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73화 (171/262)

< -- 173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스탠은 태어나서 그런 불편한 식사를 해본적이 없었다.

음식은 큼직한 스테이크와 드레싱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가 나와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스테이크 3장을 겹쳐서 한꺼번에 썰어먹는 지오의 모습은 확실히 경악할만 했다.

반면 브리튼은 온갖 예절을 따지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먹을때마다 포크를 바꿔 쓴다던지, 중간 중간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던지, 아무튼 생긴것만큼 깔끔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신경에 거슬렸던건 '초'소장 때문이었다.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자신을 자꾸 쳐다보는것 같아 신경이 무척 쓰였다.

"하아... 도대체 뭐냐고... 여긴 또 어디고....."

스탠은 뒷통수에 팔을 기대고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였다.

설화는 '초'와 오랜만에 한 이불을 덮겠다며 스탠을 10평 남짓만한 기숙사에 있게 했다.

다행히 혼자 쓰는 방이라 큰 불편은 없지만 느닷없이 집을 떠나 이런 정체모를 곳에 있는 다는 자체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게 중요했다.

확실히 설화가 속 편하게 여행이나 다니자고 그 먼 포르투갈까지 온건 아니었다.

뭔가가 분명 있는데 그 뭔가가 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 처음 본 '초' 소장은 밥먹는 내내 아주 노골적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도대체 그 여자는 뭐지? 뭔가 낯익은 얼굴인것 같기도 하고.... 아효! 머리 복잡해!"

스탠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베게에 얼굴을 파 묻었다.

한편 설화는 독한 위스키를 홀짝이며 소파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그러나 '초'는 달랐다.

컴퓨터 책상 앞에 거꾸로 앉아 손톱을 뜯으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네 표정 볼만하다?"

"어?"

설화가 쥐포를 씹으며 딱딱거리자 초소장이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미 답답한 화장도 지웠고 옷도 트레이닝복으로 편하게 갈아 입었다.

"왜? 또 보고 싶냐?"

"그게..... 그렇지, 뭐...."

초는 풀이 죽은 얼굴로 의자 등받이 위에 턱을 기댔다.

설화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역시 괜히 데려왔구만. 내일 그냥 집에 가라고 해야겠어."

"엥?! 그건 안돼!"

설화가 진심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초소장이 깜짝 놀라 벌덕 일어서서 소리쳤다.

"왜 안돼? 네가 지금 감정 조절을 못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들키겠다."

"아, 아니야. 20년만에 봤으니까..... 좀 이해해주라고."

"에효. 그러길래 왜 자신없는 짓을 했니? 나까지 마음 불편하게."

"미안...."

초가 또 기운 빠진 표정을 짓자 설화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런데 그 녀석도 참 멍청해. 어떻게 자기 엄마를 한번에 못 알아봐?"

"당연히 언니가 엄마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그렇긴 해도... 에휴... 승철이 닮아서 그렇게 눈치가 없는 건가?"

설화는 아무 생각없이 말한건데 초 소장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 어이. 그냥 말이 그렇다는건데 그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잖아."

"아, 아니야. 그보다 언니 진짜 안 그럴거지?"

"뭘?"

설화가 무슨 말이냐는듯이 되묻자 초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스탠.... 다시 가라는 거....."

"아휴! 안 보내! 지금 상황도 안좋은데 어떻게 보내?"

"상황이... 안 좋다니?"

"아, 그게..."

설화는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그냥 조금 짜증이 나서 막 지른건데,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언니, 상황이 안 좋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니라다를까 초는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설화는 머리를 북북 긁어대다가 이내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장군 짤렸어... 라고 벌써 100번째 말하고 다닌다."

"뭐? 언니가 도대체 왜 짤려?!"

초가 펄쩍 뛰었지만 설화는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늙었나 보지."

"언니!"

초가 꽥 소리지르자 설화는 귀를 막았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듯 싶었다.

하긴 유럽 서부 지역을 거의 회복한 공로로 초고속 진급을 한 설화가 그냥 막연히 짤린다는 말은 앞 뒤가 맞지 않았다.

"에휴... 역시 너한테는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설화는 모든걸 포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근에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가 핵폭격 당한거 알지?"

"뭐? 핵폭격?"

초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하자 오히려 당황스러운건 설화였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몰라?"

"응... 나 요즘 중요한 연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에휴... 넌 지구가 멸망해도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년이다."

설화가 혀를 끌끌차자 초의 얼굴이 붉어졌다.

"언니...."

"알았어, 이 년아....."

설화는 말하기 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왠만하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지만, 초만큼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육군은 폐허상태인 그리스를 점령하고 이스탄불로 진격해서 아시아를 회복하려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웠어. 연합군 공중 폭격 지원까지 한 상태에서 말이야. 그런데 연합군하고 상원, 원로회가 원래부터 한통속이었나봐. 그리스는 커녕 발칸반도 전선까지 밀리니까 핵을 쓰자는 의견 들이 나왔어. 비슬리씨나 스탠의 말로는 하원과 시민대표 의견은 깡그리 무시가 됐대."

"그럴리가.... 하원과 시민대표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상원과 원로회가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거잖아."

초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설화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냥 형식이었던 거야. 아무래도 요즘 상원이든 원로회든 간에 이 자식 들이 권력 맛에 길들여져서 눈 들이 먼것 같아."

"말도 안돼.... 그럼 누가 무엇 때문에 핵을 쓰게 한거야?"

"나도 그걸 모르겠어. 사실 이걸 생존자 들에게 말 안 해야겠지만....."

설화가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끊자 초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도 말 안할게. 언니 내 입 무겁다는 걸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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