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거대한 대문 앞에 멈춰섰다.
높게 솟은 담장 너머에는 드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그 중앙에 섬처럼 으리으리한 3층 저택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내는 넥타이를 다시 고정시킨 후 헛기침을 했다.
짙게 낀 선글라스때문에 눈을 볼 수는 없지만, 입 주위가 파르르 떠는 것을 봐서는 매우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가 들고있는 007 가방처럼 비밀이 많아 보이는 인간이었다.
- 누구냐?
사내는 움찔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대문 옆에 교묘하게 설치된 CCTV 카메라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제롬을 만나러 왔소."
- 어디서 왔나?"
"CIA요."
- 차는?
"3km 밖에 세워놨소."
사내는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스피커 속 대답은 뜻밖이었다.
- 차종과 번호를 묻는 거다.
사내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재빨리 상황을 먼저 파악하기 시작했다.
- 말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죽여버리겠다.
"알겠소. 차종은 독일 아우디 A8 검은색, 번호는 899 SEM이요."
- 확인했다. 홍채 인식하고 CIA 신분증을 카드 리더기에 삽입해라.
분명 이 저택 안으로 들어와도 좋다는 소리이지만 사내는 망설였다.
마치 거대한 함정을 파놓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 10초 안에 지시대로 따르지 않으면 사살한다.
"알았소."
하지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고민 따위는 필요없었다.
더군다나 스피커 속 목소리는 가차없는 냉혈한이 분명했다.
아무튼 사내가 모든 무인 검문을 마치고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대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꼭 호러 영화에서나 볼법한 그런 장면이 은근히 현실과 겹치자 사내는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날씨는 장마가 한참인 7월 초였다.
-투벅투벅
사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구두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숲 속에 지은 집이라서 그런지 저 담장 너머 나무 들 사이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도 들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저택이었다.
- 띵동
도대체 대문에서는 살벌한 검문을 하면서 어째서 현관문은 간단한 초인종만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긴 그건 집주인 사정이니까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뜻 밖에도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었다.
"국방장관님?"
사내가 놀라서 묻자 머리숱이 없고 안경을 삐뚤하게 쓴 50대 남자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가 한참일세. 그나저나 국장은 오질 않았는가?"
"국장님은 대통령님께서 급히 호출하셨기 때문에 제가 대신 왔습니다."
"그랬군. 자료는?"
"여기..."
사내가 검은 가방을 들어보이자 국방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들어오게."
사내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상상했던 모습과 정 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이곳이 일반 오피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바쁜 표정으로 각자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다들 정신없네. 설마 웨이터가 와인 들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겠지?"
"아니 그게...."
"하긴 나도 처음에 자네와 같은 표정이었네. 뭐 이런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국방장관은 넓직한 응접실로 사내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기다란 탁자위에 온갖 서류뭉치와 노트북 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연방정부 핵심 인물 들이 죄다 모여있었다.
"다 들 바쁘니까 환영이 없더라도 섭섭해하지 말게."
"아니, 별로...."
"그럼 저기에 앉게나."
국방장관은 사내를 아무 자리에 앉히고 단상 위로 섰다.
"자자 주목!"
국방장관이 박수를 치며 소리치자 모두가 그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다 들 수고가 많소. 다름이 아니라 CIA에서 시크릿-X 프로젝트 실행 계획안을 들고 왔으니까 주목해주시오. 일어나게."
사내는 쭈뼛거리면서 조심히 일어섰다.
"저는 CIA 요원인 도슨이라고 합니다. 국장님은 대통령님과 중요한 회의가 있기 때문에 이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자, 너무 서두른 감이 있지만 브리핑 좀 해주게."
"예."
도슨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와서 DVD를 꺼내 단상 앞 노트북에 삽입했다.
그러자 거대한 스크린에서 프레젠테이션이 펼쳐졌다.
"저희 CIA가 확보한 실험 대상 들은 미국과 우방국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펼쳤던 자 들입니다. 특히 미국 및 우방국과 접전을 펼치고 있는 적대국의 첩보원 들을 중점적으로 검거해 실험실로 이송했습니다. 분포도를 살펴보면 중국 43%, 러시아 21%, 중동 30%, 기타 6%입니다."
"그 들이 알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국토안보부(DHS)의 톰리즈 부장이 날카롭게 질문하자 도슨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들고 일어나겠죠. 하지만 저희 최근 정보에 따르면 중국은 당장 쏘아올릴 수 있는 핵미사일을 25기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같은 시기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럼 CIA에서는 중국이 먼저 선제 도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모두가 웅성거리자 국방장관이 탁자를 탕탕쳤다.
"어차피 다들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 않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 프로젝트를 빨리 실행해야 합니다. 계속하게."
주위가 조용해지자 도슨은 계속 브리핑을 시작했다.
"시크릿-X 바이러스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중국과 중동, 러시아로 실험 대상 들을 도돌려 보낼 겁니다."
"예? 다시 본국으로 보낸다구요?"
"그렇습니다."
도슨이 아무렇지도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톰부장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다가 우리 프로젝트가 발각되면 어떡합니까? 실험대상이 첩보원 들이라면서요?"
"그래서요."
"뭐라구요?"
톰부장이 눈썹을 치켜뜨자 국방장관이 도슨을 쳐다보았다.
"도슨 요원!"
"예. 장관님."
"첩보원 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어딘가?"
"그야.... 소속된 곳입니다."
국방장관은 거 보라는 듯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첩보원 들이 국가간 기밀을 동네방네 떠들면서 다니는 것 보았소?"
"....."
톰부장이 살짝 분하다는 얼굴로 자리에 앉자 도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크릿-X 바이러스가 체내에 완전히 퍼지는 것까지 15일, 전염을 일으킬 정도로 변이하는데 4일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내에 저 들을 본국으로 다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그럼 바이러스가 전염을 일으키는 타이밍에 퍼지게 되겠지요."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에 어떻게 보내실 겁니까? 분명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될겁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미국과 가깝고 중국과 무역이 가능한 국가를 골라야겠군요."
미국 국무부 스테이츠장관이 입을 열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요?"
"무역선을 이용하는 겁니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무역선 말입니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톰부장이 묻자 스테이츠 장관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국과 남미 간의 무역이 활발한 무역 회사를 통해 감염자를 실은 컨테이너를 넘깁니다. 그럼 그 컨테이너를 남미 소속의 무역선에 실어 적국으로 다시 보내는 거지요."
"하지만 요즘 중국의 모든 무역항 경계가 살벌하다고 들었소."
"제가 말씀드리는 컨테이너 수는 시크릿-X 감염자 1명당 하나씩 입니다. 나머지는 온갖 잡동사니 물건으로 채우는 거지요. 아무리 경계가 심하다고 하지만 컨테이너 전체를 다 뒤지겠습니까?"
"그거 좋은 방법이군."
국방장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가 긍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우리는 태평양 함대 연락해서 훈련을 핑계로 무역선을 보호하겠소. 만일 하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요."
"그거 좋겠군요. 어차피 중국 역시 태평양을 심심치않게 넘보니까 말입니다. 좋은 구실이 될겁니다."
모두가 그 방법에 찬성하자 국방장관은 도슨을 쳐다보았다.
"자넨 실험이 언제쯤 성공할 건지 계속 연락해주게. 나 역시 실험실로 가고 싶지만 워낙 성가신 놈들이 이 나라를 들쑤시려고 난리를 치니까 일어설 수가 없군."
"알겠습니다."
도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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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라스트데드 외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많이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