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53화 (53/262)

< -- 53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으아앙...."

아이 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아이 들의 눈물에 맞춰 한방울 두방울 흘러내리는 빗방울.

-쏴아아

빗방울은 굵은 빗줄기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점점 멀어져가는 감염자들의 비명 소리에 맞춰 승철이는 모든 무기를 버렸다.

그리고 아무말 말없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승철아?"

자유가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앞머리에 가려진 승철이의 눈은 보이질 않았지만, 짙게 드리워진 검은색 어둠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

한참을 걷던 승철이가 지혁이 옆에서 멈칫거렸다.

새빨간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지혁이....

비록 오타쿠에 건담에 미쳐있던 철없는 동생이었지만, 소중한 생존자이자 의지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혁이는 승철이의 소중한 기억을 무참히 짓밟으며 더 이상 움직여 주질 않았다.

승철이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이, 이 자식이?"

살기

(殺氣).

진정한 살기는 온갖 무기를 들고 있어도 나타나질 않는다.

살기는 눈으로 보이는 무기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증오로 만들어진 진정한 살인병기이다.

원재경은 다급하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하필 그때 탄창을 갈아야 했다.

"이런 씨발!"

이승철이 더욱 다가오자 원재경은 다급한 나머지 손에서 총을 놓쳐버렸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차갑게 얼어붙은 눈을 똑똑히 보고 온 몸이 굳어져버렸다.

"이, 이봐..."

"죽어줘야겠어. 내 마음이 그렇게 하래."

"이, 이봐. 정신차려..."

한걸음,

또 두걸음.

원재경이 뒷걸음질 칠 때마다 이승철은 더욱 더 다가왔다.

"우, 우리 이러지 말자구. 우리 같은 생존자잖아?"

원재경은 비굴하게 두 손을 빌었지만 그럴수록 이승철의 화를 돋굴 뿐이었다.

"죽어!"

-터억!

"크헉!"

이승철은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원재경의 목을 잡았다.

"엄살 떨지마. 아직 시작도 안했어."

"이, 이봐. 이승철이. 자네 왜 이러나?"

원재경은 벌벌 떨면서 이승철을 힐끗거렸다.

"잘 모르나 본데..."

이승철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바로 시크릿-X 감염자야."

"뭐, 뭐?"

모두가 깜짝 놀라 이승철을 쳐다보았다.

분명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분명....

"이봐, 도대체 무슨 소리를...흐헉!"

원재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그 눈.

시뻘겋게 물든 그 두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크크큭... 이승철. 이 자식 아주 대단한 놈이야. 날 그렇게 억누르고 감염자가 아닌척 하다니..."

분명 그 목소리는 이승철의 입에서 튀어 나왔지만 이승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네 놈이 이승철의 분노를 아주 잘 자극했더군. 아주 잘했어."

마치 기계음이 섞인 듯한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원재경은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우린 말이야. 인간의 어둠 속에서 씨앗으로 숨어 지냈어. 음지를 지향하면서 양지를 지향하는 인간 들과 조화를 이루었지. 그런데 인간 들은 스스로 음지로 빠져들더군. 그렇게 목매었던 양지를 버리고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말이죠?"

사태를 파악한 예선이가 얼른 묻자, 이승철이 원재경의 목을 그대로 잡은체 천천히 뒤를 돌았다.

"양지를 찾기 위해서 온갖 욕심과 증오, 미움이라는 음지의 양식을 스스로 재배한 거야. 크크큭. 인간은 역시 어리석은 종족이라지. 양지는 항상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이야."

"그럼 당신 들은 인간의 어둠을 먹고 자랐다는 소리에요?"

"그래. 그건 저기 저년도 마찬가지이지. 같은 인간 들에게 온갖 실험을 당하면서도 인간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면서 살았어.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알아주지 못했지. 결국 설화 저년도 몸 속에서 자라는 바이러스를 그대로 방치할 정도로 마음 속에 증오와 원망이 가득해져갔어. 스스로 인간을 죽이고 싶어했지."

이승철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우린 처음에 미생물에 불과했어. 인간 들이 우주에서 우리를 채취해 올 때만 하더라도 자각 능력조차 없는 박테리아였지. 하지만 우리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진화했어. 인간의 음기를 먹으면서 말이야. 의외로 인간 들은 같은 종족에 대한 미움이 아주 잘 자리잡고 있더군. 그 미움은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었어. 우리는 인간의 체내에서 나오는 그 엿같은 분비액을 본능적으로 빨아먹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자각 능력이 생기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진화할 수 있었지."

"그렇다면 당신 들은 우주 생명체가 맞다는 말씀이신가요?"

"크크큭. 결국 그런 셈이야. 만약 이승철이 증오와 원망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완벽한 숙주가 되어 인간의 몸을 지배할 수 있지."

"...."

자유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예선이를 쳐다보았다.

"저, 저말이 사실일까?"

"지금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승철이를 정상으로 돌려야 해."

"......"

자유는 승철이와 설화를 번갈아 쳐다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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