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먼동이 트려 할 무렵.
설화의 부대원 들은 새벽 5시에 모두 기상했다.
처음으로 야외 취침을 한 상태라 온 몸이 찌뿌둥했지만, 언제 감염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소라. 현재 상황 리뷰해봐."
"예."
설화가 잘려나간 나무 기둥에 앉아서 지시하자, 소라가 얼른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에는 위성 수신기가 달려있었고, 특수 운영체제가 위성과의 통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는 바헤이루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지점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 하나를 두고 리스본과 근접해 있군."
설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끼었다.
"그럼 속전속결로 진격합시다. 뭐, 시간을 끌어봤자 우리만 불리해질테니까..."
사무엘은 설화의 오른팔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흐렸다.
설화는 그게 무슨뜻인지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좋겠지만 바헤이루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던지, 다리를 건너야 해."
"그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설화의 말 뜻을 알아들은 소라가 얼른 물어보았다.
"응. 포르투갈은 리스본만 유일하게 재건이 되었어. 나머지는 다 버려졌지. 아마 바헤이루도 마찬가지일거야. 동물의 왕국이거나, 감염자의 서식지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으음.... 돌아갈 수는 없나요?"
소피아가 초조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어제의 일이 아직도 두려운 모양이었다.
"돌아가면 더욱 더 감염자를 상대해야 할거야. 바헤이루를 통해서 가는게 더 나을걸."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소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바헤이루에 뭐가 있을지 알 수가 없어. 그러니까 신중에 신중을 기해 가야할거야."
"그렇군. 그럼 출발하기 전에 밥먹고 갑시다. 어제 저녁도 시원찮게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
사무엘이 배를 탕탕치자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라도 먹어야 더 힘이나지. 소라. 전투식량 있지?"
"예. 15일분을 챙겨서 왔습니다."
결국 일행은 전투식량을 간단히 섭취하고 계속 걷기 시작했다.
숲을 벗어나고 드넓은 들판이 나타났지만, 간간히 폐허가 된 농장이 나타날 뿐이었다.
게다가 날씨가 화창해도 주위가 쥐죽은듯이 고요하니 더욱 더 괴기스러울 뿐이었다.
"쉬었다 가자."
5시간 연속을 걸었던 탓인지 부대원 들의 얼굴에서 점점 힘든 기색이 보였다.
설화는 전투에 익숙한 몸이라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행군을 처음해보는 부대원 들의 체력을 위해 쉬어가야만 했다.
설화와 부대원 들은 버려진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꺅!"
무성한 잡초 사이로 들쥐 들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자 소피아가 기겁했다.
하지만 마땅히 쉴곳이라고는 이곳 밖에 없었다.
"여기 앉자."
설화가 나무 아래에서 군장을 내리자 나머지 일행도 그렇게 했다.
"휴우.... 다들 먼거리 행군하느라 수고했다. 어차피 지금 12시밖에 되질 않았으니까, 2시간 정도 쉬고 다시 출발하자."
"그런데 어제 봤던 그 괴물은 도대체 뭡니까?"
사무엘이 군장에서 초코바를 꺼내서 우적거리며 물었다.
그동안 분위기상 물어보지 못하다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연 것이다.
설화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감염자가 점점 진화한다고 봐야 하나? 아무튼 그런 경우야."
"진화요? 감염자가 스스로 진화도 하나요?"
소피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래. 불행하게도 점점 더 진화하고 있지."
"휴우.... 그렇다면 우리가 없는 사이에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거 아닙니까?"
"모르겠어. 리스본은 무사할 수도 있겠지...."
설화는 도무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머리 속 역시 뭔가를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의문 들로 가득차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모두가 할 말을 잃은체 적막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부우웅!
설화가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려는 찰나에 갑자기 거친 엔진음이 들렸다.
모두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저기 저 도로입니다!"
소라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어딘가를 가리켰다.
설화가 얼른 살펴보니 북서쪽 9번 도로였다.
"바헤이루에서 오는 차에요. 왠지 이쪽으로 오는것 같은데...."
"다 들 은폐해."
설화가 지시를 내리자 모두 창고와 나무 사이로 숨었다.
-끼이익!
검은색 람보르기니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설화가 숨어있는 농장 앞마당에 멈춰섰다.
"와우! 아벤타도르."
"쉿!"
사무엘이 차를 보고 흥분하자 소피아가 옆구리를 꼬집었다.
-덜컥!
운전석, 조수석에서 건장한 남자 들이 내렸다.
한명은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단정히 머리를 빗어 넘겼다.
"야. 세르지오. 넌 정말 운전 못한다."
"됐어. 아무튼 이 근방으로 가는거 맞지?"
"응."
"그나저나 우리 귀염둥이는 어디에 있을까?"
남자 들은 농장 여기저기를 대충 살펴보며 떠들어댔다.
"그게 귀엽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 보스가 만들었지만 참 역겹게 생겼단 말이야."
모자를 쓴 남자가 방금 사무엘과 소피아가 숨어있는 창고 앞을 지나쳤다.
설화는 사무엘이 튀어 나갈까봐 가슴이 철렁하다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수었다.
"이봐. 주앙. 아무리 그래도 제정신인 인간을 가지고 그런 실험을 하다니... 좀 너무하지 않나?"
"말 조심해. 너도 그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세르지오란 남자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머리를 단정히 빗은 주앙은 정색하며 주의를 주었다.
"어차피 보스의 계획에는 생존자는 안중에도 없었어. 기억나? 보스가 우리한테 맨 처음으로 했던말?"
주앙이 손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묻자 세르지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없다."
세르지오와 주앙은 똑같이 말하고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바스락!
설화, 사무엘, 소라는 표정으로 기겁하며 소피아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몸을 조금 움직였을뿐인데, 운이 나쁘게도 나뭇잎을 밟아 버린 것이다.
"거기 누구야? 빨리 나와."
아니라 다를까 세르지오가 험악하게 말하며 소피아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렇다면 덩치가 큰 사무엘과 금방 발각 될것이다.
-쓰윽...
소피아가 일어서려고 하자 사무엘이 냉큼 붙잡았다.
그러나 소피아는 사무엘의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 누구에요?"
소피아가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천천히 걸어나오자 세르지오의 험악한 표정이 순식간에 풀렸다.
아마 소피아의 미모 때문인것 같았다.
"어이, 주앙. 이거 예상치 못한곳에서 로또 맞았는데, 그래?"
세르지오가 능글거리면서 소피아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