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5화 (5/200)

< 5 >

민서는 요즘 기분이 이상하다.

방학도 했고, 날마다 친구들과 강남이며 이태원이며 쏘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드는 존재는 학교나 친구들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혈육. 학교 최고의 찐따이자. 비굴한 빵셔틀인 오빠 때문이었다.

처음 이상한 것을 느낀 건. 방학이 시작할 때쯤이었다.

정신이 나간건지 이상해진 건지. 오빠는 갑자기 방청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하고 부모님께 아양을 떨며 안마를 하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서는 심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느꼈다.

사람이 죽을 준비를 할 때 주변을 정리하고 그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던데.

오빠가 딱 그 모습으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비록 오빠를 미워하고 경멸했지만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간직하고 있던 민서다. 괜스레 무슨 일이 있냐며 부추기기 보단 그저 기도하고 티나지 않게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빠는 자신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며 자신의 물건들 대부분을 정리하고 버려버렸다. 그렇게 아끼던 장난감이나, 만화책, 게임 포스터 등등 괴로운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많은 보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구기고 찢어 버려버린 것이다. 거기에 촌스러운 옷들은 모두 버려버리고 교복은 깨끗하게 드라이 시켜놓았다.

이제 유서만 발견되면 정황상 자살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민서는 불안한 마음을 품고 시우가 없는 동안 샅샅이 시우의 방을 뒤졌지만 유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민서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깨어 마루로 나갔다가 기절할 뻔하였다.

시우가 온 몸에 피칠 갑을 하고 팅팅 부은 얼굴로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심하게 질책하며 누가 그랬는지 물었다. 민서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었다. 하지만 시우는 어쩐지 어른스러운 미소로 씨익 웃으며 민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그저 ‘계단에서 굴렀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 일이 있은 뒤 어쩐지 민서와 시우의 사이는 조금 바뀌었다.

민서는 더 이상 시우를 무시하지 않았다. 또한 시우가 바뀐 점도 많았다. 이제 더 이상 어깨를 구부리고 다니지 않았다.

머리는 짧은 투블럭컷으로 잘랐고, 그래서 이마의 깊은 상처가 훤히 보였지만 그닥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차분해졌고, 음성은 낮아졌다. 가끔씩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죽일 듯 책을 노려보는 집중력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띠링!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민서의 핸드폰이 울리고 민서가 창을 확인했다 오빠였다.

-지금 집에가 가는 길에 마트 들릴 거야. 필요 한 거 있어?

민서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나 초콜릿! 초콜릿! 사탕! 사탕! 고기! 고기!

민서가 답장을 보내자 금새 답장이 왔다.

-너 그러다 돼지 된다. 알았어.

민서는 핸드폰을 끄며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며 혜정이 물었다.

“누구야? 남자 친구야?”

“신경 꺼! 빨리 가자. 너 그 옷 보러 간다고?”

“기집애. 치사하게 좋은 일을 혼자 독차지 한다 이거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그런 거라면 진작 너한테 얘기 안했겠냐!”

“그럼 뭔데!”

혜정이 채근하고 그 옆의 소현도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반짝 거리자 민서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빠야. 오빠가 집에 오는 길에 고기 사온다는 메시지 보낸 거야.”

“그, 시우가 오빠?”

혜정은 어쩐지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아? 시우 오빠는?”

혜정의 물음에 민서는 어쩐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뭐, 잘 모르겠어. 방학을 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뭔가 좀 변했다 라는 느낌은 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그거보다. 2학년 짱 오빠 말이야. 내가 듣기로 개학을 하면 그······.”

혜정의 불안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민서도 소현도 덩달아 가슴이 쿵쾅거렸다.

“뭔데? 그 새끼가 뭐?”

말로는 비하하며 말하지만 시우를 괴롭혔던 조세형은 매우 공포스런 인상의 사람이었다.

“너희 오빠를···. 어떻게 하겠다고···.”

거기까지만 들어도 민서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미, 민서야 괜찮아?”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민서가 혜정에게 물었다.

“왜, 왜? 왜야? 왜 우리 오빠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 인거야?”

“그, 그게 방학 시작하고 도재민이 시우 오빠한테 전화했었나봐. 근데 시우오빠가 경찰에 신고한다는 둥 소년원에 보내버리겠다는 등의 말을 해서 도재민이랑 조세형이 많이 열이 받아 있는 상태래.”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에 민서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지, 지금 가봐야겠어.”

그렇게 말하곤 민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만 남은 두 사람은 민서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시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참으로 선하고 착한사람. 동생 친구인 자신들에게도 마치 친동생처럼 대해주었던 시우는 자신들에게도 친 오빠같은 존재였지만, 시우 오빠가 공개적인 이지매를 당하기 시작하면서부턴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멀어져 가는 민서를 보며 시우의 안전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삼진그룹 김세중은 간밤에 날벼락을 맞았다. 아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하나뿐인 동시에 자신과 똑 닮은 자신의 아들이 말 그대로 피죽음이 되어서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이다.

거기다 강간폭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르다가 의문의 시민에게 가혹한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아들은 아직도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녘 기사를 채근하여 한달음에 달려간 중환자실에선 김세중은 자신의 아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 침대 바깥쪽 신원을 확인하는 카드에서 자신의 아들인 ‘김종철’이라는 이름으로 확인 했을 뿐이었다.

처음엔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었다. 가전제품 기업 선두에 선 자신의 기업에 원한을 품었던 것부터 무차별 강도 행위 등등. 하지만 곧이어 찾아온 경찰들의 말에 김세중은 첩첩산중에 발을 들여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소라면 자신의 이름만 들어도 비굴한 웃음을 보이며 설설길 경찰들이 혀를 차며 돌아가지 않았던가.

“경찰청장과는 약속이 잡혔나?”

“네. 미화관에서 7시로 예약해 두었습니다. 곧 출발하셔야 합니다.”

“좋아 바로 가지.”

그렇게 사무실을 나온 김세중은 잠깐의 상념 속에 금방 미화관에 도착하였다.

“어머! 회장님. 어서 오세요!”

고혹적인 미소의 여성이 한복을 입고 김세중을 마중나왔다.

“마담은 여전히 아름답군.”

정제계 재야의 인물들에게 두루 인맥을 갖춘 여성.

한낱 한식집의 주인임에도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을 가진 여성. 더불어 남성에게 참을 수 없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갖춘 여성인 한세아였다.

“그 동안 찾아 주시지 않으셔서. 큰 일이 터지신 게 아닌 가 했어요.”

“미안하네. 내 그동안 바빠서.”

김세중은 잠시간 아들에 의한 고민을 잠시 잊고 한세아에 대한 더러운 욕구가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자 어서 들어가세요. 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벌써 와계시는 가?”

미로 같이 어지러운 건물들을 지나 다다른 건물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제복을 반쯤 훌러덩 벚어 던진 인물과 그 옆에 교태어린 미소를 흘리던 여인이 옷깃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오랜만이오. 이청장. 공무에 바쁘신 분을 이리 오라 해서 미안하오.”

“아이구. 별말씀을 어서 앉으십시오. 얘야, 가서 술을 더 가져 오너라.”

이 청장이 여인의 엉덩이를 툭 치자 여인은 잔망스럽다는 듯 손사래를 털며 방 밖으로 나갔다.

“이 청장. 내 길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무슨 일 때문인지는 잘 알거라 생각하네.”

“엥? 그게 무슨 소리신지?”

이경모 청장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경모를 김세중은 죽일 듯 쳐다보았다.

“하하하. 아이 참. 농담이 통하질 않는 분이시라니까. 하하하.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이경모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에 두었던 서류 하나를 술상 건너편으로 넘겨주었다.

“복사본입니다. 생각보다는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슨 소린가?”

이경모는 혀를 차는 듯 한 비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피해자가 이미 증거자료와 함께 법원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벌써?”

일이 터진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경찰들은 이미 중환자실에서 범인을 수용하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요즘 기자 놈들 출입이 잦아 졌다고 하더군요. 제가 입단속은 시키고 있지만···.”

‘잘 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말을 삼킨 이경모는 달콤한 향이 나는 술을 한달음에 삼켜 내었다.

“상대가 좋지 않았습니다. 증거 사진에 동영상에. 더구나 피해자는 서울대 법대생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중. 그야 말로 첩첩 산중이더군요.”

“······.”

“대충 과잉 방어니 뭐 그런 걸로 역어 보려 해도, 구해준 사람은 사라져버렸고,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은 상황이랄 까요? 하하하”

이경모 청장은 울그락 불그락 변해가는 김회장의 표정을 보면서 속으로 깨소금 맛을 느꼈다. 나이는 한참이나 어리면서 반말을 찍찍 내뱉고, 마치 벌레 새끼를 보는 듯 무시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었다.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재계에 군림한 어린 양아치새끼를 언젠가 쓴맛을 보여주겠다며 벼르던 것이 몇 년, 드디어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슬슬 그만해야겠지?’

“그럼에도 여기에 나왔다는 건 뭔가 건수가 있어서겠지?”

김세중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자중하며 한 마디 한 마디 꺼내었다.

“글쎄요. 있었나? 아마 있었으니 제가 이렇게 나왔겠죠?”

너스레를 떠는 김회장이 깊게 숨을 내쉬며 겨우 말을 꺼내었다.

“이따 집에 갈 때 트렁크에서 짐을 챙겨가게.”

“하하하. 제가 요즘 몸에 기운이 넘쳐서 감질나지 않을 까 걱정마져 드네요.”

“······충분히 힘에 부칠게야.”

“하하 농담입니다. 이제 그만 표정 좀 푸시지요. 하하하, 회장님답지 않으십니다. 거기 서류의 맨 마지막 장에 보시면 소견장이 하나 있습니다. 담당형사가 참고용으로 써 놓은 것 같은데. 아마도 그게 ‘그 놈’을 찾는 길이 될 겁니다.”

“알았네.”

김세중이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드르륵 문이 열리고 작은 술상과 한세아 그리고 아까 전 청장 옆에 있던 여인이 함께 들어 왔다.

“어머? 벌써 가시려구요?”

한세아의 놀라하는 표정에 김세중은 슬쩍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미안하네 한 마담. 오늘은 내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겠어. 대신 우리 청장님을 잘 부탁하네.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극진히 대접해 드려.”

“초롱아 들었지?”

한세아가 초롱이라 불린 여인에게 잉크를 날렸고, 초롱이라 불린 여인은 교태 섞인 콧소리를 내며 청장에게 진득하게 붙었다.

김세중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자. 한세아가 뒤를 따랐다.

“오늘은 고마웠네. 내 조만간 또 찾아오겠네.”

“언제든 회장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세아가 매혹적인 외모와는 반대로 단정히 인사를 했다. 김세중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키곤 차에 올랐다.

멀리 멀어져 가는 차를 보다가 한세아가 손짓을 하였다.

“부르셨습니까?”

“가서 이번 일 좀 조사해봐.”

“삼진그룹 전체를 살펴볼까요?”

“아니, 그럴 필욘 없을 꺼야. 아마도 가족에 관련된 일이겠지. 그 개망나니 아들 때문일 수도 있고, 연관되어 있는 건 다 뽑아와.”

뒤에 서 있던 남성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세아가 김회장과 나눈 대화는 그저 안부 인사에 지나지 않았을 뿐. 그것으로 어떤 추리를 했기에 구체적인 인물까지 찍어 줄 수 있는 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홀로 남은 한세아가 멀어져 가는 차의 붉은 미등을 보며 읊조렸다.

“삼진그룹에 구멍이 생긴 건가? 아니면 목숨 구할 길 없는 애송이가 나타난건가?”

경찰청장과 그룹 회장의 밀담. 이 만큼 정재계에 드문 만남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5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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