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0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결국 이승철과 자유는 정준혁을 데리고 속초로 향했다.
이승철과 자유는 서로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시간을 때웠지만, 바로 뒷좌석에 앉은 정준혁의 표정은 참으로 미묘하기만 했다.
"....."
- 차수철. 안돼.
"......"
정준혁이 아닌 차수철.
그의 본성은 이승철을 보면서 더욱 이성을 억누르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의 또 다른 자신이 그 본성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하하.... 안 그래요, 준혁씨?"
"예? 아, 예......"
차수철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정준혁으로 돌아왔다.
만약 여기서 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운전을 하고 있는 이승철을 덮쳤을 것이다.
"그런데 준혁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자유가 고개를 휙 돌리면서 묻자 차수철이 움찔거렸다.
"아, 저 저는... 그러니까 33살입니다."
"으엑! 정말요?"
"예....."
차수철이 움츠러들면서 대답했지만 자유와 이승철은 서로 꽤 놀란 모양이었다.
"우와. 동안이시네요."
"자유야. 너보다 훨씬 어려보이시는데...."
"넌 좀 닥쳐줄래?"
"크크큭!"
"그런데 어디서 낯이 좀 익는데....."
자유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차수철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뉴스만 제대로 제때 챙겨봤다면 자신이 누군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다행히 감염자가 되고나서부터 얼굴빛도 달라지고 많이 야위어져서 그때의 인상이 드러나질 않았지만, 자유의 눈썰미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야, 네가 여기저기 싸돌아다녀서 낯이 익은거겠지."
"그런가? 하하하!"
놈 들은 뭐가 즐거운지 서로 낄낄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차수철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유를 먼저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름이 이승철이라고 했나요?"
"예, 맞습니다."
"아까 고맙다는 말 제대로 못한것 같아서....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휴. 말씀 놓으세요. 저보다 훨씬 형이신데요."
"그, 그래도 되나?"
"그럼요. 준혁이 형."
"하하..."
차수철은 억지로 웃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생각같아서는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싹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아까 이승철의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함부로 달려들 수가 없었다.
'이승철을 제거해야 저 폭탄 머리를 먹을 수가 있는데....'
차수철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을 때쯤 이승철의 차는 속초에 도착했다.
"우와, 깨끗한데?"
자유가 소리를 지르자 차수철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눈부신 바다와 간간히 떠있는 어선 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 배 들은 다 움직이는 건가?"
"응. 그런가봐."
모두들 속초의 전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요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끼이익!
이승철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 길을 잘못 든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지?"
자유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속초 공설운동장 오거리....."
이승철 역시 낭패가 뒤섞인 얼굴로 대답했다.
그들 앞에는 겹겹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총을 들고 서있는 생존자 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차에서 당장 내려!"
경찰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권총을 들고 서서히 다가왔다.
"에휴. 우린 어딜가든 환영을 못 받는구만."
또 다른 생존자 들을 발견하는건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어딜가든 의심부터 받는건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승철과 자유는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동으로 두 손을 번쩍 올렸다.
"너희 누구야?"
"당신들과 같은 생존자입니다."
속초 시민 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 같은 생존자 들이 또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란것 같았다.
"저, 정말 생존자야?"
경찰관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자유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휴, 두 눈으로 보시고도 그래요. 저희 생존자 맞아요."
그러자 모두들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 들이었다.
그 모습에 자유는 기분좋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광주에 있던 생존자 들이에요. 백신을 만들기 위해 황주선박사님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오게 된거에요."
"...."
이승철이 생각해도 자유의 말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 들이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져버렸다.
"그 사람은 여기 없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조용히 앞으로 나서며 냉랭하게 대답했다.
마치 집을 버리고 나간 자식을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야. 그 사람은 여기에 없어."
"....."
이승철과 자유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황주선 박사가 여기에 없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지만, 적어도 속초를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을 왜 그렇게 냉랭하게 대하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 모여서 뭘 하시고 계시나요?"
"보면 모르나? 자네 들이 속초 중심부까지 쳐들어온 바람에 난리가 난거지."
그러고보니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 들이 남자 들 밖에 없었다.
건물안에 숨어있던 어린 아이 들이 창문을 열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내밀었지만, 엄마 들이 황급히 자기 자식 들을 숨기고 있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승철이 허리를 숙이자 자유도 따라했다.
"그런데 준혁이형이 안보이네?"
"뭐?"
그제서야 차수혁이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자유가 소곤거리자 이승철이 깜짝놀랬다.
사실 차수철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바닥에 바짝 엎드려 숨어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단 지켜보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 여~ 이렇게되면 굳이 먹잇감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
차수철의 눈빛은 점점 탐욕스럽게 변해갔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의 말을 듣고 꾹 눌러 참은 보람이 있었다.
"크큭...."
차수철은 비열한 미소로 먹잇감 들을 쓰윽 ㅤㅎㅜㅌ어보았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곧 이승철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가로 막혔다.
이승철은 자신같이 생존자 들을 먹잇감으로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차수철에게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이었지만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 그나저나 저 자식은 어떡할건가? 지금이라도 싸울건가?
"둘이 붙으면 한놈은 뒤지고 한놈은 병신이 되겠지."
- 잘 생각했군.
"의외로 침착한 놈 들이야. 저 폭탄머리도 그렇고.... 다들 생각이라는 게 있어."
- 흐음. 그럼 좀 곤란하겠는걸?
"감탄만 하지말고 뭔가 대책을 생각하는게 어때? 내가 굶으면 너도 힘들어질텐데."
- 난 어차피 네 놈의 정신이라 굶든 말든 상관은 없어. 네가 안 죽기만 하면 돼.
"쳇! 확 뒈져버릴라."
- 크큭. 이봐. 잘 생각해보라고. 이승철이 벽이라면 그저 그 벽을 스스로 부숴버릴 생각만 하는 건가?
"........"
순간 차수철의 머리에서 무언가 번뜩였다.
확실히 그건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굳이 자신과 동등한 놈과 싸워서 피까지 볼 필요는 없다.
"역시 넌 내 자아이지만 머리가 좋아."
- 크크큭.
하지만 그 둘의 희열도 오래가지 못했다.
생존자 들이 이번엔 차수철에게 총을 겨누고 차문을 열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