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64화 (162/262)

< -- 16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My tea's gone cold I'm wondering why I..

차는 이미 차가워졌고

got out of bed at all

난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The morning rain clouds up my window.. and I can't see at all

왜 이렇게 날씨가 흐려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지 생각해.

And even if I could it'll all be gray, but your picture on my wall

그리고 더 날씨가 나빠지더라도

It reminds me, that it's not so bad, it's not so bad..

벽에 걸려있는 당신의 사진을 보며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라고........

거친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린다.

차가운 습기가 찰 때마다 손으로 닦아내지만, 차가운 밖의 기운은 주먹 크기만한 선명함을 우습게도 지워버린다.

그리고 에미넴의 Stan을 비오는 날에 들을 때면 우울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물론 엘튼 존이 피쳐링한 Stan도 좋다. 그의 목소리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한다.)

벌써 30년 정도가 흐른 노래이지만 스탠에게는 이 노래가 특별하다.

먼지 가득 쌓인 창고에서 에미넴의 앨범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이름과 같은 노래 제목이 있는것을 보고 우연히 들었던 노래이다.

처음엔 랩이 생소해서 그런지 별로였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감정을 들끓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사실 스탠은 감정이 부족하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담당 선생님의 가정 통신문에는,

'머리도 좋고 운동 신경도 뛰어난 스탠에게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조언을 드리자면 스탠에게 필요한 것은 음악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 통신문마저 자신의 손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스탠은 조용히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무튼 스탠은 비오는 날 이 노래와 함께 즐긴다.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런 날씨 속에서 그는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창 밖을 응시한다.

- 똑똑똑

갑자기 방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자 스탠은 일시 정지를 터치했다.

"궁상 그만 떨고 밥 먹어라."

"......"

스탠은 똥 씹은 표정으로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오랜만에 집에 온 주제에....."

"방금 전쟁치르고 온 엄마한테 할 소리냐?"

"에휴....."

스탠은 단발 머리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성을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방 식탁에 앉아 포크를 들어 토마토 소스에 버물린 마카로니 몇개를 찔렀다.

"그러지 말고 좀 쉬지 그래? 좀비 들과 언제까지 땅 따먹기 할 거야?"

"B42구역까지 확장했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야. PY-39A 구역까지 확장해 나가야 해."

"집에서 전쟁 용어 좀 쓰지마. 먹던거 다 토해 버릴테니까."

"알았다. 까다롭기는..."

중년 여성은 대충 대답하면서 황갈색 음료가 담긴 유리병을 벌레 씹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냉장고에 있길래 꺼내봤는데.... 이거 도대체 뭐냐? 좀 질퍽하기도 하고.... 먹는거 맞아?"

스탠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 음료를 유리잔에 부었다.

반면 중년 여성은 경악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미숫가루야."

"미스가르?"

"미. 숫. 가. 루."

"무슨 발음이 그 따위야?"

"옛날 한국어래. 우연히 구식 블로그 뒤지다가 레쉬피가 있길래 만들어 봤어. 이래뵈도 초 건강 음료라고."

"하여간 희안한것도 잘 만들어요. 그럴 시간에 친구 들과 좀 어울리지 그래?"

스탠은 피식 웃었다.

"엄마는 내가 담배나 피우면서 포커나 하길 바라는 거야?"

"네 친구 들은 무슨 다 양아치냐?"

"무슨 말투가 그래? 중장까지 달았으면서...."

"장군은 말도 마음대로 못하냐?"

"내가 말을 말아야지..."

스탠은 다 먹은 마카로니 접시를 싱크대에 넣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

"빵은 안 먹어?"

"살쪄."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서 밥 해줬더니.... 다이어트 하는 아가씨 들한테 그런 말 하면 안된다. 실례야."

"별 걱정을...."

"나이 스물살 먹고 여자친구 하나 없는 불쌍한 아들이 안쓰러워 보여서 그런다."

"엄마나 걱정해. 요즘 좀비 들이 난폭하다며..."

스탠의 무심한 말투 속에서는 진심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그래서인지 중년 여성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안 그래도 상원 의회에서 심각하게 이야기가 오고 가나봐..... 연합군도 같은 생각인것 같고....."

중년 여성이 말 끝을 흐리면서 스탠의 표정을 살폈다.

스탠은 입술에 댄 유리잔을 떼었다.

"또 핵무기 쓰자고?"

"뭐 그런 셈이랄까......"

중년 여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처음엔 반대했잖아."

"휴.... 원래 군인이라는게 윗 놈들이 까라면 까는 불쌍한 존재 들이라....."

"애매모호해. 엄마답게 대답하지 그래."

"짜식이 엄마 입장 좀 생각해주지."

스탠은 다시 식탁에 앉았다.

"핵은 무조건 반대야...... 하지만 나 혼자 반대한다고 핵을 안쓰는 건 아니겠지."

"너야말로 애매모호한 답변 아니야?"

"중요한건 엄마 결정이야. 엄마가 최전선에 나가 있는 만큼 윗사람의 결정을 뒤 엎을 수도 있어."

중년 여성의 눈빛이 달라졌다.

장난기가 사라진 완벽하게 진지한 눈빛이었다.

"대답은 너무 뻔해. 핵을 쓰게 되면 감염자 놈 들을 한번에 휩쓸어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핵을 남발하면 방사능 때문에 우리의 터전은 점점 좁아질 거야.  그리고 다른 문제를 굳이 거론하자면 면연력도 있어."

"면연력?"

"그래. 인간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면연력이 절실하게 필요해. 한번 단맛을 느끼게 되면 쉽게 빠져 나올 수 없거든. 그런데 그게 함정이야. 핵무기를 한번 쓰게되면 다시 쓰게 될거야."

"......."

스탠은 물끄러미 쳐다보자, 중년 여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가끔 엄마가 철학자가 아닌가 싶어서."

"지금 놀리냐?"

"뭐 엄마가 듣기 나름이겠지."

"쓰읍! 이게 한대 맞을라고 꼭 엄마한테 말대꾸를!"

스탠은 큭큭거리면서 다시 일어섰다.

"나 게임 해야 돼."

"밤새지 말고 작작해. 여름이라서 그런지 요즘 발전소도 힘들다더라."

"예비 전력 충분히 받아놨어."

"그럼 다행이다. 하지만 네가 방전될 수도 있어. 아무튼 엄마, 내일 저녁에 부대 복귀해."

"그럼 내일 낮에 터키 식당 예약해 놓을게."

"오~ 왠일이냐? 둘째가라면 서러울 짠돌이가 고급 레스토랑도 예약해놓고?"

"나도 맛있는거 먹고 싶어. 토마토 소스 버물린 느글느글한거 먹었더니 속이 뒤집혀서....."

스탠이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자 중년 여성이 허탈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귀여운 놈...."

- 삐-삐-삐-삐

그때 갑자기 식탁에 올려놓았던 호출기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중년 여성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어 이어폰을 연결했다.

그것은 장성 들만이 사용하는 비밀 무전기였다.

단독 주파수를 쓰기 때문에 해킹이나 도청 위험도 없었다.

- 사단장님! 긴급 상황입니다. 일주일전에 그리스로 떠났던 4사단이 몇일째 연락 두절입니다. 본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고 사단장님을 수색대장으로 임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일단 알았네. 명령은 언제 하달되나?"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달만에 아들놈 얼굴 겨우 봤으니까 내일 저녁쯤에나 부대 복귀할 거야."

- 알겠습니다. 다른 상황이 발생되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중년 여성은 긴 한숨을 내쉬고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 창가에 다가가 주머니에 있던 mp3를 꺼내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My tea's gone cold I'm wondering why I..

20년 전.

마음 속으로 담아두었던 그에게 선물 받은 mp3에는 이 노래가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아들인 스탠이 병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참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야.... 그나저나 언제 들어도 참 지질이도 궁상맞은 노래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랫속에 깊게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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