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그로부터 15일 뒤....
컨테이너를 실은 거대한 화물선이 태평양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화물선은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가는 무역선이었지만 하늘에서는 수십대의 헬기 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갑판 위에 서서 담배를 피던 산토스는 하늘을 응시하며 인상을 구겼다.
화물선 바로 상공 위에서 수십대의 헬기 들이 따라붙은 것이다.
그 헬기 들은 30km 뒤에서 따라붙고 있는 태평양함대 엔터프라이즈호 소속이었다.
그는 15년간 이 화물선의 선원이었지만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산토스! 또 일 땡땡이치고 담배 피우고 있나?"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컨테이너 사이를 헤쳐나오며 소리쳤다.
그는 이 화물선의 선장인 리카르도였다.
"거 작작 부려먹으면서 뭐라고 하쇼! 그나저나 이번에는 뭣 때문에 양키 놈들 헬기가 따라 붙는 거요?"
산토스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바다로 내던지면서 투덜거렸다.
"이번에 미국 놈들이 뭔가 일을 꾸미는 모양이야. 브라질 정부 놈들도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낸들 알리가 있나? 우리야 뭐 돈을 몇배로 쥐어줬으니 얼씨구나 하면서 일을 하는 것 뿐이지."
선장은 껄껄 웃으면서 셔츠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선장. 귀신을 속여도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쇼. 이번 항해 때 화물의 선적 무게가 이상하리만큼 가볍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소."
산토스의 눈이 가늘어지자 선장의 표정도 살짝 굳어졌다.
"하긴 내가 자네에게 숨겨서 좋을게 뭐가 있나? 우리가 1, 2년 같이 일한 사이도 아니고...."
"진작 그렇게 나오셔야지."
산토스가 콧방귀를 뀌었지만 선장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뭔데 그렇게 불안해 하는 거요?"
"조용히..."
"....."
선장이 이상하리만큼 평소와 달리 과잉반응을 보이자 산토스가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을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알았수. 적당하게 숨을 곳을 알고 있으니 따라오슈."
산토스가 스치듯 지나치며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선장은 담배를 더 태우다가 아주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햐! 우리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산토스와 선장이 도착한 곳은 컨테이너와 선실 바로 앞에 있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빈 술병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무슨 공간인지 뻔했다.
"젠장. 동료 들하고 일 땡땡이치고 몰래 보드카 마시던 곳이었는데..... 선장한테 이곳을 보여줬으니 난 이미 동료 들한테 죽은 목숨이요."
"흥. 역시 그랬구만."
"그나저나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요?"
"사실 나도 내막을 잘 몰라.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컨테이너 안에는 사람 들이 있다는 거야."
"으엑! 사람 들이라니?!"
산토스가 기겁하자 선장은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
"좀 조용히 해! 미군 놈들이 배 여기저기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단 말이야."
"아이 참... 여긴 그런거 없다니까!"
산토스는 선장을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선장.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는 몰라도 바른대로 불어야할거요. 그게 아니라면 동료 들한테 말해서 이 컨테이너 다 열어버리는 수가 있소!"
"그건 안돼!"
"빌어먹을!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요?! 같이 바다에서 사는 처지에 이래도 되는 거요?"
"나도 좀 봐주게. 선주도 나에게 신신당부하는 것도 모자라 협박까지 했단 말일세."
"협박이라니?"
산토스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선장이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비벼댔다.
"좋아. 내가 사실대로 말한다면 비밀을 지킬 자신이 있나?"
"내가 언제 선장 뒷통수 친적이 있나? 비밀은 반드시 지킬테니 말해보슈."
"좋아. 사실 몇일 전에 선주가 직접 우리집에 찾아왔었네."
"선주가?"
"그래.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서 매우 불안한 눈치더군."
"그래서?"
"좀 잠자코 들어봐. 선주는 나한테 분명히 말했어. 이번 일에 미국이 크게 개입할 거라고 말이야. 입을 잘못 놀리면 그 자리에서 벌집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
"그럼 미국이 이 화물선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요?"
"말했잖나. 컨테이너 안에 사람 들이 있다고. 그 이상은 나도 몰라."
"흐음...."
산토스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선장. 아무래도 우린 더러운 게임에 손을 댄 것 같수."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
"젠장. 이거 큰 일 났군. 이것들이 컨테이너에 사람을 싣고 도대체 중국, 러시아에는 왜 가는 거야?"
"아무튼 우린 아주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 짓고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
"무슨 말인줄 알겠수. 나도 동료 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신경쓸거요."
"그래주면 아주 고맙지."
선장과 산토스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선장의 무전기에서 노이즈가 생겼다.
-선장님. 53km만 더 가면 대한해협이 나타납니다. 미군은 이제 빠지겠답니다.
"그래, 알았다. 선실로 올라간다."
선장은 산토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선실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하지만 그들은 순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것 같았다.
산토스 머리 위로 굵직한 물방울 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
산토스가 손바닥을 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처럼 그렇게 화창했던 날씨가 순식간에 어둠에 휩쌓이더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치직! 젠장. 지금 강력한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이대로는 중국에 도착하지 못해. 한국 광양항에 배를 임시로 돌릴테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선장의 말에 산토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젠장. 더럽게 꼬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