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
아직 이른 시각, 태양이 스멀스멀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한창 진득한 다크 사이트를 펼치며 마나를 모으던 시우는 천천히 다크 사이트를 거두고, 서서히 눈을 떴다.
일순간 검은 색의 잉크가 눈알을 다 메꾼 것처럼 기괴한 모습이 나타났다 금세 사라졌다.
“마력탄.”
피슝! 퍽!
작은 파공음과 함께 나무에는 손가락만한 구멍이 패였다.
“마력탄.”
이번엔 파공음 대신 시우의 두 주먹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생성되었다.
슉슉! 원투!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리며 잠깐의 쉐도복싱을 하는 시우의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두 주먹에 생성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시우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해 궤적을 남겼고, 그 궤적이 사라지기 전에 새로운 궤적이 계속해서 시우의 주위를 맴 돌았다.
슈슉!
두 번의 스탭을 밟아 앞으로 치고 나간 시우는 그대로 아까 구멍이 패였던 나무에 두 주먹을 내질렀다.
우드득!
예상대로 가볍게 내지른 시우의 주먹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마력탄!”
하지만 시우는 쉬지 않았다. 다시금 ‘마력탄’을 외치자 이번엔 더 진하고 더 진득한 검은 안개가 시우의 두 주먹에 어렸다.
그리고 다시 나무로 내지를 주먹. 이번엔 가볍게 내지르지 않았다. 한 번의 스탭을 밟아 가속도를 붙여 내지른 주먹.
우드드득!
이번엔 기이한 비명은 나무쪽에서 내질렀다.
뒤로 가볍게 빠졌던 시우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며 주먹을 내질렀고, 나무는 드디어 날카로운 가시들을 날리며 완전히 넘어 갔다.
“2 서클이라.”
지난 보름간 전력으로 매달린 끝에 서클은 한 단계 더 올라가 있었다. 더구나 틈틈이 완드와 다크 사이트를 펼쳐가며 매진 한 끝에 마나를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서클은 만들었지만 아직 마법은 제대로 펼쳐 본적이 없었다. 실제로 펼칠 일도 없었고. 단순히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일루젼 계열의 마법과 염동력을 이용해 신문배달을 쉽게 한 것 말고는 크게 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래선 다크 계열을 익힌 의미가 없는 데.”
다크 메이지라면 당연 강력한 파괴력과 잔인한 살상력이 묘미. 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시우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인 서울에선 시우의 마법은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영창 문제나 좀 해결해야지. 무슨 판타지 게임 주인공도 아니고 말이지.”
혀를 차는 시우는 자신의 점퍼를 주워들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메세지가 몇 개나 와 있었다.
-오빠 어디야?
-이런 이른 시간에 어딜 나가는 거야!
-빨리 돌아와!
-저기 혹시 오늘도 시간이 안 되시나요?
-제가 꼭 좀 만나 뵙고 싶어서.
위의 세 개는 민서. 아래 두 개는 지혜의 것이었다.
전생이나 다름없는 자기의 과거에 이렇게 여인들에게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나 생각하던 시우는 대충 답장을 하곤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민서는 무슨 일인지 2주전 득달같이 집에 와 자신을 추궁했다.
도재민과 조세형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전학을 가라는 둥. 부모님에게 말하라는 둥 학원폭력에 실질적으로 경찰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둥의 말을 해가며 꺅꺅 거리는 것을 겨우 말렸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시우 자신이 미덥지 않은 듯 자신의 외출까지 줄여가며, 계속 시우에게 외출 자제를 촉구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지혜는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 만에 연락을 시작했다.
치료비를 주고 싶다는 둥 만나 뵙고 싶다는 둥의 메시지를 몇 번 씹었더니 전화가 걸려와 민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사게 만들었다. 지혜의 마음은 알지만 현재의 시우로선 별달리 관심이 없었다.
“계속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려나.”
산길을 내려가는 시우의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엉켜 있었다.
“그래 이럴 땐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답이겠지! 좋아!”
시우는 두 주먹을 꽉지고 등산로를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경쾌하게 시우가 인사하자 운동기구 위에서 허리를 돌리던 할아버지가 시우를 보며 알은체를 했다.
“이놈아! 요즘 곰 나온댜! 자꾸 깊이 들어가지 말어!”
“뭔 대한민국에 곰이에요.”
“모르는 소리 말어! 내 어릴 적 우리 동네 산에서 나는 소리랑 똑같어! 제 영역 표시를 하는 거지.... 그렇게 마을의 몇 사람이 곰한테 물려 갔는지....”
“알겠습니다!!!!!”
시우는 혀를 끌끌차며 전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우는 사실 혼자만의 수련에 한계에 다달아 있었다.
인터넷으로 본 몇 개의 자세와 훈련 방법들은 더 이상 시우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때문에 복싱학원을 등록하러 가야 했고, 민서는 득달같이 따라 나섰다.
“오빠. 대체 복싱은 왜 다닌 다는 거야?”
“니가 맨날 나 맞고 다니는 것 때매 걱정하지 말라고 다니는 거야.”
“무, 무슨 소리야. 그보다 복싱 다닌다고 일진들이 안건들이나? 태권도가 2단이면 괴롭힘을 안 당해? 아주 너무 너무 순수하시고만!”
민서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코를 행하며 풀 듯 고개를 돌렸다.
“걱정마라. 인제 오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민서의 머리를 헤집은 시우는 복싱학원에 들어섰다.
시설은 최신식에 샤워장과 가설링까지 준비되어 있는 스탠다드하고 널찍한 공간이었다.
“아.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등록 좀 하려고 하는 데요.”
“아. 그러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코치로 보이는 젊은 사람은 차근차근 교육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고, 그 설명 와중에 다이어트라는 말에 민서는 왠지 혹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몇 개월로 끊어 드릴까요?”
“우선 3개월로 끊어 주시고요. 어때? 민서야 너도 같이 할래?”
“뭐, 뭐? 대, 댔어. 난.”
“같이 하자.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잖아.”
시우가 귀여운 동생을 어르듯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뺄 살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오빠가 돈이 어디 있어?”
“요즘 오빠 신문 돌리는 거 모르냐? 그건 걱정 말고 같이 하자 오빠가 심심할 것 같아서 그래.”
“그, 그래? 그럼 같이 할까?”
민서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자. 코치가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하세요. 두 분 이서 함께 등록하시면 4개월 치 한 걸로 해서 더 할인해드릴 게요. 그리고 요즘엔 여성분들이 주로 많이 다니셔서 심심하지 않으실 거예요.”
“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돈을 결제하고 학원 밖으로 나온 시우는 민서에게 작별을 고했다.
“오빠 약속 있어서 시내 갔다 올 테니까. 집에 가 있어.”
“오빠가 무슨 약속이 있어!”
“오빠 오늘 데이트 있어. 대학생 누님이랑! 으흐흐”
양손을 부비며 시우가 너스레를 떨었다.
“거짓말 하지마 오빠 주제에 무슨···.”
말을 하려던 민서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 동안은 잘 느끼지 못했지만, 오빠가 부쩍 거대해 보였다. 적당한 키. 쫙 펴진 가슴 다부진 어깨 그리고 유려한 턱선 조금 날카롭지만 흔들림 없는 눈동자. 이마를 가로지르는 상처가 거슬렸지만, 왠지 더욱 사내다워 보이게 했다.
‘키가 컸나?’
“어쨌든 오빤 늦어서 먼저 간다! 이따 봐!”
그렇게 일방적인 작별을 하곤 시우는 후다닥 사라져 버렸고, 민서만 홀로 황망히 남겨졌다.
“나 오늘 할 거 없단 말이야···.”
젊음의 거리 신촌.
방학이 되었음에도 더욱 활기 넘치는 이곳에서 한 여학생이 초조하게 시간을 보고 있었다.
스무살 남짓 되었을까? 윤기 있는 긴 생머리, 서툴고 옅은 가벼운 화장. 그리고 핏줄까지 비치는 하얀 피부와 수수한 옷차림으로 가려지지 않는 볼륨감 있는 몸매까지.
고급스런 명품백 대신 투박한 백팩을 매고 있었지만, 길을 지나가던 뭍 남성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했다. 그렇게 몇 사람이나 그녀에게 말을 걸고 수작을 걸었지만, 매번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그녀의 반응에 삐까번쩍하게 차려 입은 남자들은 툴툴거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전화번호만 알려 주세요. 저 진짜 나쁜 사람 아니에요. 이것 보세요. 저 연세대 다닌 다니까요.”
자신의 학생증까지 내 보이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는 남자에게 두 발자국이나 멀어진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약속이 있어서요.”
“아니 진짜로 제가 정말 너무 예쁘셔서 그냥 가면 서운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요. 전화번호만 알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슬쩍 가슴골을 본 탓에 남자는 더욱 군침을 흘렸다.
‘진짜다. 진짜.’
“혹시 남자 친구 있어요?”
“아뇨.”
“그럼 괜찮잖아요. 뭐가 문제에요?”
“저,, 전 좋아하는 사람이···.”
“에이 그럼 우리 연락부터 하고 지내요. 막 사귀자는 게 아니라······.”
“몇 시 부터 나와 있던 거예요?”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 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고, 여자는 말을 걸던 남자 뒤에서 들리는 인영의 얼굴을 확인하고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어떤 새끼 길래.’
뒤를 돌아본 남자는 상대를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고삐리?’
그냥 봐서는 고삐리인 것 같지만 이마의 상처며 몸에서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기운이 남자를 흠짓 놀라게 했다. 남자는 그게 어떤 건지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어느새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 있었다.
“아직 약속 시간 20분 전인데.”
“아, 그게 마음이 급해서······.”
여자는 다름 아닌 지혜이었다. 지혜는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머리를 쓰러 넘겼다.
“자. 가죠.”
시우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혜를 이끌자 남자가 발끈하여 시우의 어깨를 잡아챘다.
“야, 너 뭐야? 왜 갑자기 끼어들어···.”
단단한 시우의 어깨는 남자의 손짓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시우가 짧게 말했다.
“꺼져라. 면상 부서지기 전에.”
천천히 걷는 시우와 지혜. 그리고 시우에게 한순간 공포 마법이 점철된 협박을 들은 남자는 그 자리에서 부르르 떨다. 지혜와 시우가 사라졌을 쯔음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주저앉았다.
“뭐, 뭐야.”
“잘 지내셨어요?”
“······.”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은 대화가 없었다. 지혜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올리지 못하고 슬쩍슬쩍 곁눈질로 시우의 얼굴을 살필 뿐이었다.
“그때 다친 곳은?”
지혜는 시우의 이마를 보다 그제야 남은 상처를 보았다.
“역시 그때···.”
지혜는 병원에 바로 갔었어야 한다는 생각에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하지만 시우는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대학생 아니에요?”
“네? 맞아요.”
“그럼 말 편히 해요. 전 고등학생이니까.”
시우는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 그럴까요?”
지혜는 며칠간 그날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악몽이 되살아나고 되살아났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시우.
그때마다 지혜는 계속 시우에게 연락을 시도해 보았지만, 시우는 이제야 지혜를 만나러 와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우가 보여주는 따뜻한 미소에 지혜는 그 동안의 고통과 상처에 대한 괴로움이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공부를 잘 하나봐요. 항상 파일 책을 가지고 다니시네?”
그렇게 말하며, 시우는 지혜의 파일을 보았다. 이미 닳을 대로 닳아 버린 파일 철 껍데기에는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와. 누나 수재네. 과는 무슨 과에요? 설마 법학과?”
지혜는 시우의 입에서 ‘누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뭔가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저기,”
“네.”
“그 ‘누나’라는 말 안하면 안 될까요?”
지혜는 자신이 이야기 하고도 무슨 소리를 내뱉은 건지 정신이 없어 머리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시우는 다시금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름이 뭐에요?”
“지혜. 홍지혜.”
“그럼 지혜씨라고 부를 까요?”
“네.”
지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시우씨는 어떤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냥 편히 해도 되는데.”
시우의 말에 지혜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누나 동생 하면서 관계를 확정짓고 싶지 않았다.
“그럼 너도 편히 말해. 씨자 빼고.”
지혜가 뭔가 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시우는 속으로 실소를 지었다.
이세계에서의 90년. 이미 관록이 쌓일 대로 쌓인 시우에게 한 두 살 차란 큰 의미가 없었지만, 아마도 지혜 입장에선 큰 결심을 한 것이리라. 시우는 나름대로 그 마음을 배려한다는 의미로 편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중에 다시 누나라 불러라 어째라 그런 말 하지 마.”
“으, 응.”
지혜는 어쩐지 볼을 발그레 붉히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우는 편안히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 밖 거리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아, 그 대학, 대학 어디로 갈 예정이야?”
말이 꼬인 지혜는 창피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
“대학?”
시우는 사실 공부는 하고 있지만, 딱히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이계로 넘어 갔을 때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이루고 다시금 제로로 시작한 이때엔 달리 뚜렷한 목표를 찾을 수 없었다.
마법을 활용한다면 돈벌이는 쉬울 것이고, 무슨 일을 하든 목표는 달성할 수 있겠지만, 과거처럼 세계정복과 같은 로망 넘치는 삶을 살 순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마법을 익히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마법이란 수족과 같고 뇌와 같은 것이다.
손이 두 개이던 사람은 하나로만 산다면 불편할 것이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사고하던 사람은 자신의 뇌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계는 시우에게 너무 약하다.
시우 같은 비슷한 존재가 있다 해도 자신과 대적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은 무려 지옥에서 마왕과 대적하던 존재.
과거의 약자에서 현재의 강자로서 그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응. 꿈이나 목표가 뭔데?”
이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빛내는 처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시우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세계정복.”
“뭐?”
“세계정복.”
“호호호호호. 농담 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지혜는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세계 정복을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네?”
“세계 정복하고 공부가 무슨 상관인데?”
“세계 정복을 하려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잖아.”
“하······. 하······.”
시우는 시덥지 않은 지혜의 말에 억지웃음을 보여 주었다.
“혹시 목표로 하는 과는 뭐야?”
“···음. 과는 모르겠고 일단 목표는 서울대.”
“정말?”
“응.”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대충 어디 가야겠다는 생각은 해둔 시우이었다.
역시나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실 만한 대학은 서울대이고, 과는 자율전공으로 이과와 문과계열의 수업을 모두 배워볼 생각이었다. 이미 마법의 극의를 터득한 그의 기억과 경험이 다른 학문에서도 쉽게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나 서울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어!”
“역시 내 예상이 맞은 건가? 하하.”
“잘 됐다. 혹시 내가 입시나 공부에 대해서 도와줄까?”
“아니,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
“···그래.”
지혜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나 과를 이야기 하면 늘 상 주변에선 대단하다는 놀랍다는 표현이 당연시 되었다.
더불어 도움을 받기를 바라거나 친해지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건만, 당당하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우의 말이 지혜는 놀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우는 자신을 누나라고 부를 만한 나이이고, 아직은 고등학생. 쉽사리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불어 시우는 그 일이 있은 뒤로 단 한 번도 연락을 안 하지 않았던가.
지혜의 표정이 침통하게 변하고, 그 표정을 쓴웃음으로 바라보던 시우가 턱을 쓸었다.
“뭐, 과외보다는 가끔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는 건 어때? 나 먹는거 좋아하거든.”
“어? 정말? 나···나두 좋아해.”
지혜는 순간적으로 과외를 하나 더 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순간 환하게 변하는 지혜의 표정을 보며 시우는 속으로 쓴웃음을 다시금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에그, 표정관리 좀 하지.’
누나인 척 어른인 척 의젓한 모습을 보여 봐야 이제 갓 스무살. 백 여년 이상을 살아봤던 시우에겐 그저 귀여운 모습으로만 보였다.
“그만 나갈까?”
“어? 벌써?”
지혜가 급작스레 표정을 굳혔다. 그리곤 시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점심 먹으러 가자 배고파.”
“그, 그래!”
지혜의 얼굴은 또 한 번 빛을 발하듯 환하게 빛나며 시우의 뒤를 쫓았다.
시우와 지혜가 사이좋게 나가는 길. 카페 구석에서 한 사내가 두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데고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 6 > 끝
ⓒ 진(J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