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그런데 저것 들이 도대체 훈련소는 왜 가는 거지?"
아까 생존자 들과 마주쳤을 때부터 원재경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매우 거슬렸다.
더군다나 그 들과 대치했을 때 김성식이란 청년과 또 한명의 사내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다만 겉으로 내색을 안했던 것 뿐이었다.
사실 운좋게도 광주에 시크릿-X 감염자를 찾으러 갔을 때 미리 파악한 정보였다.
게다가 하늘이 도왔는지 그들을 고속도로 한복판, 그것도 원재경의 부대 근처에서 마주쳐버렸다.
"설마 무기를 더 가져가려고 그러는 건가?"
그건 얼추 맞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뿐이다.
"젠장. 하필이면 왜 육군훈련소야? 철판으로 입구가 아예 봉쇄가 되어 있을텐데."
연무대 입구는 강철로 아예 봉쇄가 되어 있었고 몇 사람만이 아는 비밀 통로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 들이 연무대에 간다고 하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원재경의 기억대로라면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김성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얼굴만 똑똑히 기억했던 나머지 한명도 보이질 않았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얼굴인데도 나이 때문인지 가물가물했다.
"어쨌든 뭔가가 찝찝해."
원재경은 조심스럽게 미행하면서도 주위를 세심하게 살폈다.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만약 저들이 자신을 유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다른 놈 들이 매복을 하고 있더라던지, 요즘 심심치않게 S.B.I.C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 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 들에게서 별로 이상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끼이익!
생존자 들이 연무대 입구에 줄줄이 내려서 문 앞에 몰려 들었다.
"저것 들이 어쩔려고 저러지?"
원재경은 멀찌감치 차를 세워고 고개만 쓰윽 내밀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뭔가 실망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돌아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입구 앞에서 그대로 서있을 뿐이었다.
"뭐야..."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머리를 북실북실하게 볶은 남자가 갑자기 입구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뭐, 뭐야! 저것 들!"
원재경은 자신이 지금 미행중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만약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더라면 100% 들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봉쇄했던 육군훈련소 입구가 한번에 뚫려 버리는 걸 보니 너무나 황당했다.
게다가 전혀 힘을 쓰지않고 무슨 동네 철수네집 놀러가듯 들어가버리다니....
"가만... 분명 저 철판을 뜯어내고 가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건데....?"
원재경은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아까 김성식하고 한 놈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먼저 여기로 와서 저 철판을 뜯었다는 건가?"
그제서야 원재경은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일행이 거의 사라지자 조용히 차를 출발시켜서 육군훈련소 입구 앞에 세웠다.
"역시 강제로 뜯어낸 흔적이 있군."
원재경은 문 옆에 세워진 철판을 유심히 살피다가 문득 바닥에 이상한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뭐지...? 피인가?"
원재경의 눈에는 아직 마르지않은 붉은색 액체가 불규칙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분명 그것은 사람의 피였는데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니 밖으로 띄엄띄엄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뭔가 충돌이 있었나 보군."
원재경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빼고 조심스럽게 그 자국을 따라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핏자국은 허름하게 쓰러져있는 상가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원재경은 문 손잡이를 잡았다.
-끼이익!
오래된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원재경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슬며시 안을 살폈다.
하지만 부서진 집기와 어지럽게 널부러진 박스 들이 먼지에 수북히 쌓여있을 뿐이었다.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들리자 원재경을 총을 겨누고 사방을 주시했다.
먼지와 뒤엉킨 핏자국이 더욱 선명해진걸 보면 누군가 이곳에 있는게 분명했다.
"누, 누구....야?"
탁 마른 목소리가 들리자 원재경은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다 떨어져 나간 선반 아래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원재경은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가 총을 겨누었다.
"콜록콜록! 살려주세요..."
"....."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청년이 벌벌 떨면서 원재경을 쳐다보았다.
"혹시...당신이 김성식입니까?"
"예? 어떻게 제 이름을...."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 한동안 말이 없다가 원재경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나해서 물었는데 의외로 그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아, 저는 노아에서 급파한 서울지부 김성천이라고 합니다. 당신 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원재경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슬며시 김성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김성식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않은 표정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날렸다.
"저, 정말인가요?"
"제가 생존자 들끼리 사기를 쳐서 뭐하겠습니까? 남부지역이 워커 들에게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급하게 내려온겁니다."
"그런데 저희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아, 고속도로에서 우연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 일행 중 몇 명이 육군훈련소에 있다더군요. 당신 들을 구하는데 도와달라고해서 왔습니다."
"그랬군요...."
의외로 김성식은 더이상 의심을 하지않고 왼쪽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왼쪽 다리는 제대로 지혈을 하지 않아 많은 피를 흘린 상태였다.
"그보다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왼쪽 발에 감각이 없어요."
원재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능숙하게 지혈했다.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니 총알이 뼈를 정확히 관통했는데, 이 지경이 되었다면 다리를 잘라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 김성식에게 원하는 걸 충분히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ㅤㄷㅚㅆ습니까?"
김성식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승철 그 놈 때문이에요."
"이승철? 아, 당신과 이곳에 온 사람 말입니까?"
"예. 그 자식이 쓸데없이 감염자 들을 감싸는 바람에..."
"감염자 들이라뇨?"
원재경이 놀라서 묻자 김성식은 얼른 입을 열었다.
"훈련소 성당에 50명 정도 감염자 들이 있더군요. 군종신부랑 함께요."
"....."
원재경은 일이 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을 지겹도록 따라다니던 그 신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자신의 실험대상이었던 50명의 감염자를 아직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감염자 들하고 같이 있다면 위험할 거 아닙니까?"
"그게...."
김성식은 그동안 있었던 일 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럼 이승철...아니, 이승철씨는 아직 안에 있겠군요."
"그럴거에요. 만나면 그땐 정말 죽여버릴거에요."
"....."
이승철...이승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원재경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한번 마주쳤을 뿐이지만 원재경 머릿속이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맞아. 그때 나한테 장병 위로금을 가로챘다고 뭐라고 한 녀석이 분명해.'
그가 S.B.I.C에서 건낸 명단을 확인 했을 때 분명 이승철은 존재했지만 사진 속 모습이 너무 달라 못 알아본 것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왠지 이름도 익숙하지가 않아서 설마설마 했는데 방금 모든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금 이승철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럼 이 놈은 이승철과 원수지간이었군. 이걸 어떻게 잘 이용한다면....'
원재경의 목표는 시크릿-X 감염자를 생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까 그 수수하게 생긴 계집년이 더욱 끌린단 말이야. 요즘 몸을 안푼지도 꽤 됐고...'
원재경의 비상한 잔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짓 정색을 하였다.
"그럼 당신은 이제 쏠모가 없겠군."
"예? 그, 그게 무슨."
김성식이 펄쩍 뛰었지만 원재경은 싸늘한 표정으로 권총을 꺼내 다리를 겨냥했다.
"이미 넌 반병신이나 다름없잖아. 그만 죽어줘야겠어."
"이, 이봐요! 당신 우릴 도와주려고 왔다면서요."
"아, 그렇긴 했지. 하지만 노아에서 한가지 안 알려줬나본데 만약 생존하는데 걸리적거리는 놈이 있으면 가차없이 죽이라고 했거든."
"마, 말도안돼."
"유감이지만 노아의 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군."
"아니야! 내가 노아와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봤다고! 그런 소리는 전혀 없었어. 생존자 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말이야!"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네."
"제발...."
김성식은 필사적으로 일어나 원재경의 다리를 붙잡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반 병신인 네가 뭘할 수 있는데?"
"다 할수 있어요. 살려만 주신다면...."
김성식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애걸복걸했지만 사실 원재경은 그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이미 다리가 병신인 네 놈을 죽여봤자 뭐하겠어? 괜히 총알만 아깝지. 흐흐. 넌 나 대신 피를 좀 묻혀야겠어.'
"흐음.... 그래? 좋아. 그럼 한번 기회를 주지."
"가, 감사합니다!"
원재경은 인심 쓰는척 말을 하자 김성식은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너, 이승철을 죽이고 싶다고 그랬지?"
"예? 아, 예."
"사실 난 노아에서 시크릿-X 감염자를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어. 하지만 네 친구 들은 감염자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더군."
"...그래서요?"
"아무래도 감염자를 생포하려면 네 친구 들하고 부득이하게 부딪혀야 할 거 같아. 괜찮겠나?"
"....."
김성식은 잠시 갈등하다가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연하지요. 대신 한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뭔가?"
"신예선. 그 여자는 반드시 살려주세요. 그럼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죽일게요."
원재경의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속으로는 너무나 일이 쉽게 풀린 것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 멍청한 놈은 자신의 수고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찍었던 여자까지 살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뭐, 그건 네 놈 하는 걸 봐서 결정하지. 하지만 그렇게 다리가 불편해서 움직일 수 있겠나?"
"예! 저 자신있어요!"
김성식은 다리의 고통을 애써 무시하고 선반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일어섰다.
그러자 원재경이 바닥에서 각목을 주워 김성식에게 내밀었다.
"좋아. 그럼 이 막대기를 지팡이로 쓰라고. 총은 여기있네."
원재경이 총을 내밀자 김성식은 그것을 받았다.
그 순간, 원재경의 정강이가 김성식의 왼쪽다리를 향해 날라갔다.
-퍽!
"으악!"
김성식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원재경은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아주 느글느글한 표정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가진 총에는 단 3발의 총알밖에 없어. 네 놈 다리를 고치고 싶다면 허튼짓을 안 하는게 좋을거야."
"흑흑! 그럴게요...약속해요."
"좋아."
원재경은 김성식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상가를 빠져나갔다.
"시간이 없으니까 차를 타고 이동하지."
원재경은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연무대 담벽에 찰싹 달라붙어 주위를 살폈다.
"여기쯤 될텐데..."
원재경이 벽돌 하나 하나를 힘을 줘서 누르자 그 중 하나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좋아. 이 벽을 걷어내."
"네...."
원재경이 뒤로 물러서면서 김성식한테 손짓하자 그가 부들부들 떨면서 벽돌 하나하나를 걷어냈다.
그렇게 20분쯤 지나자 놀랍게도 사람이 한명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벽이 훤하게 뚫렸고 그 앞에 군용 지프 한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