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좋아. 이왕 이렇게 된거 다 말해줄게. 사실 이스탄불에 감염자 들이 1천만명 가까이 집결했어."
"그, 그게 사실이야?"
"연합군 정보국이 파악한 사실이니까 정확한 정보야. 사실 그것때문에 그리스는 커녕 발칸반도도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야. 이건 내 예상이긴한데.....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연합군이 먼저 상원과 원로회를 빠르게 설득하고 핵을 쓰겠다는 안건을 USN에 제출한 모양이야."
"그럴 수가... 그런데 잠깐만...."
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뭔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감염자 들이 집결했다고 그랬지?"
"응."
"집결했다는 자체는..... 누군가에게 통제 받는다는 거잖아?"
"맞아. 진짜 문제는 핵도 아니고 썩어 빠진 상원, 원로회도 아니야."
"그럼 그 들이...."
초가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봤지만, 설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S.B.I.C보다 굳이 그걸 숨길려고 하는 연합군 놈 들이 더욱 수상해."
"연합군이?"
"그래. 내 상관인 비스크 대장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우락부락한 노인네도 뭔가 눈치챘는지 연합군 정보국에 바로 연락하더라고. 그런데 그 찰스라는 정보국 국장이
능구렁이처럼 뭔가를 자꾸 숨기더라고."
"뭔가가 있는게 분명하구나... 그럼 언니는 왜 보직 해임 되었는데?"
"알바니아에 핵 떨어졌을 때 내 부하 들이 거기 있었거든.... 그것 때문에 육군 본부에 ㅤㅉㅗㅈ아가서 바락바락 대들었더니 비스크 대장이 자초지정을 설명하면서 아무래도 연합군측에서 나한테까지 손을 뻗으면 위험하니까 나보고 좀 피하라는식으로 이야기 하더라고. 더군다나 그런 사태라면 스탠 역시 위험할 수 있으니까 여차저차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거야."
"그랬구나.... 잘했어. 언니."
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번에는 설화가 정말 걱정이 됐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언니는 이제 어쩔셈이야?"
"왜? 나랑 스탠이 밥만 축낼까봐 걱정되냐?"
"언니 그런 말이 어디있어? 난 솔직히 둘 다 내 곁에 평생 있었으면 좋겠는데...."
초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자 설화가 살며시 웃었다.
"알아, 임마. 그냥 장난쳐본 거야. 사실 내가 여기 진짜 찾아온 목적은 따로 있어."
"그게 뭔데?"
설화가 웃음기를 지우고 정색하자 초 역시 덩달아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너의 연구가 빛을 발휘할 때가 온건지도 몰라."
"....."
초가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그들로 감염자를 상대할 거야?"
"아니. 연합군 이새끼 들 부터 털어야 할 것 같아."
"뭐?"
초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보자 설화가 똑바로 앉아 탁자에 턱을 괴었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20년간 우리가 터전을 넓혀가면서 단 한번도 S.B.I.C나 아스카디아와 접촉한적이 없었어. 그 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체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분명 그 들은 존재하는데 아무도 그 들을 신경쓰지 않아."
"그건 아무래도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 보니까 그런거 아냐? 솔직히 긁어 부스럼이라고 괜히 우리가 건들여봤자 좋을것도 없을테고."
"여태까지 모든 사람 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자체가 문제였어."
"......"
설화가 바로 대답하자 초가 입을 벌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그 누구도 S.B.I.C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대서양의 끝자락인 리스본부터 발칸반도까지 생존자 들의 터전이고, 나머지는 그냥 감염자 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만 여겼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연합군과 상원, 원로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핵폭탄이라는 극단적 처방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위성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연합군이라면 S.B.I.C와 아스카디아를 어떻게든 밝혀내려고 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목구멍의 위기는 극단적으로 처방하면서 왜 잠재적인 문제는 아예 감출려고 하는지 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초 역시 이 일이 예삿일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럼 연합군을 어떻게 할 생각인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 가라 했어. 연합군 본부에 침입할 거야."
"비스크 장군님은 알고 계셔?"
"그 양반이 주도한건데 뭐."
설화는 갈증이 났는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마셨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 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휴... 쉽지가 않을것 같아. 연합군을 침입하겠다니... 게다가 아카데미 인원을 가지고 말이야."
"그래서 네 힘이 절실해. 내일부터 아카데미 인원을 선별할거야. 그리고 그 인원을 내가 직접 훈련시켜서 작전에 투입할거고. 대신 우리가 여길 온걸 아무도 몰라야 해."
"당연하지. 나도 힘이 닿는대까지 도와줄게."
"고맙다."
설화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 앉으려다가 뭔가 생각난게 있는지 초를 쳐다보았다.
"왜?"
"스탠말이야.... 혹시 자기 아버지 피가 흐르고 있다면 이 아카데미에서 수련을 해도 좋지 않을까?"
"안돼! 절대 안돼!"
"......"
초가 무섭게 정색하자 설화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가 승철이를 어떻게 보냈는데..... 난 아직도 그이 꿈을 꾸고 있어. 스탠을 보면 그이 얼굴이 너무 많이 떠올라. 스탠을 보고 있으면 그이와의 추억이 떠올라 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라구."
"그럼 이참에 스탠에게 사실을 말하는게 어떨까?"
"그건 안돼. 아직은... 아직은 아니야."
"도대체 왜?"
설화가 답답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초의 본명은 신예선이었고 그녀는 스탠의 생모였다.
신예선은 생존자 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이승철의 뜻을 이어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연구 기술은 생존자 들의 희망이었다.
살아남은 생존자 들은 인류의 번영을 위해 브라운 박사가 직접 후계자로 인정한 신예선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까지 바꿔야 했다.
만일 하나 S.B.I.C가 그녀의 정체를 알고 노리고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 판단은 매우 현명했다.
이름을 초라고 바꾼 예선이는 그 날로 포르투갈로 내려가 BPA를 세웠다.
혹시라도 신원이 들통나서 자신의 아들까지 해를 입을까봐, 설화와 비슬리씨에게 스탠을 맡기기까지 했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때마다 이승철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백신 연구와 바이오 기술 연구에 그렇게 미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가장 무서워했던건 다름 아닌 '희생'이었다.
이승철은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진 이후 오로지 희생만을 했다.
마치 설화에게 의도적으로 옮겼던 그 바이러스가 꼭 '희생'을 하도록 그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무서울 정도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설화와 자신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생존자 들도 이만큼의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희생 정신이 스탠에게서 은밀히 보이고 있었다.
설화와 비슬리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초에게 스탠의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행동과 말투등 꼼꼼하게 메일로 써서 보냈다.
설화는 꼼꼼히 지켜보고 항상 메일 끝자락에 이런 말을 써넣었다.
[ 무서울 정도로 승철이를 닮았다. 생긴것부터 시작해서 행동, 말투 모두 100% 판박이야.]
그런 소리를 들을때마다 초는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매우 앞섰다.
스탠마저 세상에 없다면 초는 살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스탠의 피에서 이승철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 자신의 아들 역시 신체 능력을 100% 이상 끌어낼 수 있는 잠재능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초가 절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초의 바램은 스탠이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아남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걸 보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때가 되면 밝혀도 좋을지 몰라.....'
초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설화의 질문은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도대체 왜 안 되냐니까?"
"아, 아직은 안돼. 아무튼 절대로 안돼. 알았지, 언니?"
"에휴... 그래 알았다."
설화는 귀찮다는듯 손을 내저으며 쇼파에 벌러덩 누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오늘 런던에서 포르투갈에 도착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주구장창 머리 아픈 이야기만 꺼냈다.
"잘자, 언니..."
초는 그런 설화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자신도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 초는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설화를 위해 힘을 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