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이승철은 황주선의 등 뒤를 응시하며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자신과 똑같은 감염자 셋이 차분한 표정으로 냉기를 뿜어며 걷고 있었다.
'난 도대체 뭘 믿어야 하지....'
마치 인간 감옥에 갇힌마냥 이승철은 숨이 턱턱 막혔다.
세상의 멸망보다 속이고 또 속이는 인간 세상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이승철은 인간 들이 없는 세상이 더 아름다울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기가 내 실험실이야."
이승철의 복잡한 심정을 지우려는듯 황주선이 망상의 늪에서 깨웠다.
이승철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전광판을 중심으로 수천대의 컴퓨터 들이 붉은 LED 빛을 뿜어내며 웅웅거렸다.
마치 수억, 수천억개의 데이터 들이 서로 전송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승철의 두 눈을 사로잡지 못했다.
홀 중앙에 놓인 영화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실험관 하나가 그의 시선을 멈춰세웠다.
누군가가 정체불명의 초록색 액체에 갇혀 둥둥 떠다녔다.
황주선은 이승철의 눈빛을 살피며 괜히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뭉치를 정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건 뭐지?"
"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게 아닌것 같은데?"
이승철이 움찔하자 3개의 섬뜩한 칼날이 그의 목을 겨누었다.
"이봐.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일단 자리에 앉지 그래."
황주선이 눈짓하자 검은 놈들중 하나가 간의 의자를 가져와 이승철을 억지로 앉혔다.
"난 말이야. 자네가 참 마음에 들어."
"지랄하네...."
이승철은 이를 갈며 욕을 했지만 황주선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맞았어. 이 세상은 참 지랄 들이 가득차있지. 정치인부터 시작해서 비리 공무원, 사리사욕에 눈이 먼 기업인 들까지..."
황주선은 잠시 말을 멈추고 표정을 굳혔다.
"지랄하고 자빠졌지."
"....."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이승철은 꾹 참고 황주선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꼭 그런 인간 들만 지랄일까?"
"무슨 소리야?"
"너나 나나 지랄같은 인간이야. 네 뒤에 서있는 놈 들도 지랄같은 새끼 들이야. 왜냐고? 다른 사람을 지랄하도록 만드니까 지랄이라는 거야."
"......"
"너 나한테 지랄한다고 그랬지? 왜였을까? 왜 지랄한다고 했을까?"
이승철의 시선이 황주선의 입술을 ㅤㅉㅗㅈ았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무시해버렸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랄같은 존재 들이야. 서로에게 지랄하지 않으면 인간 세상은 돌아가지 않아. 왜?!"
황주선은 '왜'라는 말에 악을 담아 소리쳤다.
"인간은 누군가를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동물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이야."
황주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인간 들은 법을 만들었어. 그리고 정부를 탄생시켰지. 또한 계급을 나눠 지성과 학식을 가진 인간 들은 지성인, 상류층으로 분류해서 최대한 동물적인 본능을 억제하려고 했어."
"......"
맞는 말이다.
인간의 법, 도덕.
그것이 모두 인간의 공격적인 본능을 자제하기 위해 만든 잠금 수단이다.
"하지만 역사만 바뀌었을뿐 인간 세상은 공격적인 본능을 잠재우지 못했어. 왜냐?"
황주선은 잠시 뜸을 들인후 입을 열었다.
"인간은 공격적인 본능을 잠재울 수 없으니까."
"너도 인간 세상이 싫은가?"
이승철이 조심스럽게 묻자 황주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에 가깝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정말 증오 하는것은 따로 있어?"
"뭐지?"
"종교야."
"......"
이승철의 표정이 복잡해지자 황주선은 피식 웃었다.
"뭔가 이해 못하는 표정이군."
"....."
이승철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해. 종교는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어. 모든 종교가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존재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종교 자체가 인간을 구원하는게 아니라 더욱 구렁텅이에 빠트리는것 같아."
"왜지?"
"생각해봐. 인간은 종교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고 자신이 믿는것을 최대의 가치로 꼽으면서 타인이 그것을 믿기를 강요하기까지 하고 있어. 너도 한번 경험해 봤을 거야. 동네 교회에서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잖아."
"뭐.... 그런적이 있지."
"그래. 바로 그거야."
이승철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황주선이 바로 대답했다.
"너가 만약 귀찮다면 그냥 무시하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하겠지. 하지만 한국 교회인 들은 참으로 끊질겨.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은근히 협박하지."
"뭐.... 맞아."
"그래. 그런데 기독교 사상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아닌가?"
"그래서?"
"그런 예수는 모두를 사랑한다면서 왜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걸까?"
"그건..."
"예수는 인간 대신 십자가에 못을 박히고 인간의 죄를 대신했다면서, 왜 죄를 짓는 인간보다 자신을 믿지 않은 인간에게 지옥에 간다고 했을까?"
"......"
이승철은 점점 황주선의 말에 빠져들었다.
"지옥은 말 그대로 지옥. 모든 종교의 정설에 따르면 지옥은 화염으로 사람을 영원히 불태우고 악마들로 하여금 인간을 찢여죽이지."
황주선은 말 뿐만이 아니라 근처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여 전광판에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섬뜩한 화염에 휩싸인 인간 들이 절규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왜 인간을 불에 태우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걸까? 왜 지옥은 죄를 짓는 인간 들이 단 한번이라도 반성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표현한걸까? 왜 불로 태우고 찢어죽여야 지옥이라고 하는가? 그게 바로 인간이 지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예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직도 서로를 물고 뜯으려는 본능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주선은 무서울 정도로 다그치면서 이승철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허영심과 허세가 늘어나고 거짓과 위선으로 세상을 채워가고 있다. 심지어 종교마저 오염되어 사람 들을 현혹하고 있다. 어디로? 자신 들만의 거짓 세상으로 말이야."
"..........."
오류다.
황주선의 논리는 오류 투성이다.
인간은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각양각색으로 살아가며 서로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건 공격본능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다.
다만 인간 들은 스스로 외롭다는걸 알기에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세상을 꾸려 나간다.
또한 인간은 종교를 통해 안정을 찾고 이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한다.
문제는 몇몇 인간 들의 잘못된 접근 방식 때문에 종교 전체가 더럽혀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종교 자체가 신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역사 속에 숨쉬고 있기 때문에 오류가 뒤섞일수도 있다.
하지만 법과 도덕보다 종교의 가치는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이다.
이유는 인간을 묶는 연결 고리는 눈에 보이는 규칙이 아닌 정신적인 교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승철이 황주선에게 공감을 느끼는것은, 공동체와 정신적인 교감을 모르는 몇몇의 인간들 때문에 세상이 점점 험악해진다는 점 뿐이다.
이승철은 그전에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묻고 싶은게 있었다.
"자유를 가두고 나에게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가 뭐냐?"
"그건...."
황주선은 다시 허리를 펴고 천천히 뒷짐을 졌다.
"내가 바로 S.B.I.C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