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정도연 대위라면......"
설화는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야 했다.
하지만 초는 이미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놀랄만큼 아주 커져 있었다.
"언니. 정도연 대위라면 우리가 논산 훈련소에 잠시 들렸을때 만났던 사람이잖아. 전 훈련소장 부관이었고 말이야."
"아... 맞아!"
설화가 이마를 탁치며 드디어 그녀가 누군지 떠올렸다.
"그런데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제가 44구역에서 갇혔을 때 그분이 탈출하도록 도와줬거든요."
"뭐?"
"그게 정말이야?"
설화와 초가 놀라 동시에 소리쳤다.
"예."
"도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44구역에 있었던 거지?"
설화가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논산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서 살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소라는 품을 뒤져 왠 편지 봉투를 거내들었다.
"정도연 대위님이 남기신 편지에요. 만약에 이승철이라는 분과 그 분을 알고 있는 사람 들에게 이 편지 꼭 전해 달라고하셨죠. 그리고 저는 그 분이 알려준 지하 수도를 통해서 44구역을 극적으로 빠져 나올수 있었어요."
설화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소라가 내민 편지를 받아보았다.
그러자 초가 얼른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옆으로 내밀었다.
[ 이 편지를 보고 있을 이승철... 또는 그의 친구 들에게.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만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러버렸군요.
저는 그 날 떠난후 많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생각보다 한국에는 생존자 들이 많았습니다.
감염자 들은 노을이 깔리는 무렵에 활동이 잦기 때문에 그 전에 이동하고 저녁에 무조건 숨어야 했지요.
그렇게 제가 만난 생존자 들이 무려 100명 가까이 됐습니다.
다 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둘중 절반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저 역시 많은 생존자 들을 도우며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감염자 들에게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되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이상한 존재 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가 되었습니다.]
설화는 '이상한 존재 들'이라는 구절에 인상을 구겼다.
"젠장. S.B.I.C를 만났나봐."
"그, 그런가?"
초는 긴장하며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렸다.
[ 그들은 생김새가 독특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S.B.I.C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창백한 얼굴을 가진 그들을 도무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며 저에게 뭔가를 설명 하려는 듯 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혹시 '아스카디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은 수직 상승 하강이 가능한 최첨단 엔진을 탑재한 비행물체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그것은 한국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불과 20분만에 도착할 정도로 빠르게 비행했습니다.
저는 그 들 덕문에 한국에서 겨우 벗어나 44구역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에게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지의 글씨가 점점 휘갈겨 가기 시작했다.
뭔가가 다급한 사실을 알리기 위했던것 같았다.
[ 만약 당신 들이 아스카디아의 존재에 알고 있다면 분명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질서에 따라 그 법칙을 이행하는 집행관이며, 여러 행성 종족 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여 하등 생물인 인간을 말살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로 인간을 멸할 경우 다른 종족 들의 경계를 살것이기 때문에 차가운 흐름에서 채취한 고귀한 생물로 인간을 멸할 것이다. 이미 인간에게 오염된 이 지구는 차가운 흐름의 생물로 깨끗하게 정화될 것이다.'
그들의 기술력을 비춰 볼때 지구에서 벌어졌던 어마어마한 종말 시나리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말이 절대로 거짓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S.B.I.C가 무엇을 계획하던지, 아스카디아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그 결말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지만, 그 사이 인간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기술과 생각으로 절대 그들의 계획을 저지할 수 없을 겁니다.
또한 그들을 막았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어떤 존재가 인간을 위협할지 모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남기는 까닭은 다름아닌 이승철 당신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이 저에게 보여줬던 인간의 의지만을 믿고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죽기 전에 당신을 볼 수 있으려면 좋을려만.....
어리석은 사람 들은 이제 저희의 존재를 부정할것입니다.
죽는건 두렵지 않으나 그런 인간 들에 의해 당신이 행동으로 보여줬던 의지와 정의가 한숨의 재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너무 두렵습니다.
부디 당신의 의지와 정의에 제가 한 조각이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 콰직!
"......."
설화는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편지를 구겼다.
연합군과 USN에 대한 불신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인류를 망치고 있는 집단이었다.
"저는 그 분께 이승철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꼭 뵙고 싶었어요."
소라가 어두운 침묵을 깨자 설화와 초가 그를 쳐다보았다.
"왜?"
"저희랑 같잖아요."
"......"
설화는 소라와 사무엘, 그리고 소피아까지 쓰윽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동질감'
설화는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꺾으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승철아. 넌 진짜 어디까지 잘나야 직성이 풀리냐?'
"이제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이승철이라는 분은 어떤 분이셨나요?"
마치 동경하는 사람에 대해 알려는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설화는 그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좋아. 승철이는 말이야....."
설화가 입을 떼자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쥐죽은 듯이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