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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72화 (72/262)

< -- 7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그렇게 그 들은 또 다시 이동했다.

하지만 대화는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은 깊어져 갔다.

"답답하네..."

메마른 분위기에 자유의 투덜거림은 오히려 불쾌하게 내려쬐는 자외선이나 다름없었다.

이승철은 묵묵하게 운전대만 잡고 있었고 예선이는 뒷자석에서 바깥만 응시했다.

"바이러스가 예상보다 심각해."

자유가 하도 투덜거려인지 이승철이 딱딱하게 말을 꺼냈다.

"다 들 느꼈겠지만 정말 좀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 들이 벌어지는게 지금의 현실이야."

"응. 그렇기는 하지."

자유가 얼른 맞장구쳤지만 예선이는 그대로였다.

"단지 생존을 위해서 감염자를 죽였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맞아."

"......"

"하지만 그 구분을 확실하게 현실에 맞춰야 해.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감염자 들을 몰살시켜야 한다면 난 반드시 그렇게 할거야. 대신 우리말고 다른 생존자 들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반드시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야."

"너무 편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선이가 날카롭게 말을 잘랐다.

하지만 이승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럼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너 아까부터 손 떨리는 건 어떡할 거야?"

"뭐? 진짜?"

깜짝 놀란 자유가 운전대를 잡은 이승철의 손을 쳐다보았다.

예선이의 말대로 이승철의 손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건..."

이승철은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가 말을 흐렸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그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척, 혼자 센척 하지마. 차라리 네 옆에 앉은 저 멍청이처럼 촐싹거려도 좋으니까 좀 사람답게 감정 표현을 하는게 어때?"

자유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룸미러로 예선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런걸로 꿈쩍할 신예선이 아니다.

아니, 그보나 이승철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컸다.

"그냥 내가...."

이승철은 갑자기 콱 막힌 목구멍에 억지로 침을 삼켜넣었다.

"그냥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라. 나도....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

이승철은 감정 표현이 서툴다.

사실 신예선은 그게 걱정이었다.

인간성도 좋고 순수한데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버릇이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지만 서로 의지할 사람이 적은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신예선의 생각이었다.

"나는 두려워."

신예선은 약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세상이 이렇게 멸망한 것도 두렵고, 감염자 들을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 그런데 더 무서운건 이렇게라도 살아남은 너희 들이 내 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난...."

"....."

이승철이나 자유나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멸망해가는 모습을 그 들은 너무 가까이서 보고있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할 틈조차 없었다.

"난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자유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죽는것보다 더 두려운 건 포기하는 거야. 생각을 해봐. 우린 다른 사람들처럼 감염이 안ㅤㄷㅚㅆ잖아. 분명 이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 다들 서로에게 희망을 주자."

"그래."

- 끄덕끄덕

이승철과 예선이는 약간 풀린 얼굴로 자유의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 들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시 감염자와 마주친 것이다.

이번에는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자유는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젠장. 포기하지 말자고 내 입으로 말했는데 이건...."

"어떡하지?"

"....."

이승철은 혼란스러웠다.

맞서야할지 포기하고 돌아가야할지...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둔탁한 엔진음이 들렸다.

마치 전차가 오는 듯한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군용 트럭이야."

이승철은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뭐지? 어디서 오는 거야?"

"글쎄. 광주에 있는 부대는 31사단밖에 없는데....."

"그때 그 부대?"

"응."

그때 그 부대란 소리에 신예선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유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하지만 군용 트럭이란 소리는 긴장을 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숨자."

일행은 차를 구석에 세워놓고 의자 밑으로 숨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군용 트럭은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젠장. 어떤 미친놈이 저렇게 시끄럽게 해?"

"쉿! 조용!"

자유의 말은 틀린게 아니었다.

전방 300m쯤 떨어진 감염자 들이 이 브레이크 소리를 듣고 요란한 괴성을 내질렀다.

-덜컥!

군용 트럭에서 차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빠르게 들리더니, 뭔가 후다닥거리다가 이내 쇠가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이승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의 바로 옆에는 군용트럭 한대가 세워져 있었고 누군가 옆에 총을 매고 서있었다.

"누구야?"

"....."

예선이가 물었지만 이승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그렇게 낮익지 않았지만 분명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맞아. 그 때 예선이 옆에 서있던 남자야.'

이승철은 담배 한대를 물고 거칠게 총을 조준하는 사내를 응시했다.

마치 이러한 일이 익숙한 듯한 행동이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이승철은 예선이에게 그가 누군지 바로 알려주지는 않았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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