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헉!"
진기만은 벌떡 일어섰다.
그날 밤.
정신을 잃고 쓰러진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다.
"여긴 어디지?"
주위는 온통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진기만은 벽을 더듬어서 커텐을 걷어냈다.
어스프름한 달빛이 새어 들어오자 겨우 주위를 분간할 수 있었다.
천장에 가깝게 매달린 TV.
오른쪽 어깨 위에서 대롱거리는 링겔.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간이 침대.
"병원이군."
진기만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다.
"그 여자. 엄청 세던데....."
진기만은 복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직도 그때 맞은 고통이 생생한것 같았다.
"아, 철원이!"
갑자기 머릿속이 번개 맞은것처럼 번쩍였다.
그러나 복부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습해왔다.
"크흑!"
진기만은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덜컥
또 다른 빛이 입구쪽에서 새어나오자 발소리가 들렸다.
진기만은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누구야?"
"아빠. 나야."
신랄하게 머리를 기른 교복 입은 소년이 들어오자 진기만은 긴장을 풀었다.
"아, 자유냐."
"엉. 몸은 좀 어때?"
자유가 의자를 끌어와서 곁에 앉자 진기만은 벽에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죽겠다."
"아니 그런데 뭘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얻어맞았어?"
"무슨 소리야?"
진기만이 눈을 크게 뜨자 자유가 뒷통수에 깍지를 꼈다.
"그게.... 아빠 내장이 다 파열됐대. 의사가 빨리 발견해서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죽을뻔 했다는데?"
"......"
진기만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치가 떨렸다.
'그거 한대 맞고 내장 파열이라니... 내가 너무 늙은 건가?'
"아무튼 요즘 아빠 찾는 사람이 많더라?"
"누가 날 찾아?"
진기만은 혹시나 하면서도 시치미 떼고 물었다.
그러자 자유가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진기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재수없게 쳐다봐?"
"아, 좀. 아들한테 따뜻하게 말 좀 할 수 없수?"
- 퍽!
진기만이 꿀밤을 때리자 자유가 심통난 표정을 지었다.
"아, 아퍼!"
"까불지 말고 빨랑 대답이나 해."
"아, 몰라. 무슨 시커먼 양복입은 놈 들이 아빠를 여기로 옮기고 수시로 찾아 들더라고. 나도 지금 이틀만에 처음 들어오는 거라고."
"뭐? 이틀?"
진기만이 깜짝 놀라 소리치자 자유가 움찔했다.
"왜? 뭐가 이상해?"
"아, 아냐...."
진기만은 황급히 말 끝을 흐렸다.
'이틀이라니.... 그 정도로....'
복부 한매 맞고 기절한것도 창피할 노릇인데 이틀만에 정신이 들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 들은 누구야?"
"그, 글쎄...."
진기만이 얼버부리자 자유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가까이 붙었다.
"아빠. 도대체 누군데 그래? 이 아들한테 살짝 귀띔해봐."
"쓰읍! 징그러. 떨어져."
"아휴..... 아들이 아빠에 대해 아는게 뭐가 나쁘다고 그래?"
"이 자식이!"
결국 진기만이 억지로 손으로 밀어내자 자유가 떨어졌다.
그것도 불만이 엄청 쌓인 얼굴로.
"아, 나도 좀 알고 싶다고!"
"뭘 알고 싶은건데?"
"아빠에 관한 모든거!"
"그게 왜?"
"아빠는 항상 비밀 투성이잖아! 그것 때문에 엄마가 집 나가고...."
"........"
자유가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태평한 진기만의 얼굴이 일순간에 일그러질 정도로....
-덜컥
한참 말없이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갑자기 문이 또 열렸다.
"아빠 그 사람 들이야."
자유가 먼저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진기만이 슬쩍 살펴보니 정말 자유가 말한대로 시커먼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 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자유 학생. 미안한데 좀 나가줄 수 있나?"
"아, 예...."
구면인지 자유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스르르 나가버리자 진기만이 그들을 응시했다.
그들은 수상하게도 하나같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당신 들이 날 구했소?"
"예. 조금만 늦었다면..."
"내장 파열때문에 목숨이 위험했다?"
남자가 다 말하기도 전에 진기만이 대답했다.
"자유군에게 들었군요."
사내들 중 키가 크고 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긴 남자가 아까 자유가 앉은 의자에 걸터 앉았다.
"내 이름은 스캇 레논이요. 미국 CIA 수석 요원이자 동북아시아 체제 변환 담당관이지."
"그 잘나신 CIA에서 왠일이요?"
진기만이 탐탁치 않은 얼굴로 묻자 스캇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서로 선수들끼리 모른체 하지 맙시다. 당신 프로필을 보니까 속전속결을 꽤나 좋아할듯 싶은데."
"미국이 대한민국의 우방국이라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서로간의 정보를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쉽지가 않군요."
진기만과 스캇은 서로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 우리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아 봅시다."
"이철원은 어디있소?"
"이런... 내가 한발 양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 절친한 동료이자 친동생 같은 놈이었소."
"그렇다면...."
스캇은 뒤로 팔을 내밀자, 요원 중 한명이 사진 한장을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그는 훌륭한 파트너였소."
진기만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스캇에게 사진을 받아들고 불안한 예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철원 요원은 현장에서 즉사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