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60화 (158/262)

< -- 160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이승철.

승철이는 매우 꼼꼼한 성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까다롭지는 않았다.

그래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나를 쉽게 거두어 들인 것이다.

반대로 그가 알고 지내는 생존자 들은 나를 별로 탐탁해하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나는 또 감염자였으니까.

결국 승철이와 자유, 그리고 나는 생존자 들과 잠시 떨어지기로 했다.

나의 존재 때문에 광주의 생존자 들은 분열이 일어났지만, 승철이는 전혀 게의치 않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감염자를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그가 참으로 대단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당시 매우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직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은 배신의 연속이었다.

그 날 이후로 모든것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그런데 내 몸은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듯 했다.

하루에 몇번씩 40도까지 열이 올라간다거나, 이유없이 손 발이 떨리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승철이는 내곁을 지켜줬고 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속마음이었을뿐, 겉으로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한가지 무엇인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살려주고 보살펴주는 은인에게 해서는 안될짓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내 믿음만 중요했다.

"나에요..."

이승철이 문을열고 들어오자 나는 조용히 그의 목에 칼을 대었다.

"도대체...."

"움직이지마. 진짜 칼이야..."

나는 그를 밧줄로 묶어두고 짐을 뒤졌다.

혹시 나를 해칠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나에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호의를 베푸는 건 아닌지....

이승철의 속마음을 제대로 꿰뚫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저기요."

"......"

"이봐요...."

"조용히 안해!"

"지금 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요?"

"조용히 하랬다. 쑤셔버릴 수도 있어."

나는 이승철의 입을 막고 싶었다.

그저 통조림 몇개와 옷이 전부인 짐이 있다는 자체를 기뻐해야할지 더 의심해야할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저기... 돈이 필요해요? 먹을 게 필요해요?"

"......"

나를 뭘로 보고.....

"내가 미쳐버린다면 널 먹어버릴 수도 있어."

나는 나름대로 살기를 내뿜었지만, 이승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혹스러운건 나였다.

"죽일테면 죽여봐."

"뭐?"

"죽일테면 죽여보라고. 너도 알다시피 이 세상은 한발자국만 움직이면 사지가 뜯겨나가는 세상이야. 밖에 나가서 뜯겨죽나, 네 말대로 날 먹어버리던가..... 죽는 모양새는 다 똑같다고!"

"......"

-쨍그랑.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놓쳐버렸다.

이승철의 표정은 여태 볼 수 없었던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했다.

"일단 밖을 한번 나가보시지. 당신같은 워커 들이 이 세상을 얼마나 후비고 다니는지..."

"아니야."

"맞아! 충혈된 눈동자, 푸석한 머리카락, 회색 피부! 지금 당신과 저 밖에 있는 것들 하고 다르지 않다고!"

"아니야! 난 아니야!"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비로서 내 위치가 어디있는지 깨달은 것이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감염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을뿐, 그게 어디까지인지 깊이 가늠해보지 못했다.

"현실을 인정해. 당신은 워커야."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가지 다행인것은 승철이와 오해가 풀렸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먹먹한 마음을 풀 수 없었다.

- 당신은 감염자야.

자꾸 승철이의 고함이 뇌리를 자꾸 맴돌았다.

그럴수록 너무 비참한 운명에 나를 얽매이는 현실이 괴로울 뿐이었다.

- 똑똑똑.....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내 우울함 속에 나를 깨우기 싫었지만, 이상하게 고개가 돌아갔다.

"누구세요?"

"나에요, 누나."

누나.

매우 어색하고 기분이 이상했지만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는 승철이가 맥주캔 두개를 들고 씨익 웃고 있었다.

"누나, 안 자죠?"

"지금 잘려고 했다."

"에이. 잠도 안 오면서. 우리 간단히 한잔 할까요?"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음이 심란해서 잠조차 오질 않은터였다.

우리는 옥상에 올라가 별빛이 찬란한 하늘을 안주 삼아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크아! 시원하다. 누나 이거 내가 냉동실에서 살얼음으로 얼렸어요."

"그래. 시원하네...."

맥주뿐만이 아니었다.

선선한 바람때문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을 무렵, 갑자기 승철이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뭐, 뭐야?"

"누나. 이 세상이 미친걸까요? 우리가 미친걸까요?"

"뭐?"

승철이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세상이 미치든 내가 미치든 똑같을 뿐.....

"저는요. 둘 다 미친것 같아요."

"왜?"

"자꾸 인류는 멸망했다고 세상이 말하는데, 우리는 이 미친 세상에서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잖아요, 누구의 관점에서 보던지간에 둘 다 미친 거죠."

"......"

그때까지도 나는 승철이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요. 누나. 누가 미쳤던지 간에  한가지는 확실해요."

"뭐가?"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거."

"....."

나는 승철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게 단지 위로하려고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세상은 지금 미친게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지루한 세상이 미쳤던 거죠."

"왜?"

"지루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거라곤 싸움 밖에 없었잖아요."

그때부터 승철이의 눈빛이 변했다.

왠만한건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는 나조차 움찔할 정도로 진지했다.

"사람을 태어날때부터 싸우지말고 죽이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서 상대방과 싸우고 결국 죽이게 되잖아요."

"....."

좀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결국 맞는 말이었다.

인간은 평화를 위해 싸우고 죽인다.

너무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조금 더 쉽게 생각하자면 인생은 늘 경쟁의 연속이다.

"그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정말로 그게 궁금했다.

"인간은요."

승철이는 다시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이었다.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해야 해요."

"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해. 계급이든 경제력이든 뭐든지 간에. 인간은 서로 닮을 수 없는 존재야. 각자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고 주변 환경 자체가 다르니까."

"그건 당연한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다르다고 선을 긋고 경쟁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려고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너무 두리뭉실하잖아. 그런 꿈이라면 빨리 깨는게 좋을 거야."

"왜요?"

"너 정말 모르는 거야? 너는 나를 살리려고 했지만 다른 생존자 들은 나를 저 놈들과 같은 취급을 했어. 한번 선입견이 생기면 웬만해선 풀 수 없는게 인간이란 존재라고."

"......"

승철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사실 승철이가 틀렸다고 말해주기 간절히 원했지만, 내 비관적인 사상은 그런 나를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틀렸어요."

".......!"

승철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렇게 쉽게 포기를 해서는 안된다구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안된다면?"

"그렇다면 누나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나는 선입견 같은건 없어. 오히려 내가 그 선입견 때문에 포기를 한거라고."

나도 모르게 언성이 커졌지만, 마음 속 깊숙히 눌려있던 억울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승철이는 오히려 나를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차피 그럴 사람 들이니까 일찌감치 포기하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타인을 한가지 잣대로만 판단 하는 거 잖아요."

"그럼 너는 그 선입견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어? 내가 이성을 잃고 날 뛰어도 지금처럼 대해줄수가 있냐고?"

"예. 당연하죠. 누나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잖아요."

"......."

지금 생각해보면 승철이는 타인을 설득하는 능력은 정말로 발군이었다.

그러나 내 고집이 워낙 쇠고집이라 나는 어떻게든 승철이를 반박하고 싶었다.

"말 뿐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대답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무척 잘못된 판단이었다.

승철이는 완벽하게 굳은 표정으로 맥주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럼 행동으로 보여줄게요."

"뭐?"

나는 무척 당황스러운 나머지 몸을 뒤로 뺐지만 승철이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누나 몸 속에 있는 그 바이러스.... 내가 가져갈게요."

"너 미쳤어? 제 정신이야?"

"예. 전 미쳤어요. 미쳐야 이 미친 세상에서 살 수 있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신뢰를 줄 수 없다면 어떻게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어요?"

"......."

난 그제서야 승철이의 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평생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어서 나에게 그 바이러스를 나눠줘요."

"참... 뭐 좋은것도 아닌데...."

"그래도 난 누나가 참 좋은데요, 뭐."

승철이가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진심이었고 우리 부모님 이외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승철이에게 바이러스를 어떻게 나눠줄 수 있었냐고?

그건 비밀이다.

아마도 이미 하늘에 있는 승철이와, 이제 곧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나만의 영원한 비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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