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59화 (157/262)

< -- 15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죽다 살아나다.'

보통 사람 들이라면 입에 버릇처럼 말하거나, 정말로 그런 위기를 겪었을 때 하는 말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말을 한번씩 입에 담았었다.

임무 중에 정말 죽을뻔한 위기를 겪었을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기전에는 내가 했던 '죽다 살아난다.'는 소리는 엄살에 불과했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일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 옛날 일본이 만행을 저질렀던 마루타처럼 나는 철저히 생체실험을 당해야 했으니까.

영화에서 볼법한 거대한 실험관에 기분 나쁜 초록색 액체에 담겨진 나는, 마치 오이 피클같이 1년동안 절여있어야 했다.

더욱 끔찍한건 나에게 의식이 있다는 그 자체였다.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발가벗은 내가 무척 수치스러웠다.

죽을수조차 없었다.

하루에 수십번 주사바늘을 찔려야 했던 나는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다만 날 실험했던 놈 들의 얼굴과 이름을 필사적으로 기억했다.

확실히 내 뇌는 거의 잠들어 있었지만, 마치 거대한 수학 이론을 머릿속으로 집어넣는 듯 한 집념으로 필사적으로 외웠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오히려 찜통같은 컨테이너 속에서 거의 보름간 칠흙같은 어둠속에 갇혀있어야 했다.

나는 어둠과 절망 속에서 내 인생을 되짚어 봤다.

내 부모님은 목이 잘린체 죽어야 했고, 결국 그 부모조차 거짓이었다는 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어야 했다.

내가 그저 살인기계로 키워질 빌어먹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내 꿈과 삶은 바로 그 조국에 의해 철저히 붕괴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비겁한 내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하며, 살인을 절대적인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내 운명은 그저 살인자에 불과했고, 미국에 붙잡혀 갖은 생체 실험을 당하는대도 그 빌어먹을 조국은 미련없이 날 버렸다.

그러나 신도 이 더러운 세상을 증오했는지 나에게 뜻밖의 힘을 주었다.

컨테이너 속에 같이 갇혀있던 놈 들중 하나가 우연찮게 팔을 날카로운 검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 놈은 망설임없이 컨테이너 철판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미 이성을 잃은 나와 같은 실험체 들은 컨테이너를 뛰어나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아마 그 날은 비가 폭풍처럼 쏟아진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에게 그 날은 피가 홍수처럼 흘러내린 날이었다.

심하게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것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 사이 우리를 태운 화물선은 육지에 도착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나는 이대로 붙잡히기 싫어, 엔진룸에 숨어있다가 기회를 보고 탈출 했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건 허름한 시골집에서 겨우 얻은 펑퍼짐한 바지와 셔츠 뿐이었다.

그거라도 좋았다.

알몸으로 밖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다닌건 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실험 대상자 들은 이성을 잃고 사람 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물선에서는 살기 위해, 탈출하기 위해, 그리고 억눌렸기 때문에 사람 들을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육지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무튼 시크릿-X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 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마치 유럽의 흑사병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감염 속도는 빨랐다.

반대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물론 겉모습은 무척 창백하고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이성이 돌아올수록 몸은 현실에 있어서 참 솔직해졌다.

배고픔과 추위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

그것은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지배당한 감염자 들은 살아있는 모든것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실험관 속에 있던터라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결국 나는 ㅤㅉㅗㅈ기다시피 도망쳐서 광주라는 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 역시 감염자 들이 득실거렸고,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몇일 쉴 곳을 탐색하다가 대형 마트에서 묶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형 마트치고 너무 한적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런 아수라장에 감염자 한명 조차 눈에 띄질 않았다.

마치 누구가 관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뭐, 그 당시에는 너무 지쳤던 탓에 그런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우선 먹는것이 급했다.

비교적 유통기한이 길었던 통조림으로 연명했지만 지낼만 했다.

그런데 삼일째 되던 날.

이 대형 마트에 왜 감염자가 하나도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이승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남자가 사냥개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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