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99화 (98/262)

< -- 9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승철이 등을 돌리자 장영석이 지긋이 쳐다보았다.

"말 그대로야. 어르신의 손녀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희생되었어. 사실 그녀의 몸안에 있는 바이러스는 어떤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생체 실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자기 손녀가 아닙니까?"

이승철이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질렀다.

그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장영석은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말은 나를 희생해야한다는 말과 같네.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을 지킨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나?"

"그럼 어르신께서는 본인 스스로 희생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시겠지. 평생 괴로워하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까. 다만 내가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인다는 거야."

"그게 무슨...."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이승철의 어깨를 장영석이 어루만졌다.

"만약 어르신께서 당신의 손녀만 생각하셨다면 속초 시민 들을 이렇게 지켜낼 수가 없었을 거야. 어르신의 통솔 능력은 불행하게도 개인이 아닌 모두를 위해 쓰이는게 이익이지."

"사람의 지키는 능력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게 아닙니다."

"생각보다 답답한 친구로구만. 하긴 자네같이 뚝심이 있는 사람들은 내 말을 전혀 이해를 못하겠지. 하지만 이거 하나는 명심해."

장영석은 표정을 달리하고 이승철에게 가까지 다가갔다.

"당장의 나무를 보는 사람과 전체의 숲을 보는 사람은 하늘과 땅 끝 차이야. 자네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할거야. 그리고 내 눈에는 자네 일행 중 한명은 반드시 희생을 하게 되있어. 그게 누구냐 하면....."

장영석은 이승철의 귀에 대고 속삭였고, 이승철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말도 안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은 이처럼 실연처럼 다가오지."

"......"

장영석은 이승철의 어깨를 두드리고 연회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승철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연회는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다.

하긴 그건 이승철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옆에서 심하게 코를 골고 자고있는 자유는 거나하게 술이 취해 제 몸하나 못 가눌 정도였다.

"......"

이승철은 자유의 코를 막아보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친구의 코골이는 참으로 끈질겼다.

결국 이승철은 조용히 방을 나와 거실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자 어스름한 달빛이 베란다를 통해 이승철의 몸을 더듬으려고 했다.

이승철은 그러한 자연적인 현상도 괜히 싫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만 했다.

'자네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할거야.'

장영석의 말은 차라리 자신한테 죽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아주 틀린것만은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자신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도 이승철에게는 괴로울 뿐이다.

말로 표현을 안할 뿐이지 점점 자신이 하는 일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다만 이렇게 답답할 때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나마 좀 나아진다.

'왜 이럴때 네가 제일 보고 싶을까?'

이승철은 작은 실소를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스락!

그때 정준혁이 있는 방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이승철이 반사적으로 부엌 싱크대에 바짝 붙어 숨을 죽였다.

부엌을 가로막는 벽 뒤에는 정준혁이 묶고 있는 방문이 있었다.

이승철은 그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덜컥!

예상대로 정준혁이 묶고 있는 방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승철은 더욱 숨을 죽이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기다렸다.

-끼이익!

맥이 빠지게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리더니, 뒤 이어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승철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조용히 정준혁의 뒤를 밟았다.

'역시...'

정준혁은 3층 복도 끝, 황주선 박사 실험실 문 앞에 멈춰섰다.

이승철은 중앙 계단 벽에 기대서서 정준혁을 응시했다.

차수철은 천천히 실험실 안으로 들어섰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온 몸을 감쌌지만 그렇게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다.

-너도 참 고집이 세군.

"오늘 낮에 아주 재밌는 걸 건졌거든."

차수철은 미리 준비해 온 손전등을 켰다.

-아, 아까 그 보고서 말인가?

"그래. 살펴 보니까 아주 흥미로운 내용 들이 가득 들어있더군. 잘하면 우리 계획을 실행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몰라."

-좋은 일이군. 그런데 그 놈들이 눈치채지 않았을까? 아까 좀 소란스럽게 나온것 같은데?

"뭐 술퍼먹고 다 들 쓰러졌으니까 별로 신경쓸거 없어."

차수철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이 서랍 저 서랍을 열어보았다.

-나는 솔직히 이승철 그 놈이 마음에 안들어. 그 자식 꼭 뭔가를 알고 있는것 같아 불길해.

차수철의 표정은 감흥이 없었다.

어제 분명 이곳에서 이승철과 마주치고 집에서 자신을 붙잡고 정색할 때, 차수철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이승철의 의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것을 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차라리 미리 손을 써버릴까?

"그건 안돼. 지금 이승철의 의심이 높아질수록 상대하기가 어려워져. 무방비 상태가 되도록 때를 기다려야해."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처음에 이승철을 제거하자고 했을 때는 왜 듣지 않았지?

"그때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럼 네가 생각하는 때는 도대체 언제야?

"으음... 그건...."

차수철은 느긋하게 연구 문서를 뒤지다가 생각하고 있던걸 찾았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기술을 손에 넣었을 때가 바로 그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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