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7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다우 회장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알아들을만 했다.
또한 그것은 모든 생존자 들이 겪는 공통적인 정신적 고통이었다.
"어떤 트라우마인가요?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초가 물었지만 다우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건 이미 현대적인 고통이 되버렸죠. 제가 말하는 트라우마는 서로에 대한 불신입니다."
"불신이라...."
"예. 국가든 경제든 심지어 이 세상에 퍼져있는 바이러스든.... 이 모든건 인간이 만든 겁니다. 거기에 대한 불신이죠."
"예. 단지 그것뿐인가요?"
설화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우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단순히 들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대단히 큰 일입니다. 사람이 한번 지독한 불신에 빠지게 되면 옳은것도 아닌게 되버리는 겁니다."
"그렇다는 말은 뉴욕의 생존자 들이 제네럴 컴퍼니를 불신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안타깝지만 그렇죠."
"그건 유럽에 있는 생존자 들도 마찬가지에요. 연합군과 USN을 대단히 불신하고 있죠."
설화가 그 말에 공감하며 대답했지만 어쩐지 다우 회장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건 매우 상대적인 겁니다. USN과 연합군은 점점 생존자 들을 생각하지않고 권력에 맛에 찌들어있죠. 당연히 반발이 일어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네럴 컴퍼니의 목적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잃어버리는 미국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네럴 컴퍼니가 얻는 이익이 뭔가요?"
이번에는 초가 물었다.
다우 회장은 망설임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지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는 그 이익만을 ㅤㅉㅗㅈ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맙니다."
그러면서 다우 회장은 벽 어딘가를 가리켰다.
초와 설화가 그 손가락을 따라 눈을 움직이니, 중절모를 쓰고 기품있는 자세로 앉아 있는 신사의 흑백사진이 보였다.
"제네럴 컴퍼니의 창업자이신 벡 크리스토퍼 회장님 이십니다. 크리스토퍼 회장님은 제네럴 컴퍼니가 공유와 순환을 위한 회사가 되길 원하셨죠."
"공유와 순환이요?"
"예. 같은 시대의 정신력과 트렌드를 공유하고 시대의 흐름을 순환하자는 뜻입니다."
뭔가 심오하면도 어려운 뜻이었다.
다우 회장은 이제 그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돈이나 크레딧 카드는 단지 물건을 사고 파는 수단일뿐이지, 그 이상이 되질 못합니다. 기업이 돈을 최대의 가치로 뒀다면 이미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제네럴 컴퍼니가 150년 가까이 건재한 이유가 바로 최대의 가치를 돈으로 두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우 회장은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자신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전구를 꺼내들었다.
"이건 전구입니다. 이 전구를 개발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구를 개발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고 가정한다면 모두가 그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토마슨 에디슨은 어땠습니까? 어렸을때부터 기상천외한 짓을 한다거나 학교에서 ㅤㅉㅗㅈ겨나고 심지어 그는 달걀까지 품었습니다. 회사가 이런 직원을 뒀다면 당장에 짤랐겠죠."
다우 회장은 전구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모든 물체가 온도를 높이면 열복사(thermal radiation)가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전열기는 저항체에 전류를 흘러주면 저항체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한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건...."
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다우 회장이 말하는 가치는 꽤나 인내심을 요구하는 갗였다.
"바로 제네럴 컴퍼니가 최대의 가치를 두는 부분이 이거라는 겁니다. 어둠을 빛으로 세상을 밝히고 싶은 그런 인간의 꿈을 위해 우리 회사는 존재하는 겁니다."
"....."
초는 갑자기 머릿속이 번뜩이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통 사람 들은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매우 두려워 한다.
상식은 역사처럼 내려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종의 보이지 않는 법칙이며, 그것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럼 제네럴 컴퍼니가 저희를 원하는 이유는 명백해지는군요."
"예."
다우 회장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의 생존자 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미국, 아니 전세계에 30억 가까이 되는
감염자 들의 존재와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다름아닌 51구역이라는 사실을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간 들이 세웠던 문명이 어이없게 한순간에 몰락했듯이, 지금 제네럴 컴퍼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러니까....."
다우 회장이 갑자기 말을 끊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당연히 설화와 초는 깜짝 놀라며 그를 말릴려고 했다.
하지만 다우 회장은 온갖 힘을 쓰며 휠체어 팔걸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일어섰다.
"여러분이 가치를 실현시켜 주십시오. 인간이 바이러스를 없애고 다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세요. 저희가 모든 지원을 다 해드리겠습니다."
"......."
설화와 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에서보다 미국에서 이승철의 의지를 이어간다는 자체가 훨씬 값어치는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