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럼...."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형의 진실이 문제였죠."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았다.
다우 회장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휠체어를 돌렸다.
"새벽 공기가 너무 차네요. 이럼 환자한테 안좋으니까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죠."
"하지만...."
스탠은 다우 회장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문밖에서 팔짱끼고 서있는 예선 때문에 체념해야 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예...."
다우 회장이 고개를 숙이자, 스탠과 예선이도 똑같이 했다.
그가 앉은 전동 휠체어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반대편 복도로 사라져버렸다.
"너무 오래 밖에 있었잖아. 우리도 이제 들어가자."
"예."
"그런데 다우 회장이 너한테 뭐라고 그러디?"
예선이가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묻자 스탠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우 회장이 형을 찾는것 같아요."
"응? 다우 회장한테 형이 있었어?"
"예."
"그런데 형이 어디있는줄 알고 찾는다는 거야?"
"그러게요."
".....?"
예선이는 더 궁금했지만, 스탠이 입술만 굳게 다물고 있어 차마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에휴. 그나저나 언니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먼저 방에 들어서는 스탠의 뒷모습을 보고 예선이 혼자 중얼거렸다.
그날 아침.
스탠은 겨우 5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느즈막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입맛은 정말 없었지만 예선이 자꾸 입으로 베이컨을 쑤셔 넣는 바람에 빈 속을 채우는 중이었다.
"아침을 먹어야 몸의 바이오리듬이 깨지질 않는 거야."
"아는데 위에 부담된다구요."
"먹는 버릇하면 나아져."
"뭐에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설득력은."
"어른한테 잔소리가 많다. 잔말말고 그냥 먹어라."
"뭐에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설득력은."
- 퍽!
"아파요!"
"아프라고 때리는 거다."
"엄마 오면 다 이를 거야."
"나이가 몇살인데 엄마한테 이른다고 그래?"
"쳇!"
스탠과 예선이는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사실 꽤나 친해져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것은 아니었다.
스탠이 목 인사만 하는게 전부였고, 예선이는 안타까운 마음에 얼굴을 몰래 보는 정도였다.
어쩌면 정말 핏줄이 당긴다.라는 말을 둘 다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쿵쿵쿵!
스탠이 마지막 베이컨을 억지로 쑤셔넣을려고 할 참에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누구세요?"
예선이 후다닥 뛰어가 문을 열자, 깔끔한 정장차림의 도이쉬 팀장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설화 일행이 뉴욕에 처음 왔을때를 빼고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던터라 예선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도이쉬 팀장은 그녀보다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포르투갈로 떠났던 당신 일행이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정말요?"
예선의 얼굴이 환해졌지만 도이쉬 팀장의 얼굴은 여전히 굳은 상태였다.
"예. 일단 로비로 나가시지요."
"아, 알았어요. 잠시만요. 스탠도 준비..."
-덥석!
예선이 황급히 등을 돌리려고 했지만 도이쉬 팀장이 그녀의 팔뚝을 꽉 잡았다.
"왜, 왜 그러세요?"
"스탠군은 안나가는게 좋겠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겁니다."
"......"
예선이는 한참 이해 안된다는 얼굴로 도이쉬 팀장을 쳐다보다가, 뭔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뭐에요?"
"아, 다우 회장님이 잠깐 상의할게 있으시대...."
뒤에서 스탠이 묻자 예선이는 급한대로 둘러댔다.
그리고 황급히 도이쉬 팀장을 따라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설화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도이쉬 팀장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지만 예선이는 심장이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때문에 벽의 난간을 붙잡고 멈춰서야 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아....."
예선이는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았다.
20여년전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것 같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여기서 내가 이러면 안돼....'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예선이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제 괜찮아요. 가죠."
"예...."
그렇게 둘이 도착한 곳은 1층 로비였는데, 꽤 많은 사람 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들은 누구죠?"
"BPA에서 발견된 생존자 들 이랍니다. 대부분 어린 학생 들입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무척 반가운 소리였지만 예선이의 마음은 한구석이 뻥 뚫린 상태라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 소장님!"
무리 들 중 누군가 예선이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브리튼!"
"소장님. 살아계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야. 난 당신한테 그런 말을 들을 자격도 없어."
예선이 자책하자 브리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잘하셨어요. 그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안심할 수 있는 곳에 오게 된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이고.... 그런데 지오는?"
"아, 그게...."
브리튼이 말 끝을 흐리자 예선이는 겨우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그럼... 지금 이곳에 온 사람 들만 살아 남은 건가?"
"예. 아이 들을 지키느라 나머지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저 혼자 살아남았는데....."
브리튼 역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역시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을 쉽게 이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니야. 당신은 최선을 다한 거고, 또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는 아이 들을 지켰으니까 교사로서 의무를 다한거야."
"...."
"그나저나 설화 언니는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건 제가 말씀 드릴게요."
소라가 사무엘과 소피아과 함께 예선이 곁으로 다가왔다.
"설화님께서 소장님께 드리라고 한 물건도 있고, 저희가 따로 전해 드릴 말도 있어요."
"그래....."
예선이는 심장이 무너질것 같았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중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일단 이 일행 들이 쉴 수 있는 곳부터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저도 같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만...."
다우 회장이 쓰윽 나타나 조심스럽게 말하자 예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신세를 지고 있는데 다우 회장님도 당연히 아셔야죠."
예선이 혼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다우 회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1시간 후에 18층 소회의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