화광이 비추며 우당탕하며 커다란 것이 굴러 가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냐!”
신기철은 눈빛을 번들거리며 일갈을 내뱉었고, 부하들은 움찔 거리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한손엔 노란 무언가를 또 다른 한 손엔 검은 지포 라이터를 들고 있는 소년이 들어 왔다.
“반가워 씹새끼들아, 니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귀하신 몸이 이곳에 행차 하셨다.”
시우가 이(異) 세계에서 가장 적응 되지 않았던 것은 무소불위의 신분제도였다.
왕과 귀족은 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 권력과 권세를 누렸고, 시민과 노비는 그들의 부와 생활을 책임져 주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봉건제도가 심하여 귀족들의 각 도시별로 주거 집단이 나뉘어져 있었고, 교류가 적었던 탓에 새로운 정보의 유입이나 물자의 유입 또한 원시시대 수준이었다.
대체로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나 성을 집안 관리인에게 맡겨 두고 수도에서 화려한 파티 생활을 영위하였고, 돈이 부족할 때면 자신의 영지에서 사는 영지민들의 피와 고혈을 빨아 다시 화려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시민과 노비 계급의 저항은 없었다.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과 불법적인 사상에도 그것에 저항할 지식이 없었던 탓이다.
민주주의가 뿌리 박힌 대한민국에서 살던 시우에겐 신분제도란 심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현 세계에 돌아온 뒤에도 민주주의가 실현된 대한민국에서도 신분제도와 무소불위의 귀족들이 있다는 점에 새삼 놀랄 따름이었다.
바로 수 십 년 째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던 부패한 기득권들이 바로 그랬다.
처음 종철과 그의 일당들의 행동을 보고 시우는 단숨에 저들의 행동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욕정에 지배받아 행동하는 굶주린 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무소불위의 귀족 자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법적인 행동에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한 행동이었다.
몇 번이나 해보고, 몇 번이나 아무일 없었던 사람들의 행동.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을 거라는 그런 과감성에서 나온 행동들이었다.
그들의 신분이나 집안 내력에 대해서 알기도 전에 이미 그들이 유력 집안의 자재라는 건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과격하게, 더욱 잔인하게 그들을 곤죽 내 놓은 것이었다.
그 결과가 어떠한가?
강간범인 아들을 곤죽 냈다는 이유로 그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
아니 죽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행을 붙이고, 커다란 승합차에 100kg의 육박하는 건달들을 가득 실고 나타나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
일반인들이라면 절대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강간범을 퇴치하고 지혜를 구한 자신을 저주하며 살려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절대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 믿는 이들.
그리고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벌레 취급하는 이들.
시우가 가장 혐오하고 경멸하는 대상들이었다. 시우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었다.
“여긴가?”
시우는 슬쩍 고개를 들어 건물을 보았다. 일대에 빛이라고는 한 점 없고, 오직 ‘삼영 흥신소’라는 싸구려 간판이 달려 있는 사무실에서만 은은한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밤늦게 여러 군데를 돌아 라이터 기름 몇 통을 샀고, 건물에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시우는 입가에 괴소를 지었다.
“보나마나 다 쫓아냈겠지.”
이계에서나 이곳에서나 어설프게 힘을 가진 놈들이 가장 잔인한 법이었다.
귀족의 명을 받고 일하는 관리인들이 시민을 더 잔인하게 대한다. 노비를 더 하찮게 취급했다.
시우는 간단한 추론만으로 이 건달들이 그 강간범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장에 그 강간범의 병원에 침입하거나 그 아버지를 찾아가 목을 조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뿌리의 끝부터 조금씩 그들의 모든 것을 씹어 삼킬 참이었다.
더불어, 흑마법을 익힘으로서 나타나는 자신의 부작용도 해소할 셈이었다.
흑마법은 모든 마법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7서클의 마스터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피의 갈망을 느낀다. 어떤 마법보다 성취가 빠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피의 갈망과 폭력성을 품게 된다.
그래서 이(異)세계의 중간계에서도 흑마법을 인간이 익히면 안 돼는 금기의 마법으로 정한 것이다.
영혼에 쌓인 카르마는 변하지 않는다.
이미 대마도사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절대적인 경지에 이른 시우였지만, 금단현상처럼 일어나는 피의 갈망과 폭력성을 가끔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천인공노할 쓰레기 같은 인간들로 정한 것이었다.
시우는 건물을 돌며 건물 곳곳에 저주와 관련된 마법진과 다크 사이트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간단하게 분필로 복잡한 마법 수식을 그려 넣고, 마정석 가루를 조금 뿌린 뒤 발동 주문을 외웠다. 어둠 속에서 야광봉처럼 빛나던 마법진들이 발동을 시작하자 검은 액체를 내뿜으며 건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다크 사이트는 시우에게 힘을 주고, 적들의 몸엔 독을 심는다.
2서클의 간단한 저주 마법은 하급 성구만 몸에 지녀도 저주를 피할 수 있겠지만, 과연 건달 생활을 하면서 몸에 십자가라도 지니고 있을 리가 몇이나 될지 궁금했다.
시우는 그렇게 준비를 다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 중간 사무실 입구엔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흐릿한 불빛 속에서 조막만한 스마트폰을 보다 시우를 보고 인상을 썼다.
“어이 이 좆 만한 새끼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확! 썩 안 꺼······꺽! 크아악!”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협박을 내뱉던 덩치는 불현 듯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따끔한 느낌에 고개를 돌리려 했다. 허나 그 순간 그 액체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얼굴을 뜨겁게 달구었다.
“가서 망이나 좀 봐. 경찰 오면 안 되잖아?”
시우는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덩치를 계단 밑으로 던졌다.
문을 열고 들어간 시우는 사무실 안 가득 차있는 건달들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고딩하나 잡으려고 별 지랄을 다 하셨네.”
숫제 양아치의 언어나 다름없는 비아냥거림에 신기철이 이를 갈았다.
“너 뭐하는 새끼야.”
“나, 네놈들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 하던 귀하신 장기의 주인공.”
시우는 자신의 장기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린놈이 정신이 나갔나보구나 이런 곳에 절로 들어오고.”
“동네 양아치들 행태가 하도 웃기지도 않아서 말이야.”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시우가 바닥에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근데 이 좀 만한 새끼가 진짜 뒈지려고!”
옆에서 야구배트를 들고 있던 조직원 하나가 불같이 달려들며 배트를 휘둘렀다.
시우는 몸을 슬쩍 숙여 배트를 피하고, 노란통을 강하게 쥐어 기름을 쏘며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끄아아악!”
기세 좋게 달려들던 조직원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그 덕분에 다른 조직원들의 옷이며 머리에 불이 붙어 잠시간에 소요가 일어났다.
“그거 알아? 요즘 신나 구하기 힘들더라. 위험물이라 규제라던가 뭐라던가. 그래서 라이터 기름으로 대신했어.”
시우는 문 옆에 놓여 있는 벌거 벚은 여인들의 잡지책을 꺼내어 입구에 놓고, 기름 통을 열어 기름을 부었다. 그리곤 불을 붙여 불길을 거세게 키웠다.
“고딩 하나 놓고 어디로 도망가진 않으시겠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 새끼가···.”
신기철의 말에 조직원 하나가 목도를 내리치며 달려들었다.
펑!
“끄아아아악!”
달려들던 조직원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조직원은 그 뜨거운 열기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치지도 못하고 발광하며 자빠졌다.
‘뭐, 뭐야!’
분명 기름은 다 썼을 거라고 생각한 신기철의 생각과 달리 조직원의 얼굴에선 방금전의 그것과는 다른 더 큰 폭발음과 화력이 조직원의 얼굴을 태워먹었다.
기름에 불이 붙었던 조직원은 금세 불을 끄고 다시금 일어났지만 새로운 불꽃에 얼굴이 타버린 조직원은 그대로 넘어지며 일어날 줄 몰랐다.
그렇게 고개를 들었을 때 신기철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시우의 모습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 할 수 없었다.
“신기하지?”
이죽거리며 웃는 시우의 양손에는 퍼런 불꽃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일렁이고 있었다.
< 8 > 끝
ⓒ 진(J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