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그럴줄 알았다."
"엥?"
자유는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지만 이승철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총을 등 뒤로 고쳐매고 오른팔을 내밀었다.
"크윽!"
이승철이 잠깐의 고통 때문인지 얼굴을 찡그리자 길이가 1m나 되는 장검이 그의 팔에서 솟구쳐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은 분명 한명 밖에 없었다.
"덤벼."
이승철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감염자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그 물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크아악!
감염자가 오른팔을 위협스럽게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자유야. 뒤로 물러나 있어."
"응."
자유가 순순히 물러서자 이승철은 팔을 높게 치켜들었다.
-캉!
감염자의 오른팔과 이승철의 오른팔에서 솟은 검이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부딪혔다.
'뭐, 뭐야, 이거?'
-끼기긱!
이승철은 무척 당황해 했다.
그의 오른팔에 잠들어 있는 물질은 이승철의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변할뿐만 아니라 그 강도도 무척 강하다.
그래서 저 푸르딩딩한 덩치의 오른팔을 단칼에 베어버릴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쇠와 쇠의 마찰 소리와 함께 불꽃까지 튄 것이다.
"도대체..."
-크아악!
당혹감에 빠져있는 이승철에게 놈은 한치의 여유를 주질 않았다.
오른팔을 있는 힘껏 비틀어 검을 쳐낸 후 이승철의 목을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젠장!"
이승철은 그 자리에서 허리를 옆으로 꺾어 거대한 건물 기둥같은 감염자의 오른팔을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이미 몸의 중심을 잃어버린 탓에 2차로 공격해오는 왼팔을 막아낼 수 없었다.
-퍼억!
"크악!"
왼팔은 오른팔보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지만 그 파워는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승철이 운좋게 머리를 살짝 움직이지 않았다면 얼굴 반이 완전히 뭉개져 버릴 수도 있었다.
다행히 오른쪽 뺨만 비껴 맞은 탓인지 잠시 비틀거리다가 얼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좀 하는데?"
이승철은 겉으로 씨익 웃었지만 속으로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오른쪽 팔은 괴물인데 다른 곳은 평범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이야?'
이승철은 전략을 세워서 놈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저 놈이 약간의 지능이라도 있다면 이승철이 무엇을 하려는지 금방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놈의 지능이 어느정도인지 일종의 실험을 해보려는 것이다.
"흡!"
이승철은 심호흡을 깊게 내쉬고 갑자기 오른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크아악!
그 놈 역시 이것이 기회라는걸 알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들었다.
'하나... 둘....'
이승철은 속으로 카운터를 세다가 감염자가 자신의 주무기인 오른팔을 휘두를 때를 기다렸다.
-크악!
예상대로 놈이 오른쪽 팔을 휘두르자 빈틈이 보였다.
이승철은 주저하지않고 반사적으로 비스듬하게 피한 후, 놈의 왼쪽 옆구리에 검을 쑤셔넣었다.
-퍼억!
-쿠아아악!
놈은 괴성을 지르면서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이승철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놈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감염자는 목에서 머리를 잘라야 영원히 보낼 수 있다.
"후우...."
이승철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오른팔을 뚫고 나온 검을 몸 안으로 밀어넣었다.
"다행히 뇌는 없는 놈인가봐. 뻔한 공격을 유도하는데 걸려드네."
"으음..."
자유는 이마를 찡그리며 목이 없는 감염자 옆에 섰다.
"이 새끼는 뭘 먹었는데 오른쪽 팔만 거대하지?"
"글쎄...."
이승철과 자유는 각자 생각에 잠겼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저기..."
바로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그들을 불렀다.
이승철과 자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마당에 쓰러져있던 바싹 마른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매우 초췌했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했지만, 이상하게 섬광이 번뜩이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였다.
"아, 생존자이신가요? 이 감염자때문에 봉변을 당하실뻔 했네요."
"아, 예. 저기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이승철이 반가워하면서 손을 내밀자 그 사내는 엉거주춤하다가 살짝 붙잡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일행은 없나요?"
"예, 저기 그러니까...."
사내는 계속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승철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내는 얼른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각지를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어디서 발을 잘 붙이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저는 이승철이라고 하고, 저 친구는 진자유라고 합니다. 저희가 좀 사정이 있어서 일행하고 떨어져 있어요."
이승철이 쾌활하게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 그 사내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정준혁이라고 합니다....."
"아, 준혁씨...."
남자 셋이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뭔가 서로가 부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곳에 어쩐 일로...."
이승철이 침묵을 깨고자 물었지만 그런 입장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곳에서 쉴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저 방에서 튀어나오더군요."
"그러셨군요. 다행이네요. 혹시 이 마을에 뭔가 좀 이상하다거나 그런건 없나요?"
"글쎄요. 제가 이제 막 도착해서요."
"으음...."
이승철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자 자유가 얼른 옆구리를 찔렀다.
"그냥 가자. 그냥 좀 독특한 감염자 들이 있던것 뿐이야."
"....그러자."
이승철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더 이상 친구를 위험에 빠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희는 속초로 떠날 겁니다."
혹시나하고 묻는거였는데 정준혁은 두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요? 정말 속초로 떠나실 겁니까?"
"예."
"저도 같이 가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너무 지쳐서 이제는 좀 안전한 곳에서 쉬고 싶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짐을 들어들이겠습니다."
"아, 아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제발 저 좀 데려가 주십시오."
정준혁이 애원하자 이승철은 자유를 쳐다보았다.
자유는 어깨를 으쓱할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정말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준혁은 허리가 부숴져라 인사를 해댔다.
이승철과 자유는 그런 행동이 참으로 부담스러웠지만 같은 생존자를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조회수 10만을 돌파했네요.ㅠㅠ
그동안 제 모자란 글을 봐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