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화 (프롤로그) (1/200)

< 프롤로그 >

죽음마저 초월하여 천상계와 마계를 모두 경험해봤다는 대현자 빌리언트의 말 대로 지하계의 모습은 인간의 상상으로 한계를 지을 수 없는 절망의 공간이었다.

사방에 이글거리는 용암이 용솟음 치고, 검은 혜성이 끊임없이 떨어져 내려며 1년 중 하루도 해가 뜨지 않는 억겁의 고통과 절망만이 존재하는 이곳.

그곳에 한 존재가 마계의 대마왕 슈덴베르크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명색이 대 마왕이라 이건가!”

타이탄도 잃고 알머스트도 부서 졌지만 그의 로브 사이로 번뜩 이는 두 눈은 승리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믿음이 입가를 기괴하게 웃음 짓게 하고 있었고, 몸 전체에선 거침없는 투기가 사방을 내지르고 있었다.

“나 바라노라! 어둠 그 안에 잠든 심연의 야수여 지금 두 눈을 뜨고 저 거짓 왕의···.”

대 마왕 슈덴베르크를 위한 초월 마법이 처음으로 시연되려 하고 있었다.

수작(手作)마법을 지나 언령(言令)에 이르렀고, 이제는 마법과 심령(心靈)이 하나 된 상태. 그의 손과 입과 마음이 동시에 움직여 마계와 중간계 천상계의 절대 규칙을 벗어나버린 초월마법으로 펼쳐졌다.

“···두 무릎을 물어뜯어 내 앞에 굴복하게 할 것을 명하노라! 비스틀···.”

하지만, 그 순간 하늘이 썰물처럼 양 옆으로 갈라지며 백색에 가까운 빛이 검은 로브를 입은 존재를 감쌌다.

초월 마법으로 오감과 심령을 모두 닫은 상태였던 중간계의 절대자는 그것도 모른 체 제한마법의 마지막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절대자의 모습도 마계에서 사라졌다.

< 프롤로그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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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콰당!

“아악!”

온 몸을 덮쳐오는 끔찍한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서클 붕괴 후에 처음으로 겪어본 고통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더불어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무엇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정신이 붕괴되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이 꿇어지고, 딱딱한 대지엔 후텁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눈을 뜬 순간 환한 빛이 망막을 불태울 듯 작렬하고 있었다.

한계를 벗어난 인내심으로 캐스팅을 그리며 주문을 외웠다.

“두 무릎을 물어뜯어 내 앞에 굴복하게 할 것을 명하노라···.”

이 주문만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때, 오랜 시간 동안 듣지 못했던 지구의 한 국가. 그 나라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언어가 들려왔다.

“이 새끼 지금 뭐라고 씨부리냐?”

“뭐? 랑슈베크르? 뭔 말이야? 이런 외국어 들어봤냐?”

“씨발! 전교 200등 하는 놈한테 뭘 물어봐.”

“병신아 무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문인가 보지.”

“야! 최시우!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환상마법인가?? 시우는 자신의 몸에 새긴 통각 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해 심장 부근에 손을 얹고 밸브를 돌리는 것처럼 손목을 돌렸다.

‘통하지 않아?!’

통각 마법은 뇌에 직격하는 마기의 환상마법을 막기 위한 신경계 마법이었다. 환상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뇌에 일깨워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어찌나 강력한 마법인지 통 이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 병신 진짜 뭐하냐. 야, 그냥 끌고 가!”

조세형의 명령에 그의 일당들이 손과 발을 하나씩 잡고 짐승처럼 질질 시우를 외진 곳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퍽! 퍽! 퍽! 퍽!

꽤 둔탁한 소리가 울릴 때마다 시우의 얼굴과 몸은 점점 엉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개 새끼야! 그러니까 가져 오랄 때 가져왔으면 좋잖아!”

거칠게 발차기가 이어질수록 하얀 시우의 교복은 점점 흙투성이 먼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폭행을 당하고 있는 동안 거북이처럼 잔뜩 웅크린 시우는 머리를 최대한 보호하며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단지 이렇게 시간이 흐를 뿐이라고?’

환상 마법은 찰나의 시간동안만 대상자를 잡아둘 뿐이다. 혹은 그 환상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끝없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던가.

하지만 시우처럼 고 서클의 대마도사에게 그런 환상은 걸리지 않는다. 진리를 깨닫고 세상의 수백만 가지의 원리를 꿰뚫은 깨어난 뇌엔 어떠한 삿된 것도 현혼 할 수 없는 절대적 방어라는 것이 있었다.

“그만.”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조세형이 연기를 풀풀 풍기며 천천히 시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한탄하듯 말했다.

“씹새끼야, 그러니까 말로 할 때 잘 알아들으면 좋잖아. 어? 우리 이렇게 상스러운 사람 만들고 그럼 좋냐? 개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자꾸 품위가 없어지잖아.”

그렇게 말한 조세형은 시우의 목덜미에 담배를 껐다.

치익.

재가 꺼지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비명 소리를 예상한 조세형은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 시우를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불씨가 다 꺼져 갈 때까지 시우는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시우의 독한 모습에 조세형은 당황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개, 개새끼야, ..하아. 앞으로는 똑바로 해라. 진짜 다음에도 또 이지랄로 나오면 네 여동생 엄마 아빠 다 칼로 찔러 죽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냐?”

조세형이 살짝 당황하며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우의 고개가 번쩍 들리면서 그의 왼손이 뱀처럼 튀어 나와 조세형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낚아챘다.

“커, 컥! 이 개, 개새끼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조세형이 시우의 손을 마구 쳐내며 발악했지만, 벽면으로 조세형을 밀쳐낸 시우는 떨어질 줄 몰랐다. 동시에 오른손이 올라가 그의 도드라진 광대뼈를 내려치려는 순간, 뒤에서 구경하던 일당들이 혼비백산해 시우를 뜯어 말렸다.

‘놓치지 않는다.’

이를 앙문 시우는 전장터에서의 감각을 되살려 순식간에 조세형의 목덜미를 뜯어 재끼려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근육엔 힘이 들어가지 않고 혈액은 미미하게 흘러 원하는 바를 실행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컥컥 큭 하아! 시발! 밟아!”

겨우 시우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조세형은 그렇게 외치자 일당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고 시우는 그렇게 걸레짝이 될 때까지 구타를 당했다.

“자기야, 어디까지 올라가려 그래.”

“쫌만 더 가면 돼. 거기 가면 경치가 끝내준다니까.”

“경치야 그냥 스카이 라운지에 가서 보면 되지 뭘 이런데 까지 와.”

“거기 가면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흐흐.”

“아잉, 몰라. 빨리 가자.”

두 남녀가 그렇게 금방이라도 하나가 될 듯 착 달라 붙어 목적지에 가까워 질 때. 조명하나 없는 등산로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인영을 발견하였다.

“자기야, 누가 있는데?”

“그러게, 이 시간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헉!”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남자는 어스름하게 비추는 햇빛 사이로 인영의 형태를 보고 질겁하였다.

온 몸에 흙먼지가 가득하고 얼굴에 피칠갑을 한 그 인영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불이 하나씩 들어오는 도시의 전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기 학생. 괜찮아요?”

남자가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인영은 답이 없었다.

“자, 자기야 가자 나 무서워.”

“그, 그래도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그러니까. 혹시 우리한테 불똥 튀면 안되잖아. 얼른.”

여자의 채근에 남자는 마지못해 따라가는 척 부리나케 등산로를 내려갔다.

잠시 멍하니 전망을 바라보던 인영은 머리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내며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검은 인영은 다름 아닌 시우. 조세형 일당에게 걸레짝이 될 때까지 구타를 당한 후 도시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한 후였다.

“진짜 돌아온 건가.”

두 손을 보았다. 앙상한 손가락과 남자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한손에 잡힐 법한 팔뚝. 그것을 그대로 타고 올라와 근육하나 없는 이두와 어깨 그와는 반대로 볼록 튀어나온 뱃살까지. 허접하기 그지 없는 그 옛날 자신의 모습이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저 환상이라고만 생각했던 조세형 일당의 모습은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깨워졌고, 텁텁한 공기와 시끄러운 엔진음이 가득한 도시의 모습은 이곳이 자신의 고향 대한민국 서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시우는 현 상태에 굉장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구십 년 전 시우는 조세형의 일당에게 끌려가다 환한 빛과 함께 어디론가 끌려 들어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전혀 다른 이(異) 세계.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판타지 세계였다.

하지만 책으로 만화로 소모되는 것과 현실은 지독하게 달랐다.

알게니하 대륙을 중심으로 중간계는 폐쇄적인 봉건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두려움에 떨어야 했으며 그것보다 더 두려움 귀족들의 폭정은 90%의 일반인들을 지옥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살게 했다.

전쟁과 기아가 이어진 수 천 년의 중간계 역사는 마계에 막대한 힘을 주었고, 균형을 잃어버린 알게니하 대륙은 지옥의 습격마저 받아내야 했다.

공동의 적 앞에서도 인간은 하나 되지 못한 체 악마의 편에 붙는 자와 악마와 대적하는 자가 서로 끊임없는 싸움을 지속했고, 세상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 세계에서 건너온 시우가 편안하게 마법이나 배우며 용사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마계 숲에 떨어져, 처음 보는 괴물들을 상대하다 겨우 목숨을 구한 뒤엔 어느 노예상에게 잡혀 귀족의 놀이게 감이 되었고, 검은 머리의 검은 눈동자를 불결하게 생각하는 알게니하 대륙의 인간들에게 조세형 일당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떨어져 외로움 속에서 고통을 받는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자살뿐이었지만, 냉혹한 노예 관리인 아래서 수번의 자살 시도는 모두 무위로 돌아갈 뿐이었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모르고 생김새마저 달랐던 시우에게 이(異) 세계의 생활은 끔찍할 뿐이었다. 그곳에선 신과 악마가 지구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알고 신전에 가기 위해 시우는 생애 첫 살인을 저지르고 귀족의 집에서 탈출했었다.

하지만 두 달이나 걸리는 고된 사선의 길을 넘어 도착한 신전엔 공물을 바치고 자신의 억울함을 빌어 보아도 쉽게 내려진다는 신탁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 때 어느 마법사의 눈에 잡힌 시우는 탈출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끌려가 인체실험까지 당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나 시우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살았다.

“그렇게나 오고 싶어 했던 곳인데.”

매일 밤마다 울고 또 울며 그리워했다. 가난한 부모도 항상 오빠를 맞먹으려 드는 동생도, 자신을 죽고 싶게 만드는 조세형이 있는 학교도 평화로운 등굣길과 왕따로 괴로움을 보내던 나날들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순순히 마법사의 실험에 응하던 시우는 마법사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그의 목덜미를 깊게 쑤셔 넣었다. 어떠한 마법도 부리지 못하도록 손과 입을 잡고 그의 눈에서 광채가 사라질 때까지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때부터 시우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90년을 알게니하 대륙에서 보냈다.

“혹시, 혹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각인가?”

때로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곤 한다. 90년의 시간은 시우에게 굉장한 고통이었지만, 그건 사실 조세형의 폭행 속에 잠시 꾼 꿈인지도 몰랐다.

실제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알머스트도 사라졌고, 손에 쥐고 있던 엘더로어 소드도 감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온 몸을 채우는 무한의 마나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무엇하나 자신이 알게니하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파왔다.

평생을 쌓아온 마법이었다. 이게 환상이라면 허무 그 자체일 뿐이었다.

“아!”

그 순간 시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종속마법이 생각났다.

만약 마왕과 신의 거래로 자신이 알게니하 대륙에서 지구로 돌아온 것이라면, 아마 거리를 넘어 시간과 존재의 구속되는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될 터였다. 하지만 단 하나. 영혼과 카르마는 신이라 해도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르마 속에 쌓인 기억과 경험들은 자신의 것이고 영혼 또한 자신의 것일 터. 다른 모든 것들이 알게니하 대륙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것(?) 만은 자신을 따라왔을 터였다.

“이걸로, 내가 꿈을 꾼 건지. 진짜 그곳을 다녀온 건지 알 수 있겠지.”

시우는 90년 만에 처음으로 긴장된 모습으로 수인을 맺었다.

“인벤토리!”

황량한 바람이 등산로를 따라 흙먼지를 일으켰다.

낙옆이 서로 스치며 바스락 소리를 내었다.

시우가 실망하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시바 꿈이야?”

그때,

으드드드드.

공기가 울리며 차원의 틈새가 열리기 시작했다.

공간과 공간을 찢어 만든 틈 사이로 영롱한 황금도 거대한 골렘도 보였다. 3층 높이의 건물도 보이고 막대한 식량과 마법재료들 마법 서적들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우하하하!!!!!”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자 시우는 광호한 웃음을 터트렸다.

알게니하의 썩은 귀족과 왕족들이 두려움에 떨어 하던 그 웃음이었다.

“진짜 였구나! 우하하하하하!”

시우의 웃음소리가 인적 없는 등산로를 크게 울리고 있었다.

기억하기론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일진들에게 불필요하게 뻗대다가 개처럼 맞고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질질 흘리며 집에 가고 있었다.

원래 수백 번도 더 걸었던 길. 억울한 마음과 슬픈 마음, 무력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 등에 신경을 쓰느라 몸이 기억하는 대로 걷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그 순간 공기를 찢어발기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바로 눈 앞 하늘에서 거대하고 푸른 빛줄기에 순식간에 몸이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땐. 그곳은 이미 지구가 아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전에도 비슷한 빛줄기가 나한테 내리 쳤던 것 같은데.’

마왕의 강력한 일격 중 몇 가지를 피하고 몇 가지는 성구와 마구로 흡수하며 달려 나갔는데. 그 중 하나가 푸른 빛줄기에 하얀 꼬리를 가진 것이 그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명색의 마계의 왕이니 신급이라 생각하고, 찰나의 시간을 억겁의 시간으로 늘린 후 그 사이에 뒤틀림을 잡았다고 한다면······.”

거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인상이 있는 데로 일그러졌다.

애초에 그 세계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였다. 그 ‘다름’이 대마도사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지만, 그 숱한 고생을 다 하고 이제야 꿀물 좀 빨아보려는 시기에 이렇게 되돌아오게 되는 것도 참으로 억울하지 않는가.

“이제 마계는 박살이 났으니 뻗대지 못하겠고, 전투인원들은 중간계로 돌아가 마물 소탕 작전에 투입되니 중간계에 안정된 평화가 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인데······.”

시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등산로 모래를 움켜지고 사방으로 마구 흩뿌리며 누워서 하늘을 향해 발을 차다가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감자를 날리고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두 주먹으로 애꿎은 모래 바닥을 힘껏 내리 찍었지만 냐약한 몸에선 통각만이 강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에휴······.”

몸이 젊어진 건 기뻐할 만 했지만, 크게 즐겁지는 않았다. 이미 마나와 하나가 되면서부터 나이를 먹지 않았고 요정들의 비전을 뺏어 육체나이를 길게 늘려버려서 흰머리가 빠지고 다시 검은 머리가 돋았었다. 주름졌던 얼굴과 늙어갔던 육체에는 다시금 힘이 생겨나고 피부는 탱탱해졌었다.

그랬었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의 금발의 아름다운 부인들?!과 피지컬한 몸매의 붉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부인들?! 그야말로 남자가 꿈꿀 수 있는 최상 최고급의 파라다이스를 지어 놓고 돌아왔으니 땅이 꺼져라 한숨이 쉬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오늘이 언제지?’

문득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깨진 액정 속 날짜를 본 소년은 또 한숨을 쉬었다. 하필 방학 시작하는 날이었다.

‘집에나 가자.’

등산로 아래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폭행당한 흔적을 지운 시우는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며 집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디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다행히 도로나 상점들은 똑같아서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 앞에 신축 아파트가 보였다. 하지만 시우는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닭장 같은 집이 내 집이란 말인가.’

문득 실험을 위해 닭장 같은 철장에 가두어 놓고 잔인한 시험을 자행했었던 오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야! 뭐하냐?”

이리저리 조약돌을 차며 지그재그로 걷고 있는 사이 누군가 시우의 머리를 툭 쳤다.

“집에 안가고 모하냐?”

최민서. 시우의 동생이자 시건방진 계집아이.

“···간다. 지금.”

“에헤? 너 오늘 또 삥 뜯겼냐?”

최민서는 시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혀를 찼다.

“어떻게 도재민 그런 찐따한테 삥을 뜯기고 다니지? 그것도 어떻게 보면 능력이고 재능이네.”

민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미 시우를 휙 지나 집으로 향했다.

민서의 뒷 모습을 보면서 시우는 가만히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돌아온 이상 더 이상의 슬픔과 괴로움을 없을 것이다.’

시우의 그 가벼운 다짐이 무겁게 세상을 변화시킬 터였다.

< 1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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