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뭐....?"
이승철은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S.B.I.C가 바로 나라고."
"....."
한동안 긴 적막이 계속해서 흘렀다.
도대체 뭐를 믿어야하고 말아야할지 판단조차 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한테 벌어졌던 일들이 모두 드라마처럼 느껴진다거나, 꿈 속에서 이제 막 깨어난 느낌이랄까?
"그걸 어떻게 믿지?"
이승철은 겨우 그렇게 되물었다.
그것도 힘들게 입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믿던 안믿던 상관은 없어. 어차피 내가 진행한 계획 들은 모두 다 성공했으니까."
"계획?"
"그래. 이 모든게 내가 연구했던 것을 미국이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시작되었지."
황주선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 헤칠 생각인것 같았다.
이승철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이 모든 일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풀릴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군. 너도 이 모든것에 대해 궁금하지? 그럼 말해주지."
황주선 역시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입을 열었다.
"내가 생명공학을 전공한건 1990년초였어. 그당시 우리 나라는 의학은 물론 생명공학도 매우 뒤쳐져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라도 우리 나라의 바이오 테크놀로지에 주목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깬 사람 들이 있었어. 그들이 바로 S.B.I.C가 다시 시작되는 시점이었지."
"다시 시작되었다고?"
이승철이 되묻자 황주선은 마치 그때의 일을 음미하려는듯 잠시 두 눈을 감고 회상에 젖었다.
"그래. 모든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었지. 생명공학에 한참 뒤쳐진 조국의 발전을 위해 나와 같은 생명공학 전문가 들은 미친듯이 그 분야를 파기 시작했어. 하지만 자료도 부족하고 모든걸 외국 논문에 의지해야만 하는 판국이라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 그러던중 우리는 한가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어."
황주선은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약간의 초조함을 달랬다.
그의 시선은 한번씩 초록색 실험관으로 옮겨졌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 들은 복사객체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
이승철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황주선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건가?"
"나름 이해하면서 듣고 있으니까 상관말지."
"하하. 그래, 알았어. 아무튼 모든 생명체에게는 고유의 번호를 부여받고 탄생하지. 뭐, 그게 DNA라고 사람 들은 알고 있지만 그보다 한단계 더 중요한 코드가 우리 몸안에 있다는걸 발견했지."
"그게 뭐지?"
"Special Body Inherent Cell.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명명했어."
이승철의 머리는 필사적으로 단어의 뜻을 ㅤㅉㅗㅈ아갔다.
"특별한....몸안에....내제된....세포? 그게 S.B.I.C의 약자라는 거냐?"
"오우! 아주 잘 맞췄어. 생각보다 매우 똑똑한데?"
"뭔가 부자연스러운 조합이군. 조잡스러워."
"그럴수밖에. 그냥 단어의 조합일 뿐이니까."
이승철은 조소했지만 황주선은 아무렇지않게 대답했다.
"그냥 단어의 조합을 조직의 이름으로 썼나?"
"내가 아까 말했잖아. 모든 일의 시초는 미국이 바로 이것에 관심을 가질때부터라고."
황주선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DNA보다 더 인간의 유전자를 아주 정확히 담고 있는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순간부터 우리 삶은 바로 다음날 180도 변해버리더군. 그러고보면 미국은 참 대단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CIA에서 우리 실험실을 찾아왔으니까. 그들은 우리의 실험 결과에 대단히 흥미를 느끼며 이것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자고 설득했지. 하지만 우리에게 어림도 없는 소리였어. 이것의 발견은 곧 조국의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줄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물론 처음에 안된다고 거부했지. 하지만 이 망할놈의 나라가 우리를 오히려 미국으로 떠미는 거야. 누군지 말할 수 없지만 정부 고위층 관료 들이 우릴 찾아와서 지금 우리의 실험 결과보다 국가의 안전이 더 시급하다고 말하더군. 하필이면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했던 판이라 더욱 문제는 심각했지.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북한이 느닷없이 그러한 발언을 한게 어쩐지 냄새가 났다고 여겨져."
"왜?"
"생각을 해봐. 미국은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는걸 깨닫고 한국 정부를 압박했을 거야. 하지만 정부도 꽤 망설였겠지. 이것을 놓치면 어마어마한 국가 손실이 아닐수 없을테니까. 그래서 미국 이 치사한 새끼 들은 주한미군을 들먹이면서동맹국의 안보를 걸고 다시 한번 협박했을테고, 이것도 모자라 북한을 은근히 사주해 한국을 더욱 긴장상태로 만들어버렸어. 아, 물론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도저히 우리도 그당시 상황이 납득이 가지않아서 서로 가상 시나리오를 나름 짜본것 뿐이야."
"신빙성없는 소리군."
이승철이 약간 실증난 표정을 짓자 황주선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듣기 나름이겠지. 아무튼 우리는 한탄을 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갔어. 솔직히 과학자의 양심이라는게 아직 남아 있었던건지 미국에 절대로 이 기술을 모두 알려줘서는 안된다고 말을 모았지.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 우리가 하나를 던지면 어느새 미국은 열을 알아오는 거야. 하여튼 비상한 놈들이었지. 우리가 가기 전부터 미국에 내놓으라는 모든 과학자 들이 우리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든 파고 분석했으니까. 정말 비참했어. 정부는 우리를 버리다시피 미국으로 보내버렸는데, 정작 미국은 자기네들 과학자 들을 모두 동원해서 기술을 빼가려고 하니 말이야. 정말 살맛이 안나더군."
황주선은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여하튼 다른 동료들 마저 하나 둘씩 미국의 끊질긴 포섭에 넘어가 버리고 결국 나혼자 남았을때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했지. 처음 결심을 버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를 하느냐? 아니면 과학자의 양심을 걸고 자결을 하느냐. 그게 나에게 남은 최종 선택이었지. 그래서 난 망설임없이 권총을 집어들었어. 하지만 웬지 이렇게 죽으면 그냥 개죽음이다 싶어서 타임스퀘어까지 간 다음에 모든걸 다 까발리고 권총으로 자살을 할려고 했지."
그 다음부터 황주선의 얼굴이 약간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결심도 또 오래가지 못했어. 미국이 나를 데려온 순간부터 그들이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들?"
이승철이 재빨리 묻자 황주선은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들. 나에게 이 세상을 물려주고 간 그들 말이야....."
황주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외계인 들. 그들은 정체를 숨기고 인간 행세를 하며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지. 하지만 인간에게 한계를 느낀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세상의 종말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