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85화 (85/262)

< -- 85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반면 이승철은 얼굴은 붉어졌다.

민망함과 당혹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느낌이었다.

"무, 무슨일 있었습니까?"

"응, 그게...."

박대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 끝을 흐렸다.

"아, 죄송합니다. 굳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이승철은 손사래를치며 무척 미안해했다.

그렇게 서로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런 대화없이 앉아있었다.

- 드르렁.... 쿨....

오랜 시간이 지나자 소희는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고 자유는 그냥 지쳐서 잠들었다.

"내 와이프는...."

박대위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4번째 맥주캔을 벌컥거렸다.

"불쌍한 여자였지. 육사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삼사도 아니고..... 그저 미래가 불투명한 학군장교에게 뭐가 그렇게 끌렸는지 훈련만 끝나면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날 기쁘게 해줬어. 하지만 난 전혀 잘해주지 못했는데..... 그 남들 다하는 영화도 같이 못보고 레스토랑도 못 가보고.... 게다가 말주변도 없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이승철은 씁쓸한 얼굴로 맥주캔을 집어들었다.

"내가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냥 군인이라서?"

"아뇨. 그냥 군인인데 덤으로 재미도 없어서 신기한 인간이었나 보죠."

"푸하하하!"

박대위는 맥주를 뿜으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맞아, 맞아. 재미도 없는데 말까지 없으니까 외계인같이 보였을 거야."

"형수님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이승철도 취기가 오르자 말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맞아. 좋은 여자였어. 소희도 그녀를 많이 닮아서인지 왈가닥이고 제 멋대로이긴 하지만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아. 소희가 거짓말을 조금 하더라도 심하게 야단쳤거든. 그런데... 그런데 왜 그 날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요?"

박대위는 슬픔에 잠긴 얼굴로 이승철을 쳐다보았다.

"바이러스에 걸렸는데 그걸 숨기고 밝은척 아무렇지도 않은척을 했어"

"......"

맥주캔을 입에 대려던 이승철의 손이 굳어졌다.

"바이러스가 전남을 한참 휩쓸었을 때, 전주에 홀로 계시는 장모님이 걱정됐는지 와이프가 가보겠다고 하더라고. 처음에 말렸지만 자기 부모님이 걱정되서 내려 가겠다는데 차마 고집을 피울 수 없었더라고."

"그럼 처갓집에서 못 돌아오신 겁니까?"

"아니. 오히려 이틀만에 빨리 돌아왔어. 어째서 빨리 왔내고 물었더니 장모님은 벌써 서울 친척집으로 피신을 가셨다고 하더군. 그런데 정작 문제는 와이프에게 있었던 거야."

"설마...."

"그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었어. 와이프가 전주로 내려갔을 때 하필이면 바이러스가 전북까지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었거든. 어쩐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이 매우 수척하더라고. 그때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지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여겼어."

박대위는 남은 맥주를 벌컥거리고 입가를 손으로 닦았다.

"결국 난 그렇게 병신같이 와이프를 일주일 동안 방치했었던 거야. 와이프 몸은 망가져 가는데 겉으로 밝아보인다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 했던게 큰 죄였어."

"너무 자책 하지 마세요. 만약 미리 아셨다고 하더라도 크게 손 쓸 방법은 없었을 거에요."

이승철은 조심스럽게 위로했지만 박대위는 분노에 찬 얼굴로 맥주캔을 한 손으로 찌그러트렸다.

"하긴. 정부에서 그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야."

"예?"

"육본에 아는 동기 놈이 있는데 그러더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모조리 사살하라는 명령을 극비리에 내렸다는 거야."

"말도 안돼...."

이승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지만 박대위는 콧방귀를 끼며 맥주캔을 던져버렸다.

"정부가 언론과 짜고 국민을 속인 거지. 겉으로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고 최대한 감염자 들을 치료하겠다고 하면서 결국 자국민에게 총뿌리를 겨눈 거야. 내 와이프가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봐. 와이프는 물론이고 소희까지 위험해졌을 거야."

잠시 소희를 바라보던 박대위의 눈이 다시 슬퍼졌다.

"3월 24일. 그래. 그날이었지. 와이프가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서야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고 그러더군. 그말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다 내팽개치고 죽고 싶은 기분이었어.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

이승철은 그 심정이 어떤건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어가는 모습은 그 누구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일 것이다.

"와이프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어."

박대위가 기억하는 그녀의 말이 이승철의 귀에 이중으로 울려퍼졌다.

"난 죽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 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갑자기 의식이 끊겨서 죽는 것도 싫어요. 난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서 죽고 싶어요......"

박대위는 잔뜩 공포에 질런 얼굴로 자신의 두 손을 노려보았다.

"이 손으로... 이 손으로 와이프의 목을 잡았을 때..... 난 정말....."

"그만하세요."

이승철은 박대위의 두 손을 꽉 붙잡았다.

"젠장. 내 손으로..... 흑흑...."

박대위는 바닥에 엎드려 한없이 흐느꼈다.

이승철은 딱히 무어라 위로해 줄 수있는 말이 없어서 그저 등을 두드리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박대위가 겨우 진정되었다.

이승철은 분위기 전환도 할겸 그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럼 황주선 박사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예. 속초가 고향이시라고 하더군요."

"잘 찾아왔군."

"예?"

"한달 전 그분을 만날 수 있었어. 그 분 참 대단한 분이야. 속초가 지금 어떤 줄 아나? 지금 이 땅에서 감염자보다 생존자 들이 더 많은 도시가 거기일 거야."

"정말입니까?"

이승철은 반신반의하며 물었지만 박대위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내가 뭣하러 이중사에게 실없는 소리를 하겠어? 나도 강원도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소희랑 안전한 곳에서 정착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그 분을 만나게 된거야. 그분 덕분에 대관령을 넘어 무사히 속초까지 올 수 있었지. 정말이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더군. 어부 들은 배를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아낙네 들은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으로 느껴졌어."

비로서 이승철은 그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걸 보면 이미 희망이라는 것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황박사님은 감염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아직 개발하지 못하셨지만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이미 개발하셨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속초시민 절반 이상이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렇군요. 내일 당장 속초로 가야겠어요."

"그럼 오늘 충분히 잠을 자둬. 벌써 2시가 되었군. 자네랑 친구는 여기 오른쪽 방에서 자면 될 거야."

"예. 고맙습니다."

박대위가 소희를 안아들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이승철은 자유를 억지로 끌고와 방 안에 눕히고 자신은 그 옆에 누웠다.

하지만 잠은 그렇게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 반드시 박사님을 모시고 돌아올게.

이승철은 예선이에게 했던 자신의 다짐을 되새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몸안에 잠들어 있는 시크릿-x 바이러스가 무척 불안했다.

물론 지금이야 크게 흥분하거나 화가나면 무시무시한 힘을 선사하지만, 그 힘이 언젠가는 역으로 자신을 집어 삼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황주선 박사는 모든것을 쥐고 있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이승철은 황박사가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열쇠를 들고 이리저리 도망가는 꿈까지 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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