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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41화 (41/262)

< -- 4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이 기분인가...?'

사실 설화는 이 성당에 발을 디딛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기분탓으로 돌렸지만 이렇게 감염자 들과 같이 얼굴을 맞대고 서있으니 확실히 뭔가 알것만 같았다.

'피가 흐르는 것 같아. 기분 좋아....'

설화의 공격 본능은 거센 파도처럼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렇다고 이성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은 더욱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 언니..."

불안해진 예선이가 설화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괜찮아.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예?"

예선이가 어리둥절해하자 설화는 씨익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얘네들 내 꼬봉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

설화가 거침없이 성당을 나서자, 나머지 감염자 들이 줄을 맞춰서 따르기 시작했다.

그바람에 자유가 의자에 떨어지듯 주저앉아버렸다.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

자유는 당황해했지만 예선이는 이 모든게 그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맞아. 설화 언니가 이 감염자 들을 이끌고 있는 거야. 그때 그 감염자처럼... 하지만 정신은 왜 멀쩡하지?'

예선이는 아직도 어리바리하고 있는 자유를 끌고 나왔다.

"으, 으악! 예선이 누나! 이, 이게 다 뭐, 뭐에요?"

밖에 서있던 지혁이가 까무라칠정도로 놀라면서 물었다.

하긴 설화가 나오자마자 감염자 들이 줄줄이 따라서 나왔으니 안 놀라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말하자면 좀 길어. 넌 그보다 승효랑 세희를 데리고 자유 뒤에 서있어."

"아, 아 네."

지혁이는 잔뜩 겁에 질린 승효와 세희를 꽉 안은체 얼른 자유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확인한 예선이는 슬쩍 설화 옆에 다가섰다.

"언니, 감염자 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어요?"

"으음. 잘 모르겠어. 그냥 피가 계속 몸 속을 빠르게 도는 느낌만 들어."

"피가 도는 느낌이라구요?"

"응. 시크릿-X 감염자는 피가 몸속에서 흐르지 않아. 만약 피부가 뚫리면 피가 물처럼 줄줄 흘러버리지."

"그럼 언니 몸 안에 있는 피가 이 감염자 들과 반응을 한다는 거에요."

"응. 지금 내가 느끼기에는 그래."

"그럼 아까 그 남자는 왜 피가 없었을까요?"

예선이는 냉동차에서 해부했던 남자를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 남자의 몸 속에서는 피라곤 거의 찾아볼 수도 없었고 피부도 마른 종이처럼 푸석푸석 갈라지기까지 했다.

이미 몸 속에 있는 수분이 증발해버렸다는 뜻이다.

"글쎄. 내가 그 놈 모가지를 잘라버렸을 때 피를 다 쏟아냈을 수도 있고....죽었을 때 몸 속에 있던 피가 자연적으로 말라 버렸을 수도 있고..."

"그렇군요...."

예선이는 시크릿-X 바이러스를 알 것 같으면서도 왠지 더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생각같아서는 설화를 천천히 지켜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언니. 감염자 들을 데리고 승철이를 찾으실 거에요?"

"응. 그래야지. 나만 믿어."

설화가 눈을 찡긋하자 자유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물론 뒷통수가 '빠악' 소리가 날 정도로 또 맞았지만....

"좋아. 너 네들 중에서 승철이랑 자유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놈 있으면 손 들어봐."

"....."

설화가 당당하게 물어봤지만 감염자 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모습에 자유가 쓰윽 다가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누나. 얘네 누나 말 듣는 거 맞아요?"

"시, 시끄러! 야, 아무도 없어?"

설화가 다시 소리쳤지만 감염자 들은 반응이 없었다.

"쳇! 쓸데없는 놈 들이구만."

"언니. 그러지말고 일단 이 주위를 뒤져봐요."

"그래. 그러자. 야, 너네 지금부터 개인당 반경 10m씩 떨어져서 온 주위를 뒤진다. 알긋나!"

-끄덕끄덕

감염자 들은 붉게 충혈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좋아."

설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무척 좋아하고 있었지만 자유와 지혁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무서운 여자야."

"마, 맞아요, 형."

같은 시각.

원재경이 운전하고 있는 지프는 육군훈련소 외곽을 돌고 있었다.

왠만하면 생존자 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너네가 다른 시크릿-X 바이러스 감염자 시체를 가지고 있다, 이거냐?"

"예. 설화 그 년 말고도 한 놈이 더 있었어요."

성식이는 원재경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승철이와 설화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말까지 해버렸는데, 그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었다.

"승철이가 시크릿-X 감염자랑 관계를 맺었다고?"

"예. 그 놈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거에요. 제가 보기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년을 감싸고 돌았거든요. 하긴 그 년이 좀 반반하게 생기긴 했었어요."

"....."

별 미친 놈을 다 보겠네...

사실 원재경은 성식이의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었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3살 먹은 꼬마도 안 믿을 헛소리를 곧이 곧대로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다만 좀 사실이다 싶은 건 걸러내면서 들을 뿐이다.

'뭐 어찌되었든 승철이 그 놈이 그 감염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거군. 좀 어렵겠어...'

원재경의 머릿속엔 온통 설화를 생포할 계획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우선 설화를 생포하려면 주위에 있는 놈 들부터 처리해야 했지만 이승철도 만만치 않았다.

'뭐, 이 자식한테 떠 맡길 방법을 찾아야겠군.'

원재경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성식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승철이 그 놈 어디있는지 몰라?"

"아마 본부대에 갔을 거에요."

"본부대?"

"예. 거기 훈련소장실에 시크릿-X 감염자에 대한 정보가 있거든요."

-끼이이익!

군용 지프가 엄청난 굉음을 내지르며 멈춰서자 성식이가 앞 유리창에 처참하게 머리를 처박았다.

"으윽! 왜, 왜 그래요?"

"방금 훈련소장실이라고 그랬나?"

아까와 달리 원재경이 정색을 하며 묻자 성식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예.... 그런데요?"

-퍼억!

"크헉!"

원재경이 성식이 머리를 잡더니 사정없이 옆 유리창에 박아버렸다.

"왜, 왜 그러세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사실대로 말 안하면 네 놈 머리통을 날려 버릴 거야."

"흑흑. 몰라요. 저도 노아에서 들은 사실이라구요."

"노아?"

"예.... 그러니까 제발 진정 좀 하고 내 말 좀 들어요."

성식이가 불쌍하게 사정을 하자 원재경이 정장 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좋아. 만약 허튼 소리하면 그땐 정말 죽여버릴 줄 알아."

"아, 알았어요."

성식이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사실 원재경하고 지프를 같이 올라탄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이미 알아챘지만 때는 늦어버렸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거 애들도 날 버렸을 거고 승철이 그 새끼도 나만큼 벼르고 있을 거야. 어차피 그 놈들은 적이야. 그리고 이 노땅이 예선이는

살려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때 예선이한테 잘 설명하고 내 편으로 만들면 돼.'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성식이가 입을 여는 동안 원재경은 한동안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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