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차가운 복도를 그가 지나쳤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 사이로 녹이 낀 철창문을 지나갈 때면, 섬뜩한 눈빛 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본다.
그의 양옆을 감시하며 걷는 교도관 들의 표정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눈빛은 초점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잡아 이끄는 마냥 무작정 걷기만 했다.
-끼이익!
감옥의 끝자락에서 두꺼운 강철문이 열렸을 때, 따가운 태양빛이 그의 눈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그는 두 손이 묶인 팔을 들어 빛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차수철씨! 한마디 하시죠?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이번 재판에서 사형이 확실시 된다고 하던데 두렵지 않습니까?"
벌떼처럼 모여있는 기자 들이 카메라 셔터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그를 괴롭혔지만 묵묵히 버스에 오를 뿐이었다.
다행히 버스 안은 어두컴컴했다.
검은 커텐으로 모든 창문을 막아논 것이다.
차수철은 숨이 막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교도관 들이 억지로 그를 자리에 앉혀도 눈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부우웅!
버스가 기자 들을 뚫고 이동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라왔다.
만약 유리창을 보호하는 철창이 아니었더라면 단박에 깨졌을 것이다.
"아이 씨발.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아저씨 빨리 가요."
맨 앞좌석에 앉은 교도관이 눈쌀을 찌푸리며 기사를 재촉했다.
그는 차수철이 수감된 감옥에서 악질로 전평이 난 주평태라는 중년의 남자였다.
"살인마 차수철의 사지를 도려내라!"
"신성한 법의 심판도 아깝다! 유가족에게 차수철을 넘겨라!"
밖에서 붉은 띠를 둘러맨 한무리의 인파가 버스에 우르르 몰려와 막기 시작했다.
전경 들이 안간힘을 써봐도 이미 이성을 잃은 사람 들은 눈에 핏대를 세우고 몰아붙였다.
"니미..."
결국 주평태가 옆에 앉아있던 죄없는 교도관 멱살을 붙잡았다.
"야! 빨리 저것 들 안 치워?!"
"저, 전경 들로도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이 시발 새끼야! 누군 눈이 없냐?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결국 얼굴이 사색이 된 교도관이 얼른 버스에서 내려서 누군가에게 뛰어갔다.
다른 교도관 들도 괜히 불똥이 튈까봐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돌렸다.
그만큼 주평태의 얼굴은 갓난아기도 울음을 그칠만큼 우락부락했다.
게다가 온갖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이라 왠만한 사람 들은 그를 건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를 애 다루듯이 하는 사람이 딱 한명 있었다.
"여보쇼. 주 간수님."
낮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좌중을 긴장시켰다.
주평태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차수철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그들만 다그친다고 저것 들이 물러 나겄습니까?"
"아가리 닥쳐!"
"아... 씨발..."
"뭐?"
차수철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욕을 내뱉자 주평태가 붉어진 얼굴로 그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섰다.
"너 방금 뭐라 그랬냐?"
"씨발이라 했소."
-퍽!
주평태의 구두 뒷굽이 정확히 복부를 강타하자 차수철이 복부를 붙잡고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씨발? 하! 이 새끼 이거 죽은 목숨이라고 혀를 함부로 돌리네?"
"크큭. 크크큭."
다른 교도관 들은 주평태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차수철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까지 했다.
"야, 이 새꺄! 너 지금 나 비웃냐?"
주평태가 차수철의 멱살을 붙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차수철의 키가 180cm였지만 주평태는 그즘 2m에 육박했다.
게다가 힘도 매우 좋아 주평태가 깍지를 들고 서있어야 할 정도였다.
"네 놈 모가지 나가는 건 네 사정이니까 처신 똑바로 해. 나한테 함부로 개기면 씨발 그때는 법이고 나발이고 네 구둣발로 복부를 갈기갈기 짓겨버릴 거야. 알았어?"
"크크큭! 아이고 무서워라."
차수철이 능글거리면서 비웃자 주평태는 더욱 열이 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나가기 전에 차수철의 표정이 180도 변했다.
그가 4년간 부녀자 200명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인했을 때 바로 그 표정이었다.
제 아무리 주평태라도 이미 제정신이 아닌 놈의 그런 눈빛을 봤을 때는 주춤거리기 마련이다.
"이보쇼. 주씨. 당신 내가 이런 꼴이 되었다고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당신이 애지중지 하는 그 여고생 이미 내 손바닥 안이야. 알아?"
"뭐?"
주평태가 차수철의 멱살을 잡은 손을 스르르 풀었다.
"당신 딸 말이야. 당신 마누라가 도망가고 남은 그 하나밖에 없는 딸. 주희선이..... 아마 걔가 나를 추종하는 무리 들의 제 1 타겟이라지?"
"....."
차수철은 괜한 허풍을 떠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몇몇 정신 나간 인간 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추종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차수철처럼 반사회주의적 성향이 짙을 뿐만 아니라, 과격하고 잔인해서 어떤 짓을 벌일지 몰랐다.
사이버수사대도 은밀히 수사에 나섰지만, 그 중에 해커 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검거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발정난 개처럼 흥분하지말고 얌전히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으쇼, 예?"
"....개새끼."
주평태가 이를 빠드득 갈고 다시 앞자리에 가서 앉자, 차수철이 능글거리면서 제자리에 앉았다.
"정말 좋은 세상이야. 키보드로 몇 자 두드리면 신상정보가 줄줄이 다 새어 나오니 말이야. 뭐 IT산업한답시고 돈벌려는 놈 들 때문에 나같은 놈 들이 여자를 덥치기 쉽지만... 크크큭. "
"...."
차수철의 웃음소리는 거의 악마의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가 탄 버스는 그의 섬뜩한 웃음소리와 동시에 법원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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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