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던가?
그런 말을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을 경험했던가?
김문규의 머릿속은 지금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안 어울리게 돌아갔다.
수갑을 차고 온 얼굴이 여기저기 긁힌체 사람 들의 수근거림을 들으면서도 마음만은 편하게 먹었다.
그만큼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이미 속초시는 숙청회를 열고 김문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곳 생존자 들에게 숙청회는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기분이 어떤가?"
김문규가 속초오거리에서 걸음을 멈췄을때, 사람 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심해졌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아침부터 자신의 사무실을 들쑤셨던 장영석이었다.
"기분? 기분이라..."
김문규는 의미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흐렸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깨달았어. 어차피 인간은 스스로 멸망을 향해 걷는 족속이라는 것을...."
"그렇게 되지는 않을거야. 내가 모든 인간 들을 구제할 거거든. 사람 들은 그저 날 믿기만 하면돼."
장영석이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올리자, 김문규는 피식 웃으며 보란듯이 그를 비웃었다.
"다들 그렇게 말했었지. 대통령이던, UN사무총장이던, 하느님이던간에 모두 자신만 믿으면 구제를 받고 인간을 구원할 거라고 했지.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인간만큼 믿지 못할 동물 들은 없지. 이봐, 장영석. 입이 뚫렸다고 모두가 바른 소리를 하는 것만은 아니야. 지금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게 뭔줄 알아?"
"....."
장영석은 침묵으로 김문규의 대답을 기다렸다.
"바로...."
김문규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같은 벌레 들을 짓밟고 더러운 바닥에 짓이겨서 다시는 생존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
김문규는 이를 갈며 말을 마친 후, 그것도 모자라 장영석 얼굴에 침을 뱉었다.
장영석은 오른뺨에 흐르는 침을 손수건으로 쓰윽 닥은후 김문규의 왼쪽뺨을 툭툭 쳤다.
"아쉽군. 그 벌레가 내가 아니라 자네가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장영석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저기 저 파렴치한 놈은 어르신의 사모님을 눈 깜짝하지 않고 죽였습니다!"
"세상에!"
"마, 말도 안돼."
장영석의 말에 모두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모두 사실입니다. 김문규는 우리를 속이고 S.B.I.C와 밀회를 하며 온갖 음모를 꾸몄습니다."
"말도 안돼! 김교사가 그럴리가 없어!"
"맞아요! 선생님이 얼마나 S.B.I.C를 증오하시는데...."
속초 사람들은 불신 가득한 얼굴로 장영석을 쏘아보며 김문규를 두둔했다.
장영석은 속으로 고까웠지만 꾹 참고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김문규의 겉모습에 모두 속으신 겁니다. 저는 황박사와 함께 김문규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는 S.B.I.C를 몰래 만나며 우리를 그들에게 넘기려고 했던겁니다!"
"웃기지마라! 이건 음모야!"
김문규가 소리를 지르며 항변하자 사람 들 역시 그를 거들었다.
"맞아! 어르신을 불러와! 어르신께 직접 말씀을 들어야겠다."
속초 사람 들은 신노인을 찾으며 고성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 장영석 앞에 쓰윽 나섰다.
그는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장영석과 살짝 눈을 맞추기까지 했다.
속초시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속초병원 원장 박지호였다.
"장의원님 말이 사실입니다. 어르신은 충격을 받고 실신하셨습니다."
"뭐?"
"지금 뭐라는 거야?"
"말 그대롭니다."
장영석이 앞으로 나섰다.
"어르신은 실신하셨습니다. 왜냐구요? 바로 저 파렴치한 자가 사모님을 칼로 찔렀기 때문입니다!"
"그, 그럴리가!"
"......"
어떤 사람은 머리를 감싸쥐었고, 또 어떤 사람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왜?
모두가 김문규에게 대답을 기다렸지만 장영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바로 이 칼이 사모님을 찔렀던 칼입니다."
-쨍그랑....
장영석이 내던진 반짝이는 은빛 물건은 날이 40cm정도 되보이는 횟감용 칼이었다.
칼날은 이미 붉은 피로 물든 후였다.
"......"
사람 들은 지금 눈 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김문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은 충격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 이게 무슨...."
"네가 저지른 일인데 뭘 그렇게 놀라는 거지?"
"야.... 장 영 석!!!!!"
김문규가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이게 네가 생각한 계획이었냐?"
"자기 일을 덮을려고 별 쇼를 다하는군. 집어넣어!"
"예!"
경찰 제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들이 김문규를 강제로 끌고 나가자 장영석은 아무도 모를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볼새라 미소를 싹 지우고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워낙 충격적인 일이라 다들 제정신이 없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하지만 어르신께서 깨어나시는대로 모든건 밝혀지고 엄중하게 죄를 논할 겁니다. 그동안 모두들 안심하시고 절대로 속초시 외부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사람 들은 장영석이 매우 미심쩍었지만 현재로선 별다른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장영석이 속초시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실세이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의외로 쉽사리 가라 앉을 수 있었다.
다만 속초시 사람 들 마음 속에는 신노인이 깨서 얼른 진실을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속초시 사람 들은 한가지 크게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신노인이 병원에 있는지, 자택에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절망만 남은 인류 멸망 속에서 근 1년간 평화롭게 삶을 유지함에 있어서 따라오는 절대적인 방심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