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초소장과 설화는 일주일째 그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
스탠은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었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편지지 한장을 초점없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 비슬리 -
그 편지는 다름아닌 비슬리씨에게 온 편지였다.
편지지에 쓰인 내용은 무척 다급하고 절망이 담겨 있었다.
[ 아마 네가 이 편지를 보고 있을때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네가 지금 믿기 힘들겠지만, 아저씨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박에 없단다.
한평생 평범한 연금 수령자가 되겠다는 소박한 소원을 이룰 수 없어 매우 안타깝지만, 그런 여유를 부릴만큼 이 세상이 너무 평화롭지 못한게 분명한 사실이란다.
스탠.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일 들이 지금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단다.
우선 가장 어처구니 없게도 원로회와 상원 의회는 시민 대표와 하원 의회를 해체 시킬 작정이다.
언뜻 본다면 자기 들의 뜻대로 정치를 주무르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겠다만, 사실 USN과 연합군이 은연중 개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기 그지 없구나.
난 그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원로회와 상원 의회를 찾아갈 생각이다.
만약 뭔가 꿍꿍이가 있다면 진실을 밝혀내려는 날 죽이려 하겠지....
너도 알다시피 그 첫 시작이 핵폭탄 사용의 허가였다.
게다가 USN은 생존자 들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언제 접촉할지 모르는 '아스카디아'란 외계인 들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를 'S.B.I.C'를 대비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래서 연합군이 별도로 있는 거고 그들은 공군 부대와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군이 그 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블리츠 대장이 이끄는 육군이나 특수 부대는 생존자 들의 안보와 영토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그런 그들이 결국 내정에 관섭을 하겠다는 의미는 곧 정치,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생존자 들을 통제 하겠다는 것을 뜻한단다.
스탠.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우리 생존자 들이 20년전 잘못된 체계를 바로 잡고자 했던 노력 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네 엄마의 상사이자 육군 참모총장이셨던 블리츠 대장은 외부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발칸반도 전선이 무너진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군사 재판에 회부한다는 말까지 들리는 구나.
사태가 이지경까지 진행되었다면 네 엄마도 더 이상 너에게 진실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단다.
만약 네 엄마가 아직도 너에게 진실을 숨기고 있다면, 그건 런던과 파리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일 들을 아직 접하지 못한 경우이니 네가 잘 알려주길 바란다.
일단 연합군은 블리츠 장군을 군사 재판에 회부하는대로 육군을 강제 흡수하고 군대를 모두 해산시키는 작업에 돌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 엄마가 지금 은밀히 진행하려는 비밀 계획에 상당한 차질을 발생시킬 것이다.
블리츠 장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이상 자체적으로 그 일을 해낼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네 엄마는 현재 연합군의 꿍꿍이 속을 알아내기 위해 본진에 침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말 그대로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어마어마한 작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네가 엄마와 함께 포르투갈 BPA에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과 같이 시크릿-X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엘리트 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야 할테니까.
이제 알겠니?
네 엄마는 지금 한가롭게 여행을 간게 아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너와 함께라서 내가 크게 걱정을 안하겠지만, 이제 앞으로 더 험난한 일들이 언제 어떻게 발생될지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네가 한가지 모를 너의 비밀이 하나가 있다.
그건..... ]
스탠은 이 편지가 제발 누군가의 장난이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비슬리씨의 필체는 그런 그의 바램을 비웃기라도 한듯 휘갈겨 있었다.
'내가 그런 존재였다니.....'
그런데 더욱 그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었다.
-에에에엥!
느닷없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스탠이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라 다를까 고요한 적막을 깨고 여기저기서 방문을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숙소 복도에 사람 들의 웅성거림이 넘쳐났다.
"무슨 일이지?"
스탠 역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사이렌을 울린 거야?"
아이 들은 모두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우왕좌왕거렸다.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 들 주목!"
그때, 복도 끝에서 한 무리의 사람 들이 걸어오는게 보였다.
스탠은 그 들이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들은 BPA에서 아카데미생 들을 교육시키는 교수 들이었다.
"다 들 조용!"
그 중 가장 키가 크고 엄격해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남자 기숙사 사감인 '도일 교수'였다.
"제 앞으로 다들 모이세요, 어서!"
도일 교수가 큰 소리로 집합시키자 아카데미생 들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스탠 역시 그들과 섞여서 맨 앞줄에 섰다.
"다 들 침착하세요. 여러분. 비상 사태입니다. 초 소장님께서는 여러분 들의 안전을 지키고자 상급 클래스 학생 들을 무장시키고, 저를 비롯한 교수님 들과 함께 BPA를 사수할 것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복도가 시끌거렸다.
"조용! 다 들 조용하세요! 이번 사태가 처음이라 여러분 들이 얼마나 당황해할지 뻔히 잘 압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교수님 들과 여러분 들의 선배 들은 충분히 이러한 사태를 잘 대비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들은 절대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말고 여기 계신 교수님 들의 지시에 잘 따르기 바랍니다."
"교수님!"
누군가 손을 번쩍 들자 도일 교수가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에릭군. 말하세요."
'에릭'은 키가 크고 말라보이는 학생이었는데, 깊은 눈매 속에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누가 BPA를 공격하나요?"
"공격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서로간의 오해가 있어서 생긴 일이라고 해두지요."
"그럼 왜 상급 클래스 선배 들이 교수 님과 함께 무장하는 겁니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겁니다."
뭔가 확실치 않은 도일 교수의 말은 아이 들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킬 수 밖에 없었다.
"교수님! 저희는 아카데미에 소속된 학생 들입니다.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에릭군 말대로 여러분 들은 학생입니다. 침착하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는 아직 아닙니다."
"......"
도일 교수의 단호한 대답에 아이 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린것 같았다.
"그럼 여러분 들은 다시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 교수님 들 지시에 따르도록 하세요. 그럼 해산!"
도일 교수가 해산시키자 아이 들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아직 의혹이 가시지 않은 얼굴 들이었다.
"스탠군?"
스탠 역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도일 교수가 자신을 불러세웠다.
"네?"
"자네는 나와 함께 따로 갈 곳이 있네."
"......"
도일 교수가 앞장서자 스탠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