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만약 미국이 시크릿-X 바이러스를 작정하고 퍼뜨린다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질겁니다."
"그러겠지. 자국 영토를 불바다로 안 만들려면 한반도에서 분명 해결을 봐야 하니까."
진기만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진기만은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 아무리 이철원이라도 이렇게 걷잡을 수없이 커진 사태를 혼자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배님..."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나? 그냥 하늘에 모든것을 맡기는 수 밖에...."
"휴...... 역시 그럴 수 밖에 없는 겁니까?"
이철원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짜식... 어떠냐? 제수씨랑 승철이는 잘 크고 있냐?"
진기만이 분위기를 전환시킬겸 화제를 돌리자 이철원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빙긋 웃었다.
"예.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큰 일이긴 하지만요."
"야, 내 앞에서 자식 공부이야기 하지마라. 우리 아들은 이미 포기했다."
"크큭. 자유도 공부 안합니까?"
"학교만 잘 다녀도 내가 그 자식한테 엎드려서 절이라도 하겠다."
"하하! 그 정도입니까?"
진기만 너스레를 떨자 이철원이 크게 웃었다.
"참. 너랑 나랑 20년지기인데 어떻게 아들 들이 서로 얼굴을 모르냐...."
"어쩔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직업 특성상....."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도 여유 좀 되면 그만두고 나오는게 어떠냐?"
"저는 아직인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딱 잘라서 말할것 까지는....."
갑자기 진기만의 말이 흐려지자 이철원이 힐끔 쳐다보았다.
진기만은 조수석 백미러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발견한겁니까?"
"응.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이제 좀 확실한것 같네."
진기만이 입꼬리를 올리며 콧방귀를 뀌자 이철원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 역시 미등만 켜고 달리는 뒷차가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우리를 왜 따라오는 걸까?"
"저도 잘.... 그나저나 어떡할까요?"
"글쎄...."
진기만이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결국 될대로 되라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차 세워보자. 저거 지구 끝까지 ㅤㅉㅗㅈ아올 기세다."
"으음. 괜찮을지..."
이철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건너편에는 마주 오는 차 조차 없어 분위기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끼이이익
이철원의 차와 뒤에서 다가오는 의문의 차량은 거의 동시에 멈춰섰다.
"넌 여기 있어. 내가 확인해볼테니."
뭔가 집히는게 있는지 진기만이 차에서 내려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여자가 창문을 살짝 열었다.
"아가씨. 이 오밤 중에 이런 도로를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
진기만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걸었지만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진기만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저기요. 아가씨...."
진기만이 당황한 얼굴로 다시 한번 불렀지만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참나. 뭐하는 여자야?"
결국 보다못한 이철원이 차에서 내려서 진기만 옆에 섰다.
"저기요. 아까부터 우릴 따라오는거 아닌가요?"
이철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가 차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Your name is Lee Chul-won?"
(당신이 이철원인가?)
여자는 유창한 영어로 묻자 이철원은 물론 진기만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누구냐, 너?"
"Shut up and die!"
(닥치고 죽어!)
여자가 권총을 꺼내들자 이철원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탕!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이철원의 머리카락을 스쳐갔다.
"누구 마음대로!"
이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진기만이 차문을 홱 열어서 여자를 밀쳐냈다.
"Who the hell are you?"
(넌 도대체 또 뭐야?)
진기만은 얼굴을 찌푸리며 귓구멍을 후벼팠다.
"아이씨... 아까부터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놈의 가시나가 생긴건 국밥 잘 말아먹게 생겨가지고.... 어디서 외국물 좀 드시고 오셨다고 자랑질이냐?"
"So I am going to kill you!"
(그렇다면 너도 죽여주지!)
여자가 권총을 머리에 겨냥하자, 진기만이 두 손을 들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 참 당찬 여자일세..."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미끼로 썼을 뿐이었다.
"You're dying."
(죽는건 너야.)
이철원이 여자 뒷통수에 총을 바짝 겨누었다.
"Now, Put the guns down."
(당장 총 내려놔.)
이철원이 표정 하나 안바뀌고 덤덤하게 경고하자 여자는 천천히 총을 내려놓았다.
"와. 이 가스나 눈에 독기 찬거 보소. 아주 눈빛으로 사람 죽이겠다. 죽이겠어."
진기만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 이건 오빠 줘야지. 이건 너같은 어린애가 가지고 놀기에는 위험하거덩~"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물며 권총을 건내주었다.
"Speak. What is your identity?"
(말해. 네 정체가 뭐냐?)
"Do not know."
(몰라.)
"Come from China?"
(중국에서 왔나?)
"Well...."
(글쎄...)
여자가 입꼬리를 올리자 이철원은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선배님. 아무래도 우리식대로 처리해야 할것 같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진기만이 담배를 꼬나물었다.
"이거 또 복잡한 일에 꼬여들게 생겼구만."
그는 하얀 담배 연기를 짙은 밤 하늘에 흘려보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