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79화 (79/262)

< -- 7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차수철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 때문에 납치가 되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두 눈은 모두 가려진채 오로지 귀로만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알 수없는 두려움이 온 몸을 감쌌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시간마저 엄청 짧게 여겨졌다.

심하게 덜컹거리면서 어디론가 향하던 차가 갑자기 멈춰선 것이다.

"내려."

누군가 차수철의 머리를 거칠게 밀면서 밖으로 나가게 했다.

한바터면 굴러 떨어질뻔 했지만 그것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줄 수 있는 사람 들이 아니었다.

"걸어."

차수철 무작정 걸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총구가 오싹하게 느껴졌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저항할 수도 있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기에 꾹 참아냈다.

-뚜벅뚜벅

무거운 발소리가 공중에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어떤 건물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데리고 왔나?"

"예. 박사님."

"수고했네.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게."

차수철은 순식간에 이상한 침대 위에 묶여버렸다.

"내, 내가 왜...."

그제서야 차수철은 두 입술을 겨우 열었다.

그는 엄청난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았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자네가 왜 여기에 끌려 왔는지 모르겠나?"

"......예."

"약간 희망적으로 대답해줄까? 현실적으로 대답해줄까?"

"예?"

차수철과 대화하는 상대는 매우 덤덤하면서도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뭐 뉴스에서 보니까 자네를 아주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려고 하는것 같더군...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른편이야. 자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네."

"그럼 희망적으로...."

"그런데 자네가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차수철은 자신이 납치됐을 때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좋아. 자네에게 약간 희망을 주지. 자네는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은 이상 살아 남기 힘들겠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영광을 안게 될거야."

"......"

"왜? 실망스럽나?"

"......"

차수철은 모든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예정보다 일찍 죽을 뿐이다.

그때, 차수철의 왼쪽팔이 따끔거렸다.

머리가 갑자기 어지러운 것을 보니 마취제를 놓은듯 싶었다.

"자아, 이제 잠에서 깨어나면 자네는 자아를 잃어버릴 거야. 그럼 우리가 고통없이 저세상으로 보내주겠네. 대신 기적적으로 이 바이러스를 이겨내면 나를 한번 찾아오게. 내이름은 황주선. 고향은 강원도......."

더 이상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차수철은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황주선 박사는 강화유리 너머에 누워있는 차수철의 상태를 주시했다.

그의 옆에는 몇몇의 외국인 박사 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다들 긴장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황박사. 성공할 수 있겠소?"

황주선박사 옆에 서있던 미국 UWBC(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바이오테크놀러지 센터) 연구소 토마슨 소장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성공 가능성은 두고 봐야 알겠죠. 그나저나 시크릿-X 바이러스가 왜 한국에 먼저 퍼진 겁니까?"

항주선 박사의 질문에 뒤에 서있던 몇몇 CIA 요원 들이 헛기침을 해댔다.

토마슨 소장은 희미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 어찌되었건 바이러스가 감염된 초기 상태에서 지켜봐야 백신을 연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황박사는 생명공학에 뛰어난 사람이니 분명히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 거요."

그런데 말입니다."

황주선박사가 정색하면서 토마슨을 쳐다보았다.

"저번 줄기세포 때처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면, 난 이 생명공학 분야에서 영원히 손을 뗄겁니다."

"그럼 자국민 들은 어찌하려고 그럽니까?"

토마슨 역시 단번에 표정을 굳히며 반문했지만 황주선박사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백신은 나 혼자라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수량이 문제일 겁니다."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군."

"목숨을 가지고 돈놀이 했던 사람은 토마슨 당신이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뒤에 서있던 CIA요원과 한국 특수부대 요원 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토마슨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황박사는 명성을 원하시는 거요, 돈을 원하시는 거요?"

황주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됐습니다. 내가 당신하고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소."

"후후. 미국과 한국이 아무런 사심없이 힘을 합친다면 분명 좋은 성과를 낼 것이오."

토마슨은 기분좋게 웃었지만 황주선은 기가차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세상에 이런 뻔뻔한 인간은 정말 처음이다.

이 인간과 같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면서 믿었던 자기 자신이 한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끝내 백신은 완성되지 못했다.

한국에 퍼진 바이러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국을 감염시켰다.

미국은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본국으로 돌아가버렸고, 황주선박사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된 차수철만이 폐허같은 연구소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