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시간은 자꾸 멈춘듯한 기분인데 엔진음은 더더욱 가까이 들리고 있었다.
이승철과 예선이는 숨소리조차 멈추고 온 신경을 엔진음에 기울였다.
만약 차에 탄 사람이 그때 만났던 군인 들이라면 무조건 피해야한다.
-끼이익
운이없게도 차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멈춘듯 했다.
하지만 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분명히 하나였다.
즉, 한 사람만 차에서 내린 것이다.
"어떡하지?"
예선이가 숨죽인 목소리로 묻자 이승철은 손을 들었다.
예측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대신 조심히 고개만 슬쩍 내밀어 보았다.
"아따... 여기도 전멸이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사투리가 걸죽한 걸 보면 지방에서 올라온 건 분명해 보였다.
이승철은 가슴은 쓸어내리고 예선이에게 입모양으로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두워서 잘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아... 진짜 어쩌지? 광주도 이지경이면 진짜 큰일인데...."
모자를 쓴 남자는 곤란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위험한 사람은 아닌듯 싶었다.
"나가보자."
예선이는 이승철의 옷자락을 붙잡고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주의가 너무 어두워서 상대방이 이들을 발견하지 못한듯 싶었다.
이승철은 손전등을 들어 전방을 비췄다.
"왁! 누, 누구야?"
상대방은 두 팔로 눈을 가리고 허둥지둥거렸다.
이승철보다 키는 좀 컸지만 몸이 얇고 호리호리해 보이는 남자였다.
"우린 생존자에요."
예선이가 앞에 나서서 얼른 신분을 밝히자 남자가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인상은 여전히 찡그리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저기 죄송한데 손전등 좀 어떻게..."
"아, 죄송합니다."
이승철이 손전등을 내리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둘 다 괜찮은 건가요?"
"예. 보시다시피."
"휴. 다행이네요. 저 지금 해남에서 올라오는 길인데 다 전멸 당했더라구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승철은 말 끝을 흐렸다.
어떻게 살아났는지 어떻게 전염을 안 당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러한 이유라면 실상 자신 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자는 별로 게의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저는 사실 서울에서 일을 하는데 이번에 휴직하고 잠시 고향에 내려갔거든요. 아버지가 원양어선 선장이시라 일손도 도울겸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배를 타고 돌아와보니까 난리가 난거에요. 다행히 저에게 식구라고는 아버지뿐이라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고향 사람들은 대부분이 쓰러져 버렸죠."
남자는 씁쓸한 얼굴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뉴스에서는 전남, 광주는 특별재해구역으로 정하고 아예 출입을 막고 있어요.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이미 전염병이 서울까지 올라간 상태래요."
"지, 진짜에요?"
예선이가 깜짝 놀라 묻자 남자가 무척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왜 그러는데?"
"서울에 우리 엄마, 아빠, 동생 들이 있는데...."
예선이는 울먹거리면서 끝내 말 끝을 흐렸다.
이승철은 무슨 말 뜻인지 깨닫고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괜찮을 거야. 아직 뭐가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모르잖아."
"아냐. 광주도 순식간에 이렇게 됐는데...."
"......"
모두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점점 실감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안해요. 저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냥 소문만 그렇게 들은 거라...."
"아니에요. 괜히 제가 주책 맞았네요."
예선이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오신 거에요? 아버진 어떻게 하구요?"
"사실 아버지가 남은 고향사람 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신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시면서.... 저한테도 같이 가자고 하셨지만 제가 안 간다고 했어요."
"왜요?"
이승철이 의아해했지만 남자는 피식 웃었다.
"제가 사실 심하게 낙천적이거든요. 별로 내키지도 않았구요. 어쩌면 자주 바다에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는 모습이 싫었는지도 모르죠."
"그렇군요. 아무튼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다니는 게 어때요?"
"그럴까요? 그러면 저야 고맙죠. 안 그래도 좀 쓸쓸했는데."
예선이가 악수를 청하자 남자 역시 혼쾌히 손을 내밀었다.
"저는 신예선이라고 해요. 나이는 26살이구요. 의사 지망생입니다."
"저는 이승철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예선이랑 동갑이구요. 그냥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요."
이승철과 예선이가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마치자 남자가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구불구불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고, 훤칠한 외모가 눈에 띄었다.
수수하게 생긴 이승철과 다르게 약간 장난끼가 있어보이는 미남형 얼굴이었다.
"정말 이런 인연이 없네요. 저는 여러분과 동갑이구요. 하는 일은 카센터에서 차를 고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우리 편하게 말놔요."
"그래."
아까 쩔쩔매던 이승철과 달리 진자유는 쿨하게 대답했다.
예선이는 묘한 표정으로 이승철과 진자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름이 뭐야?"
이승철이 예선이 시선을 의식했는지 얼른 다른 질문을 하자, 남자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보니 내 이름을 말 안했네. 내 이름은..."
남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진자유야. 아버지께서 자유롭게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지."
============================ 작품 후기 ============================
'
날씨가 미친듯이 덥죠.ㅡㅡ
정말 에어컨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건 뭐...
아무튼 더운 날은 모두가 릴렉스해야 할 듯 싶습니다.
저도 오늘 몇 번 싸움날 거 참고 또 참았습니다.
진짜 날씨도 너무하고 인간 들도 너무하고..ㅠ
더위 이길 수 있도록 우리 힘냅시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