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61화 (159/262)

< -- 16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그로부터 13년 후....

프랑스 몽펠리에.

유럽 서부 평정에 나선 설화 대령의 3연대 임시 베이스.

"스페인 정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카탈루냐, 빌바오 지방은 감염자 들이 매우 집중되어 있는 곳이므로 우회하는 길로 마드리드로 진격해야 합니다."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는 원래부터 에스파냐와 물과 기름같은 사이였어. 왠지 별로 새삼스럽지 않은걸?"

설화는 부관의 보고를 가볍게 흘리며 동문서답을 했다.

그러나 부관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기만 했다.

"연대장님. 프랑스를 평정한지 이제 겨우 석달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자칫 프랑스마저 다시 잃는다면...."

"알아."

설화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커텐을 치우자 창 밖으로 아름다운 몽펠리에 시내가 한편의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프랑스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킬 거야. 다만 지금은 한숨 돌리고 싶군."

"......"

부관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쉴틈없이 감염자와 전쟁하는 통에 모두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터였다.

"알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

부관이 나가자 설화는 군복을 벗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녀의 눈에 연합군을 상징하는 푸른 바탕의 하얀 매의 깃발과 USN을 상징하는 옛 UN 로고의 깃발이 엇갈려 세워져 있었다.

생존자 육군은 연합군과 별개로 움직이는 독립 군부다.

하지만 USN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자칫 복잡해질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편성된 까닭은 유동성 때문이었다.

항공모함과 공군. 그리고 첩보 위성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은 첩보 작전을, 설화가 속한 육군은 국지전을 주로 펼친다.

그러다보니 지상에 거의 붙어 있을 날이 없는 연합군은 육군을 따로 분리시켜 독자 임무 수행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물론 그런 화력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이라면 미사일로 폭격을 하는게 더 쉬운 방법일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남은 3천만명 생존자 들의 터전 때문이었다.

물론 영국에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지만,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 들이 간혹 나오고 있기 때문에, USN의 인권 강령에 따라 아주 위급 상황은 제외하고 폭격은 금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설화의 1천 병력은 아주 어려운 땅따먹기 전쟁을 펼치고 있다.

물론 턱없이 모자란 3만의 육군 병력으로 유럽을 평정한다는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전차와 각종 화기를 다시 기름칠하여 운영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이다.

특히 설화의 3연대는 미국이 마지막으로 개발한 M1A2 에이브람스 전차를 70대를 가지고 있는 아주 강력한 기계화 부대였다.

설화가 초고속 진급을 하면서 유럽 서부 전선을 홀로 평정하다시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무튼 설화는 쉴 틈없는 전쟁 속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아까 부관에게 했던 소리가 빈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건, 런던에 홀로 있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자신이 왜 이 전쟁을 굳이 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처음에 감염자 들과 전쟁을 펼쳤을 때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생존자 들 때문에 이를 악물고 생사의 기로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뭉친 집단은 방대해질수록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각자의 욕심은 나날이 커지고 처음 행하고자 했던 사명감과 대의는 한낱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연합군은 권력으로 생존자 들을 통제하고 싶어했고, USN은 군을 이용하여 절대 위치에 오를려고 한다.

설화는 이러한 낌새를 눈치챈 순간부터 진저리가 나버렸다.

'승철아. 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는 걸까?'

설화는 목에 걸린 군번줄을 만지작거렸다.

인식표 뒤에는 광주 생존자 들이 찍은 단체 사진이 애처롭게 붙어 있었다.

그것은 설화가 아주 아끼는 물건 중에 하나였다.

지키기 위해.

이승철은 단 이 하나의 이유를 위해 싸워왔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설화 역시 그의 의지를 이어가기 위해 처절하게 싸워왔지만, 남는거라곤 지켜야 할 생존자들의 희생과 권력맛에 찌들어버린 몇몇 인간 들의 수작에 놀아나는 것이었다.

회의감.

설화는 극심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제 그만 군복을 벗을까?'라는 의문이 하루에 수십번씩 들 정도였다.

차라리 모든것을 정리하고 평범한 연금 수령자가 되어, 아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그러던 중 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어 육군 참모실에 전화를 해버렸다.

생각이 너무 깊어지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었다.

설화는 수화기를 얼른 내려놓을려고 했지만, 참모실 비서 들은 대응이 무척이나 빨랐다.

- 통신보안. 참모 비서실입니다. 설화 대령님 이십니까?"

"아.... 어, 그러니까.... 맞네만...."

- 무슨일 때문에 연락하셨습니까?

설화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지만 참모 비서 들은 사무적인 어조로 되물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설화는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머릿속이 캄캄했다.

그런데 이놈의 입이라는게 참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특히 이렇게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면 말이다.

"비스크 참모 총장님께 할 말이 있네만...."

- 아, 그러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최소한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거냐고 물어볼줄 알았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다이렉트로 연결이 되는 바람에 설화 혼자 더 당혹스러워졌다.

'뭐가 이래? 내가 바뻐서 죽을 때는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더만....'

설화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거 총장과 이야기를 좀 해보다가 '전역'이야기나 살며시 꺼내봐야겠다.'

결국 설화는 모든것을 자포자기한채 총장의 응답을 기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