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87화 (185/262)

< -- 187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이야기는 꽤 길어졌다.

이승철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이 정도로 많았는지 설화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어쨌든 1시간에 걸친 이승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이 들의 표정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다 들 감명받은 얼굴 들인데?"

"쳇! 하여간 그 놈은 죽어서도 잘난 놈이야."

설화의 투덜거림에 초가 큭큭거렸다.

둘은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너랑 이승철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 정말 안 알려줘도 되는 거냐?"

"응..... 왜냐하면 스탠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될테니까...."

설화가 조용히 묻자 초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럴것 같아서 나도 그 말은 뺐다."

"잘했어."

"이제 들어갈까?"

"응."

설화와 초가 다시 부엌으로 들어서니 아이 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럼 우리가 서로 알아야 할건 다 안 건가요?"

소피아가 대뜸 물어보자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네 이야기만 못 들은것 같네."

설화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제 이야기를 할게요."

의외로 적극적인 소피아의 모습에 사무엘과 소라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나는 이야기하면 안돼?"

"아, 아니야. 해."

"맞아. 해봐."

사무엘과 소라가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들도 소피아에 대한 과거를 잘 모르는듯 보였다.

"전 영국 웨일즈에서 태어났지만 아빠 엄마 모두 우크라이나 사람이었어요."

"그 나라가 미남 미녀가 많긴 하지."

설화가 대뜸 맞장구치자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그 분위기를 감지한 초가 설화의 다리를 쿡 찌르자 소피아가 약간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제가 태어났을때 부모님은 영국에 친척이 있던 탓에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작지만 집도 있었고 아빠도 작은 베이커리를 운영하실 수 있었죠. 하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소피아의 얼굴에 서서히 그늘이 드리워졌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척하다가 막상 과거를 이야기하려고 하니 마음이 착잡해진 모양이었다.

"소피아. 괜찮겠니?"

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소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과거일 뿐인데요. 어쨌든 저희 가게 주인은 따로 있었는데 그 작자가 우리 엄마를 마음에 둔 모양인가봐요. 듣기로는 여자를 밝히는 그런 쓰레기같은 인간이라는데, 한 눈에 봐도 외모가 출중한 우리 엄마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처음에는 아빠가 자리를 비울때 엄마한테 접근했어요. 당연히 우리 엄마는 그 사람을 정중히 거절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간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행동했어요. 심지어 우리 아빠랑 같이 있는대도 엄마에게 노골적으로 찝적댔죠."

소피아는 냉수 한컵을 들이키며 잠시 숨을 돌렸다.

설화가 그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니 충분히 그럴만도 해보였다.

차갑고 냉정하게 보이는 소피아는 '얼음 공주'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틀린게 아니었다.

"결국 참을때까지 참은 저희 아빠는 모든걸 정리하고 웨일즈를 떠날려고 하셨어요. 그러자 그 인간이 계약을 들먹이며 온갖 이유로 우리를 붙잡아두려고 했죠. 만약 가게를 나가려면 계약 위반으로 4배의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협박까지 하면서요. 아빠는 말도 안된다며 따지다가 결국 서로 실랑이가 붙었어요. 처음에 이성적으로 대처하려고 하셨지만 예전부터 감정이 좋지 못한탓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졌고....."

설화는 잠시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던 탓에 괜히 하품을 하는척 했다.

남에게 죽기보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성격 같았다.

"...몸싸움이 시작됐는데... 그 인간도 감정이 폭발했는지 아빠를 죽이려고 품에 있던 총을 꺼내들었요. 그 모습에 놀란 엄마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왔는데.... 결국 찔러버렸죠."

"......"

초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고 설화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현실이었다.

"두 분은 한동안 주저 앉아 계시다가 아빠가 먼저 정신을 차리셨어요. 엄마보고 저를 데리고 빨리 가게를 빠져나가라고 하셨죠. 엄마는 처음에 싫다고 하셨지만 아빠의 다그침에 결국 저를 데리고 나가셨어요. 그리고 아빠는 자수하셨죠. 하지만 엄마와 저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어요. 살인자의 아내와 자식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예전의 집에서 살아갈 수 없었죠. 할 수없이 밤에 돈을 챙긴후 엄마와 저는 정처없이 방황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죠. 때마침 그 당시에 누군가가 전설적으로 감염자 들을 몰살시켜가며 유럽을 회복하던 시기라 여기 저기서 생존자 들이 영국으로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들의 보금자리가 더욱 필요했으니, 살인자의 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은 엄마와 나는 발붙인 곳이 더더욱 좁아졌죠."

"......."

설화는 이맛살을 구겼다.

그 당시에 유럽 전선을 앞장서서 넓혀가던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젠장. 왠지 내 탓 같잖아.'

"그런데 누군가 우리에게 접근했어요. 우리가 유럽에서 피난 온 생존자라고 생각하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친절하게 접근했죠.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그들은 사채 업자였어요.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고 한달에 이자를 10%씩 갚아나가면 된다고 꼬드겼죠. 하지만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 돈으로 런던 빈민가에 겨우 집을 마련하고 엄마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셨죠. 그런데 그 사채업자 들이 일주일만에 말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한달에 10%의 이자라고 했다가, 갑자기 20%로 올려버렸죠. 엄마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아빠가 상가 주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죠."

"그,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사무엘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자 설화가 쓰디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찰과 사채 업자 들은 알게 모르게 은밀히 연결이 되어있어. 사채 업자 들이 경찰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에 그들의 이자 놀이를 눈 감아 주는 거지. 젠장 감염자들 보다 그런 거지같은 새끼 들 부터 청소했어야 하는 건데...."

"젠장. 내가 이래서 짭새 들은 치를 떨만큼 싫어한다니까."

사무엘이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지만, 소피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사채 업자 들은 막무가내였어요. 이자를 갚지 못하면 신체 포기 각서를 쓰라고 했죠."

"그건 엄연한 불법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하거나 해를 끼쳐서는 절대로 안 되는건데....."

초가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소피아의 표정은 싸늘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아빠는 엄마의 살인죄를 뒤집어쓴 후였죠. 다행히 교수형은 면했지만 아직도 영국 어딘가에 갇혀계세요."

"........"

초는 말문이 막혀버린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선이... 아니, 초 소장이 일부러 그런건 아니잖아. 네가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나서 그런 거라구."

설화가 점잖게 타일렀지만 소피아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보도록 노력할게요. 아무튼 제 말을 그런식으로 끊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아휴. 저걸 때릴 수도 없고....'

설화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꾹 참아냈다.

"어쨌든.... 우리 엄마는 죽을때까지 따라붙는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경찰을 부를 수도 없었어요. 결국 그 각서에 서명을 하시고 말았죠. 당연히 돈을 갚지 못했고 어느날 그 사람 들이 집을 덥쳐서 강제로 엄마를 끌고 가고 말았어요. 그때 저는 6살이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또 몇일 후에 그 놈들이 저를 강제로 끌고갔어요."

"잠깐. 여기서부터 내가 말을 이어도 될까?"

느닷없이 사무엘이 끼어들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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