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85화 (183/262)

< -- 185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소라는 한국이 바이러스에 의해 무너지고 일본에 막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프랑스 파리로 피난을 왔었어. 하지만 바이러스가 퍼진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았지. 그 때문에 소라 아버지는 좌절 속에서 술만 마셨고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어. 소라역시 17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행을 못 이겨서 집을 나가버렸지. 하지만 낮선 이국에서 금방 길을 잃어버렸고 결국 44구역에 들어가고 말았어."

"44구역이라면 빈민가 아니야?"

"맞아. 하지만 그냥 빈민가가 아니야."

"그냥 빈민가가 아니라니?"

"이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초가 망설이는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내가 한때 공부했었던 프랑스 유전학 연구소에서 44구역에 몰래 바이러스를 살포하고 역학 조사를 실시한 곳이거든. 그 조사를 통해 백신을 개발하려는 목적이었어."

"그게 말이 돼? 자국 수도에 바이러스를 어떻게 살포해? 차라리 격리 수용을 하면서 실험하는게 더 현실성 있지 않을까?"

"아니야. 그만큼 유럽은 여유가 없었어. 바이러스가 동북 아시아권에 먼저 퍼졌다고 하더라도 이미 아프리카 역시 바이러스에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었지. 물론 기후가 높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동북아시아보다 바이러스가 퍼지는게 더뎠지만, 결국 아프리카 북부지역과 유럽 남부 지역은 터키를 기점으로 퍼지기 일부직전이었어. 그래서 유럽은 궁여지책으로 파리 외곽지역에 이민자 들이 많다는 점을 이용했지.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폭격을 한다는 전제조건에 한해서 말이야."

"혹시 KKK(백인우월단체 :  Ku Klux Klan)랑 관련 있는거 아니야?"

설화는 혹시나해서 물었지만 초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그 인간들이 하필이면 고위층에 있던 탓에 백인을 제외한 10%의 파리 이민자 들이 전부 시크릿-X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어. 알다시피 시크릿-X는 천천히 감염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민자 들은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명 두명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연합군이 긴급 투입되기 시작했지."

"점점 상황이 복잡해지는 구만."

설화 역시 냉수를 한번에 들이켰다.

인간은 참으로 믿을수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대변하기도 했다.

인류는 바이러스에 크게 당했으면서도 또 그 잘못된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인간의 욕심'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욕심의 끝이 도무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가 없는게 문제였다.

아무튼 초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 중 몇명이 무슨 낌새를 알아 차렸나봐.  그들은 각 건물마다 'KKK가 시크릿-X를 44구역에 퍼뜨리고 있다.'라는 걸개를 크게 내결고 거칠게 항의를 했지. 하지만  나토군이 그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이민자 들은 더욱 거칠어졌어. 결국 USN은 44구역에 공중 폭격을 하기로 연합군과 합의하고 그 다음날 바로 봉쇄해버렸지. 그런데 소라가 하필 그 타이밍에 44구역에 들어간 거야. 결국 이미 감염이 심각하게 진행된 사람 들이 소라에게 달려들었지."

"......"

설화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낌새를 눈치 챈 초가 슬며시 설화의 인상을 살폈다.

"언니. 그만 할까?"

"아니야. 계속해."

"응... 아무튼 소라는 감염자 들에 의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고 점점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지. 동시에 시간은 점점 촉박해졌어. USN에서 결정한 폭격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거든. 그런데 기적적이게도 시크릿-X는 소라에게 TTES1 타입으로 변해갔어. 단 30분만에 바이러스가 체내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던 거지."

"그거 나도 알아."

"응?"

설화가 담배 재를 털어내며 대답하자 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가 뭘 안다는 거야?"

"승철이가 TTES1 타입이라며. 기억 안나? 승철이가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

설화가 기억을 더듬어주자 초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 말대로 이승철은 설화에게서 바이러스를 스스로 감염시킨 케이스였다.

인간을 두려워하고 경계했던 설화를 안심시키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승철의 신체 능력을 올린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이승철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듯 있다가, 감염자 들이 아지트를 쳐들어 오고 긴박한 상황일 때 그 능력이 튀어나왔었다.

설화는 그때를 떠올리며 담배 꽁초를 잿덜이에 털어 넣었다.

"그때 승철이는 무척 고통스러워 했어. 나 역시 승철이가 잘못된 줄 알고 너무 놀랐었지.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또 10분이 지나니까 점점 나아지는 거야. 난 무척 놀랄 수 밖에 없었어. 나 같은 경우에는 온갖 생체 실험을 당하면서 단계적으로 감염이 되었거든. 결과적으로 난 TTES1 타입은 아니야. 오히려 까딱 잘못했으면 보통 감염자 들처럼 자아를 잃어버리고 다녔었겠지."

"....."

본인에게 꽤 고통스러운 이야기일지라도 설화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소피아가 나간 뒤 초와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때 이미 아이 들은 부엌 밖에 서있었다.

초는 그걸 못 느꼈지만 설화는 단번에 그것을 알아차렸다.

다만 내색을 안한 이유는 본인이 그 들과 똑같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승철이가 결국 날 살렸던 거였어. 아무튼 소라 역시 승철이와 같은 케이스였던건 확실하네. 그런데 왜 신체 능력이 아니라 지능이 더 뛰어나게 된거지?"

"그건 소라의 성향 때문이야."

"성향?"

"응. 소라의 성향은 조용하면서 뭔가 깊게 빠져드는 성향이 있어. 그래서 혼자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어딘가 해킹하는걸 매우 좋아하지. 그런게 혼자 뭔가 깊게 빠져들게 만드는 일이니까..... 아마 내 생각에는 소라가 몸을 움직이는것 보다 머리를 쓰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뇌쪽으로 힘을 더 실어준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구나...."

설화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소라는 겨우 감염자 들에게서 빠져 나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지. 자신도 직감적으로 44구역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걸로 생각했었대."

"생각 했었다고?"

"응. 그런데 그게 직감만은 아니었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언젠가 뉴스에서 44구역에 대한 보도를 떠올렸다고 하더라고. 그때 기억으로는 USN 실사단이 44구역을 다녀 갔다는 보도였었대."

"그런데?"

"그런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프랑스에서도 포기한 지역을 왜 느닷없이 USN 실사단이 다녀왔는지 이상하더래. 보도로는 인권 문제때문이라고 했다던데 얼마전 연합군이 44구역 근처에서 보였다는 소문을 떠올린 거야. 게다가 44구역에 질병이 돌고 있다는 말을 병원에서 들었다고 하더라고."

"잠깐 그렇다면...."

설화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초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럼 소라가 EU와 나토군 간의 관계를 짚어냈다는 거야?"

"바로 그거야. 평소에 정치, 사회 문제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자기가 갑자기 그런걸 떠올린게 너무 이상하더래. 마치 퍼즐 조작이 맞춰 지는 것처럼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 거지. 44구역에 질병이 돌기 시작했고, USN은 급하게 실사단을 꾸려 조사를 해갔으며, 결국 연합군이 비밀리에 44구역을 봉쇄하고 뭔가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모두 파악해 버린 거지."

"대단하네...."

"그렇지? 그 짐작하기 어려운 극비 상황을 자기 혼자 10분 만에 파악해 버린 거야."

"......"

설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런데 소라는 어떻게 발견한 거야?"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느닷없이 부엌에서 아이 들이 우르르 몰려나오자 초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TTES1 타입에 대해 이야기 했을때 부터요."

"그런데 왜 안 들어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처음 알았으니까 그랬겠지."

설화는 이미 짐작했다는 듯 팔짱을 풀지 않고 대신 대답했다.

소라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아이 들이 나머지 의자에 채워 앉았다.

"자아, 그럼 너의 이야기 해봐."

"그러죠. 대신 저희에게 이승철.... 그 분 이야기 좀 해주세요."

"....왜지?"

설화가 묻자 소라가 작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정도연 대위 혹시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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