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헙! 작다.’
최근 40년간 이런 좁은 방에서 지내본 적이 없었다.
캐리노스 제국을 건설하고 대궐 같은 궁전을 지었다. 천정은 아득하게 보일정도로 높게 지었고, 방에는 한참을 기어가야 겨우 중간에 닿을 만한 넓고 아늑한 침대를 두었었다.
지금의··· 아니 본래 살던 이 집의 크기는 이 세계의 침대보다도 작게 느껴졌다.
방안의 공기는 후끈 달아 있었고, 공기는 텁텁하게 느껴졌다. 씽크대엔 아침에 먹고 씻지 않은 그릇들이 야릇한 냄새를 풍기고, 베란다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 사이로 뿌연 연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휴. 덥다. 더워.”
민서는 집에 오자마자 훌러덩 옷을 풀어 헤치고 선풍기 앞에서 티셔츠 안으로 바람을 넣었다. 노란 브라가 보이는지 말던지 민서는 상관없다는 듯 티셔츠를 펄럭 거렸다.
‘다 큰 처자가···.’
시우는 한 소리 하려다가 민서가 보이는 본능적인 적대감을 생각하며 관두고 자신의 방에 들어섰다.
두 걸음을 걷기도 전에 들어 선 작은 방은 햇빛과는 반대여서 우중충함이 밀려오는 듯 했고, 방안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수선함으로 물건들이 마구 어질러져 있었다.
대충 이불이 퍼져있는 싸구려 침대위에 철퍼덕 누운 소년은 지그시 눈을 감고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왔단 말이지.’
과거. 그러니까 이계로 가기 직전. 방학을 맞이하여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벗어났다는 잠시간의 안도감과 더불어 방학이 끝난 후에 밀려올 괴로움들. 그리고 혹여나 방학 내내 또 다른 괴롭힘과 구타 등등이 이뤄질 것 같다는 망상 속에서 얼굴이 펴지질 않았었다.
그렇게 멍하니 걷는 사이 차원의 빛에 직격탄을 맞아 버렸는지 이계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금 돌아온 것은 똑같은 방법을 통해서였고, 신체와 능력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내가 이계로 간 것부터가 예정되어 있던 행로였던 것인가?’
본래 신을 믿지 않았지만, 이계에 살게 되면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곳의 신들은 인간과 신들의 세상에 많은 관여를 했고, 서로 다른 종족들을 조율했다.
한 명의 전능한 신이 다스리지 않았고, 각자 맡은 바의 부분들을 조율하고 또 인간처럼 서로 경쟁하면서 신과 인간 세상에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 노력했었다.
“단지 구원자로서 사용하고 버린 카드라 이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약이 오르는 마음에 힘껏 천정을 향해 발차기를 하게 되는 그였다.
자신이 이계에 떨어 졌을 때. 대륙은 거대한 혼란 속에 소용돌이치는 폭풍과도 같았다.
중간계의 국가는 서로 뿔뿔이 찢어져 서로의 영토를 탐내고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고, 마계는 중간계와 통로를 연결하여 마계의 악마들과 괴물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의학마법과 치료성법은 발달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인간들에게만 독점되는 것들이었고, 힘없는 자들은 죽거나 혹은 버티고 더욱 강인한 육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시우는 그곳에서 철저히 외부인 이었다.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도 흔한 것이 아니었지만, 노란색 피부와 넓적한 얼굴형은 그들에게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존재였으니까. 물론 그것 때문에 흑마법사들에게 끌려가 잔인한 실험과 고문을 받았던 것은 결코 좋지 못한 기억이었지만.
재미난 것은 지구에 있을 때 좋아했던 약간의 지식이 이계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이계의 세계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나 유럽의 개척시대와 비슷한 점들이 많아서 국가를 세우고 경영해 나가는 데에 2500년가량의 인간발전사 지식은 좋은 밑바탕이 되 주었다.
그렇게 대 제국을 세워 대륙의 평화를 이끌어 내었지만, 이미 혼란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던 탓에 인간계의 피가 마계에 흘러 마계의 힘이 넘쳐나 중간계로 뻗어 오고 있었다.
당시엔 겨우 만들어낸 대 제국이 까딱하면 마계에 넘어갈 지경이었고, 소년은 대중을 선동하여 영웅들을 모아 마계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을 보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이건가?”
어쩌면 마신과 주신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선 차원 이동 정도의 초고개념이 적용되지 않고선 시행될 수 없는 일이 찰나의 시간을 두고 이행되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마력도 다 빼앗겼고.”
이계에서의 마지막 능력만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 그 빌어먹을 마신을 쳐 죽일 수도 있었고,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세계정복등등의 야욕을 들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마치 한바탕 꿈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다행이라면 틈날 때마다 열심히 즐기고 놀았던 탓에 큰 후회는 남지 않는 다는 정도?
“그래. 잘 먹고 잘 살고 있어라. 돌아 갈 수 있으면 다시 돌아가고, 돌아가면 니들은 다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거다.”
시우는 번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 등을 서서히 둘러보았다.
필요 없는 물건들이 가득하고,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 아마도 과거엔 소중한 것들이라며 꼭꼭 보관했던 것들이겠지.
소년은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 박스를 가져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필요 없는 것과 필요한 것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아이 참나.”
깜빡 졸았던 걸까? 민서는 무거운 몸을 찌뿌둥하게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셔츠는 풀어 헤쳐진 채로 안의 티만이 가슴 부분에 불룩하게 튀어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단잠을 깨운 범인을 찾았다. 원수 같은 오빠.
과거에는 착하고 여리고 언제나 동생을 끔찍하게 아껴주었던 오빠였지만 지금은 그저 한낱 잉여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왕따가 시작된 건 중 3학년 때.
당시 민서는 오빠와 같은 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함께 같은 학교 다니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오빠가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 뒤부터 민서의 생활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넥타이 끈만 잡아 당겨진 채로 복도에서 질질 끌려 다니거나, 화장실에서 맞으면서 걸레가 되어 가는 오빠의 모습은 고통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오빠의 왕따 생활이 점점 심해져 가는 동안 민서는 서서히 자신의 주위에 변해가는 친구들을 느낄 수 있었다.
민서 자신 또한 오빠처럼 조금씩 왕따를 당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던 것이다. 단순히 왕따의 동생이란 이유만으로. 여자인 것이 다행이었을 까?
민서는 슬기롭게 행동하여 왕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때부터 오빠를 벌레처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하는 시늉이었지만 마음이 행동에 이끌러 가듯 진심으로 오빠를 경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다음 해에는 오빠와 다른 학교를 가길 바랐지만, 부모님의 지극한 반대로 결국 이루지 못했고, 학교에서도 아는 둥 마는 둥 다니는 걸로 자신의 불만을 해결하는 정도였다.
언제나 자신을 만날 때마다 보이는 그 비굴하고 저열한 미소. 자존심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바보 같은 인간.
“뭐 하는 데 이렇게 시끄러워?!”
민서는 오빠의 방문을 벌컥 열어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오빠는 멈추지 않고 청소기를 계속 돌리고 있었다. 방에는 한가득 쌓여있던 책들과 잡동사니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쓰레기봉투는 가득 차서 넘치기 직전이었다.
“야! 시끄럽다고!”
소리를 계속 질러도 오빠는 반응이 없었다.
“에휴! 이 한심한 인간. 그래 평생 그렇게 살아라!”
민서가 방을 나가고 시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청소를 했다. 책장과 컴퓨터 있는 공간은 이미 쓸모없는 잡동사니들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몸이 힘들어.’
한여름 날씨 탓도 있었지만 본래의 몸으로 돌아오면서 과거 만들고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탓이 컸다.
시우는 그럼에도 쉬지 않고 계속 청소를 했다. 어찌 되었든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은 몸을 깨우는 행동이다. 그것이 운동이 되었든 청소가 되었던 몸을 계속 움직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같는 행위이다.
민서의 방을 제외하고 청소가 다 끝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가고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부모님의 귀가는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본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셨던가?’
딩동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벨소리가 울리고 시우가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삶의 무게를 잔뜩 지고 있는 부모님이 돌아 오셨다.
“다녀오셨어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이야기. 어쩐지 시우는 마음을 담은 듯 작게 떨려 왔다.
“그래 학교 잘 다녀왔냐?”
머리가 하얗게 새어 버린 아버지가 물었고, 시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먹었니?”
아버지 뒤에서 어머니가 물었다.
시우는 대답 없이 두 사람을 꼭 껴안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줄 알았다. 이미 이 세계에 떨어지고 90년. 부모님을 그리며 두 개의 달에 두 사람의 얼굴을 그렸던 게 몇날 며칠이던가. 하지만 거대한 삶의 무게 앞에 마음은 점점 무뎌졌었다. 그리고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연기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단순 그렇지 만은 않았다. 시우의 마음은 찡하게 감동이 밀려왔다.
“누가 이렇게 청소를 깔끔하게 했데?”
“하하. 제가 했어요. 배고프시죠? 저녁 준비 할게요.”
“됐다. 시우야! 들어가 공부나 해라!”
어머니는 손 사례를 치면서 거절했지만 시우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방학도 했고요.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할게요. 물론 매일은 하지 못하겠지만.”
“호호호. 나 참. 역시 오래살고 볼일이네. 그죠? 여보?”
그날 저녁. 약간 싱거운 김치찌개와 약간 질은 밥이 상위에 올라왔고, 방안에서 한참이나 나오지 않았던 민서는 툴툴거리며 나중에 나와 밥을 먹었다.
아직 이른 새벽.
지은 지 오래되어 난간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옥상 끝에 누군가 지그시 깨어나지 않은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힘을. 되찾아야겠지?”
처음 이계에서 현실로 돌아온 후에 찾았던 것이 바로 마나였다.
이계에선 그 개념이 확실화 되어 있고 실생활에 밀접하게 적응되었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다를 수 있었기에 시우는 현실을 인식하자마자 신을 향해 엿을 먹이곤 바로 마나를 찾았다.
예상대로 이계만큼은 아니었지만 마나의 존재는 분명히 있었다.
이로서 서로간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법칙에 관한 간섭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실시 되는 것이었다.
“다크 마나가 좋겠어.”
탁한 공기. 오염된 나무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땅. 과도한 인구와 그로 인해 발생되는 온갖 마이너스 감정. 시우가 가장 익숙해하고 편안했던 기운이다.
시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크 마나가 말을 걸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나의 속삭임은 쉽게 들리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시우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마나에 대한 몸의 각인을 일깨우고 아침운동을 했다. 방청소를 시작으로 아침공부 후에 점심을 먹고 점심 공부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는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 저녁을 준비했다.
-띠링 메시지 왔어요.
두 개의 두부를 두고서 고민하고 있을 때. 시우의 핸드폰이 띠링 울렸다. 너무 오래 되서 까먹을 뻔했지만 이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던 메시지 서비스 초콜렛톡이었다.
-야. 8시 까지 10만원 들고 천호로 와라.
천호라면 온갖 술집과 모텔 등 유흥문화 시설이 가득한 곳이 분명했다.
시우는 깔끔하게 씹어주며 다시 두부에 집중했다.
-띠링 메시지 왔어요.
-띠링 메시지 왔어요.
-띠링 메시지 왔어요.
연달아 오는 메시지에 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대답 안하냐?
-야 뒤진다!
-아 이 새끼 완전 미쳤네.
시우는 가뿐하게 수신차단을 걸어버리고 쇼핑에 집중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메시지를 차단하니 전화가 온다. 기억이 난다. 도재민인가 도민지인가 하는 이상한 이름을 가졌던 녀석. 과거 90년 전에 너무도 두려워했었던 기억이 났다.
-야이 씨발새끼야! 내 메시지 생까냐?! 저번에 덜 맞았지? 뒤질래?! 야! 야! 야! 대답 안 해?! 너 이 개새끼 진짜 집에 찾아가서 처 죽여 버린다!
살벌하게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 옆에 지나가던 사람들에게까지 들렸는지 사람들이 슬금슬금 시우를 피했다. 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무섭지 않다. 아니 무서울 일이 없다.
다만 많은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귀찮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나이 가는 길에 싸움을 피할 수 없는 법. 귀찮은 일이라면 정면 돌파뿐이다.
“자꾸 귀찮게 굴면 경찰에 신고한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라.”
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버리곤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어쩐지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를 할 것 같았다.
확실히 시우는 달라졌다.
아니 달라졌다. 라는 말보다는 강해졌다는 말이 더 잘 맞으리라.
시우는 강해졌다. 그 강함은 마나나 마력 체력 무력 등의 강함이 아니다. 정신적 강함. 신념의 고결함. 스스로에 대한 믿음 등이 강해진 것이다. 아직 체력적으로도 마력적으로도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상대 할 수 있었다.
진짜 세상의 잔인함에 비하면 학교의 폭력배들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왔다!’
무려 14일 만이었다. 14일 만에 첫 속삭임과 동시에 마나와의 교감이 이루어 졌다.
‘단숨에 완성한다.’
시우는 서서히 온 몸으로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먼지처럼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잘 보이지 않았던 미세한 작은 것들이 서서히 시우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시우의 피부 등을 통해 온몸으로 흡수 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흡수하자 시우의 몸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검게 물들었다.
시우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마치 중수(重水) 속에 들어간 것처럼 거대한 압박이 시우를 잡으려 했고,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찢어지는 고통의 아우성과 기괴한 울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시작한다.’
시우의 입에선 지구상 어떤 곳에서도 쓰지 않은 언어가 영창 되었다. 동시에 시우의 의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전문은 기본적인 마나의 수집과 생성을 담당해왔었다.
시우의 온 몸에 차있던 마나가 서서히 움직였다. 머리에 있던 다크 마나는 발로가고 발에 있던 마나는 머리로 향했다. 동시에 시우의 가슴속에 심장을 감싸듯 도는 작은 실의 원형이 생겨났다. 검은 마나가 그 실을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계속해서 작은 원형의 실을 지나서 몸을 돌때마다 실은 점점 두꺼워졌다.
-끼야야야악!
-커으으윽!
-까아아아악!
제어를 거부하는 검은 마나는 마구 발광하며 시우의 몸을 지배해버림과 동시에 무차별적인 파괴와 저주를 퍼부었다.
시우의 피부는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피부아래의 핏줄은 금방이라도 밖으로 나올것처럼 푸르게 나신의 모습을 내보였다.
거대한 압력이 몸 안쪽에 가득해 시우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할 때.
시우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마나의 회전을 더욱 빨리 했다.
‘단숨에 제압하라!’
신념에 명령하듯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이를 앙 무는 순간. 검붉은 핏물이 입가에 주르륵 흐르며 폭주하던 검은 마나가 서서히 원형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흡수력은 서로간의 자력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그 속도를 빨리 했고, 서클의 필터를 지나지 못한 찌꺼기들은 서클 주위를 먼지처럼 떠다녔다.
그렇게 온 몸에 가득했던 검은 마나는 결국 새끼손가락 마디 굵기에 작은 원으로 변해 심장에 완전히 안착했다.
“후우.”
금방 엄청난 회전을 하고난 서클의 에너지를 반대로 내보내어 서클 주변의 자리한 찌꺼기들을 억지로 내보내었다. 한 여름임에도 시우의 입가에서 하얀 김이 쭈욱 나왔다. 피부 사이에서도 작은 연기들이 피어올라 시우는 마치 자연 발화인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시우가 감았던 눈을 다시금 떴을 때. 순간적으로 시우의 두 눈이 완전한 검정색으로 변하였다가 본래의 흰자와 검은자를 되찾았다.
‘1서클이라.’
본신에 있던 힘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밖에 할 수 없지만, 되찾은 젊음과 알았던 길을 다시금 가는 것에 그다지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첫 마법은 이거지! 내 신체의 일부이자 내 마나의 근원을 함께 하고 또한 내 의지와 함께 움직일지니!”
시우의 주문과 함께 시우의 오른 손에 거칠게 일렁거리는 검은 색의 기괴한 물체가 생겨났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같기도 하고 출렁이는 물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완드제조 마법. 법사의 마나로 만드는 만능형유체변화지시도구였다.
시우는 그런 완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일렁이는 물체가 스윽 모습을 바꾸었다.
평범한 볼펜.
검은 색은 평범한 볼펜이 어느새 시우의 손아귀에 존재하고 있었다.
“뭐 나쁘지 않군.”
손가락으로 몇 번 볼펜을 휘휘 돌린 시우는 볼펜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살려~ 읍!"
흑마법의 부작용이었을까, 아님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절규인가. 시우는 우뚝 멈춰서서 방금 절규가 들린 방향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 2 > 끝
ⓒ 진(J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