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8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나는 다우 회장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해. 제네럴 컴퍼니에서 일하는건 절대로 가치 있는 일이야."
"....."
설화는 매우 상기된 얼굴로 떠들어댔지만 초의 표정은 매우 어두었다.
그들은 회장실을 빠져나와 기나긴 복도를 지나고 있어싸.
"아무리 생각해봐도 구구절절 옳은 말이란 말이야. 어쩌면 새로운 세상이....."
설화는 말을 멈추고 그제서야 초의 표정을 살폈다.
"왜 그래?"
"아, 아니야. 잠시 생각 좀 하느라...."
"그러니까 무슨 생각?"
"......"
설화가 계속 물어보자 초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언니."
"그래. 말해."
"우리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거 맞지?"
"야. 당연하지! 연합군하고 USN 밑에서 일하는것 보다 100배 낫구만, 뭐."
"....."
그래도 초의 표정은 풀어지지가 않았다.
"난 제네럴 컴퍼니가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질 않아."
"왜?"
"그냥.... 느낌이 좀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저 느낌일 뿐이겠지.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정신 없이 달려와서 그럴 거야."
"그럴까?"
설화는 그렇게라도 초를 설득시켜야 했다.
스탠과 느닷없이 BPA에 찾아와서 연합군에 의해 붙잡혀갈뻔 한게 다 자신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줌마!"
갑자기 복도 반대쪽에서 누군가 쿵쾅거리며 뛰어왔다.
큰 덩치에 거침없이 설화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사무엘이었다.
"헉헉! 도대체 어디에 있었어요?"
"여기 회장 만나러 간다고 해잖아. 그런데 왜?"
설화가 바로 대답하자 사무엘이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탠이... 스탠이 좀 이상해요."
"뭐?"
설화와 초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 바람에 사무엘이 조금 움찔하다가 사태가 워낙 심각했는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스탠이 이상하다고요."
"뭐가 어떻게 이상한데?"
"그게... 갑자기 몸 안이 타들어 가는것 같다고 소리치면서 밖으로 뛰쳐나오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설화와 초는 더 이상 들어볼 필요도 없었는지 전력을 다해 뛰었다.
"크억......"
사무엘의 말대로 스탠은 입에 거품을 물고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독약을 먹은 사람처럼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눈은 하얗게 뒤집혀 있었다.
"아, 얘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소피아가 묻자 소라는 쓰러진 스탠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어디가 아픈 거지?"
"단순히 아파 보이지는 않는데?"
소라는 스탠의 동공을 살폈다.
흰자만 보이는 눈에서는 시뻘건 핏줄까지 솟아 있었다.
"안되겠어. 소피아. 지금 당장 네가 치료를 해야해."
"뭐? 하지만 무슨 증상인지도 모르는데? 사무엘이 소장님을 찾을때까지 좀 기다려 보자."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넋을 놓고 기다릴 수 없어."
"하지만...."
소피아가 망설이는 사이 소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스탠을 업으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몸이 갸냘픈 60kg의 남자가 70kg 같은 남자를 업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스탠!"
때마침 복도 끝에서 설화와 초가 헐레벌떡 뛰어오자 소라는 조심히 스탠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된거야?"
"보시는 그대로에요. 몸에 열도 장난이 아니구요."
"어디보자."
초 소장이 다급히 스탠의 온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설마...."
초 소장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수는 없기에, 바지 안주머니에서 체온계같이 생긴 길쭉한 물건을 꺼내서 스탠의 입에 물게 했다.
"열이 몇도야?"
단순히 체온계라고 생각했던 설화가 다급히 물었다.
"저건 체온계가 아니에요."
초 대신 소라가 대답하자 설화가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뭐? 그럼 저게 뭔데?"
"바이러스 양성 테스트기야. BPA 모든 연구원 들은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 학생 들의 바이러스 수치를 항상 체크해."
"......"
초가 그렇게 말하면서 테스트기 액정을 유심히 살폈다.
"소라. 계산해. AVG-65에 TTP-0.383."
"AVG-65에 TTP-0.383이면...."
소라가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쓱싹거리면서 중얼중얼거렸다.
"환산 수치가 131.37 PPT가 나오는데요."
"뭐? 그게 정말이야?"
"예"
소라와 초가 서로 심각하게 대화를 주고 받자 설화는 더욱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게 뭔데 그래?"
"바이러스 양성 수치야. PPT 수치가 100이 넘어가면 바이러스가 뇌를 잠식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데?"
"당연히 수치를 낮춰야지. 일단 소피아."
"예."
"스탠의 열을 최대한 낮추고 cardiac decompensation 대처해."
"예."
"아, 그전에 사무엘은 스탠을 반듯하게 눕혀."
"예."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사무엘과 소피아는 초의 지시에 따랐다.
소피아가 스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두 눈을 지그시 감자 손에서 푸른 빛이 감돌았다.
"저건...."
"소피아의 능력이야. 정신을 집중해서 손가락 마디 끝에 심어진 열전도체를 통해 항체를 전달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신기하다."
설화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부르르 떨던 스탠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휴.... 사무엘. 스탠을 침대에 눕혀. 그리고 소피아는 곁에서 좀 지켜봐줘."
"알았어요."
아이 들이 스탠을 데리고 우르르 안으로 들어가자, 초는 그제서야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치료는 다 끝난 거야?"
"아니. 이건 임시 방편일 뿐이야.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지 않도록 특별한 백신이 필요해."
"백신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데?"
"BPA."
"......."
설화는 허리춤에 오른 손을 올리고 왼손으로는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네 말은 다시 BPA로 가야 한다는 거야?"
"응. 그곳 냉동 보관소에 특별히 제작한 백신이 있어."
"이런 젠장...."
설화는 이제 두 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다시 BPA로 돌아가는것 때문이 아니라, 그곳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스탠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저희가 아무래도 도와드려야 할것 같군요."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설화와 초가 휙돌아 보았다.
"회장님?"
설화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자, 다우 회장은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릴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