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98화 (97/262)

< -- 98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세상에! 아파트를 뻥 뚫어놨어."

"......"

자유는 있는 그대로의 놀란 감정을 표현했다.

이승철 역시 말을 안했을 뿐이지 같은 생각이었다.

마치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법한 실험실 내부의 모습에 이승철과 자유는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여기는 황박사가 떠난 이후 폐쇄된 곳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우리를 머물게 한겁니까?"

"그건...."

장영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여러분이 황박사님을 꼭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황박사님을 찾는 조건으로 우리가 속초시에 머무는 거 아닙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장영석은 빙긋 웃었다.

"저는 여러분을 100% 신뢰하기 때문에 황박사님 연구실로 안내한 겁니다. 아니,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거 여러분은 더욱 발을 빼기 어렵겠군요. 따라오시지요."

장영석은 일행은 안내하며 1층까지 내려갔다.

"보십시오. 황박사님은 수많은 연구와 실패 끝에 드디어 백신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요. 저는 이런 상황이 여러분 들이 황박사님을 찾는데 동기 부여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이승철은 얼른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럼 의도적으로 저희를 여기로 안내한 거군요."

"의도적이라기보다 동기 부여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조만간 여러분께 공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곳을 발견한 건 아무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

장영석은 이승철 일행을 조금 더 안내한 후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문을 단단히 걸어잠궜다.

"언젠가 황박사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이 문을 열겁니다."

장영석은 빙긋 웃으면서 열쇠를 자신의 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이제 여러분은 집에 들어가서 쉬십시오. 제가 시간이 되면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거실에 있는 전화가 유일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니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그 전화로 내선번호 누르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영석이 계단으로 내려가자 이승철 일행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승철은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꺼림칙함을 느꼈다.

"준혁이형."

"으, 응?"

"형, 실험실에 몇 분 있었어요?"

이승철의 목소리가 상당히 딱딱하자 차수철은 짐짓 움츠러들었다.

"그게.... 나도 잘... 10분 정도 있었던 것 같고..."

"10분이요?"

"응. 아니, 한 20분 정도인가....."

이승철의 눈초리는 점점 가늘어졌다.

전에는 몰랐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정준혁(차수철)에 대한 의심이 점점 자라는 것 같았다.

하긴 그에 대해서는 그때 만난 것을 빼고는 어느 하나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물론 그가 말이 없고 내성적인 스타일이라고 해도, 뭔가 진지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한테 말을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예상외로 무언가 엉뚱한 곳에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스타일인것 같았다.

사실 그러한 것들이 차수철에 대한 의심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갔다.

그렇다고 차수철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직감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더 주시할 필요는 있었다.

"아무튼 준혁이형은 앞으로 저희랑 같이 다니는게 좋겠어요."

".....왜? 날 못 믿는거니?"

차수철이 기가죽은 표정으로 축 늘어지자 자유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하. 준혁이형. 그런게 아니라 승철이는 형이 걱정되서 그런거에요. 그렇지, 승철아."

자유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지만 이승철의 표정은 싸늘했다.

"형이 움직일때마다 자꾸 안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형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에요. 다만 뭔가가 좀 불안해요."

"야, 승철아. 무슨 말을 그렇게...."

"당분간 우리 그렇게 하자. 우리 요즘 긴장이 많이 풀어졌어."

이승철은 딱 자기 할말만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따가 저녁 먹을 때 불러줘...."

차수철 역시 축 늘어진 어깨를 이끌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자유는 거실에 홀로 남아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원도 지역은 한 여름에 춥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속초는 참으로 따뜻한 도시였다.

거센 동해 바다를 끼우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그 억센힘을 받아들이는 듯한....

작지만 모든것을 받아주는 고향의 어머니를 보는 듯한 항구 도시였다.

"음식은 먹을만 했습니까?"

연회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바닷바람을 쐬고있는 이승철 곁으로 장영석이 다가왔다.

"아, 의원님..... 저녁에도 회가 나올줄 알았는데 한우가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저희라고 맨날 바닷고기만 먹고 살겠습니까? 자체적으로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합니다. 다행히 강원도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감염자 들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렇군요...... 저보다 웃어른이신데 편하게 말씀 놓으시죠."

"하하. 그럴까?"

장영석은 소주에 얼큰하게 취했는지 이승철 어깨에 손을 올리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데 속초가 어떻게 이렇게 안전한 겁니까?"

"하아, 또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는군."

장영석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빙긋 웃었다.

"하긴 이 도시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가장 큰 이유는 어르신이 이곳에 계셔서야. 바이러스때문에 공포가 질린 사람 들을 잘 통솔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참 대단하신 분이네요."

"아니, 그런 능력을 보고 대단하다는게 아니네."

"예? 그럼...."

장영석은 대답 대신 미리 가져온 소주병을 들이켰다.

"어르신께서는 애지중지하셨던 손녀가 있었어. 아들, 며느리는 이미 바이러스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 어르신께서 보살피게 되었지.."

"아...."

"하지만 그 손녀도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어."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장영석이 반문하자 이승철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반드시 바이러스를 고치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제 목숨을 걸고라도 말입니다."

"왜인가?"

"왜라니.... 당연히 가족이니까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백신을 찾아야죠."

"맞아.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네."

"예?"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지만 헛소리를 하는게 아닌것 같았다.

이승철은 도무지 장영석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해야 하는것 아닌가?

"난 자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것 같군.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냉정해야할 때도 있네."

"솔직히 이해가 안갑니다. 가족을 위해서 냉정해지라니요?"

장영석은 아까와 달리 표정을 달리하고 바르게 앉았다.

"자네 여기까지 오면서 산전수전을 겪지 않았나?"

"예... 좀..."

"자넬 처음 봤을 때부터 난 알 수 있었지. 절대 무난하게 여기까지 온 사람은 아니야. 분명 사람도 죽였을테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저질렀겠지."

"......"

"그게 자네를 위해서였나? 남을 위해서였나?"

장영석의 질문은 이승철에게 상당히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바로 이승철이 요즘 내적으로 심하게 혼란스러워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변명을 할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쉽게 이야기할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 변명하는 것이네. 마음에 심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숨기고만 싶은 거야."

"의원님과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진 않군요.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이승철이 불쾌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장영석이 얼른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서는 자신의 손녀를 황박사에게 부탁했네."

"......."

이승철이 멈칫하자 장영석은 말을 이었다.

"손녀를 해부해도 좋으니 백신을 개발 해달라고 말이야."

".......!"

이승철의 두 눈동자는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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