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8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원재경.
그가 탄 메르세데스는 사실 서울을 향하던 중이었다.
만약 새파랗게 젊은 놈들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대전에 거의 다 왔겠지만, 이미 약속 시간보다 1시간 가량 지체된 상태였다.
"제길. 시크릿-X 감염자를 어디서 찾으라는 거야?"
원재경은 상부에서 시크릿-X 감염자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흥. S.B.I.C든 뭐든 이 몸을 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친다 이거야."
원재경은 축 늘어진 턱을 쓰다듬으면서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직전까지 그는 단단한 몸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살이 불었다.
그것은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아온 결과였다.
바이러스가 세상에 급속도로 퍼지자 비정하게도 온 재산을 털어서 S.B.I.C에 바치고 백신제조법을 얻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그 더러운 성격이 엉뚱한 곳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직위를 이용해 처음 제작된 백신을 감염된 장병 50명을 선발해 약을 투여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약은 꽤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했고, 그의 시커먼 속도 모르고 일에 동조한 부하 들은 하나 둘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되었다.
처음에 그의 거짓 모습에 속았다가 본심을 그때서야 알아차린 탓이었다.
원재경은 사람이 넘치는 자신의 부대에서 임상실험을 실시한 후, 이 약을 단계적으로 비싼값에 팔려는 속셈이었다.
"젠장. 그년도 목을 따버렸어야 했는데..."
비서였던 정도연 중위는 멍청하리만큼 그를 잘 따랐었지만 뒤가 캥기니 견딜수가 없었다.
만약 전직 의사라면서 귀찮으리만큼 따라 붙었던 군종 신부만 아니었더라면 진작 제거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종 신부와 정중위가 이상하리만큼 붙어다니는 바람에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원재경이 생각하기에는 그 신부와 정중위간에 뭔가 비밀이 있는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 늙은이와 젊은 여자가 붙어 다닐 일이 없겠지."
원재경은 아주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내가 아쉬울게 없지. 이미 품에 안아봤으니까 말이야. 흐흐흐."
원재경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정중위에게 모텔까지 부축을 받은 뒤 그녀를 유도해 덥쳐버렸다.
그 일도 정중위가 한동안 힘들어했지만 그게 술김에 실수를 했다고 대충 얼버부리니 쉽게 일은 마무리 되었다.
고맙게도 정중위는 자신의 상관이라는 이유로 모든것을 용서했다.
심지어 백신을 만드느라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판단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는 그런 멍청한 여자 들이 정말 많단 말이야."
원재경에게는 더 이상 이상과 도덕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음을 당한다.'라는 비틀어진 신념만 가득할 뿐이다.
- RRRR.....
원재경이 논산 IC에 거의 근접했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통신망이 끊겼어도 위성은 살아있기 때문에 S.B.I.C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서버를 이용해 인터넷 통화가 가능한 것이다.
"예. 원재경이올시다."
- 제임스요."
전화 건너편에서는 약간 서툴지만 능숙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차린 원재경은 차를 갓길에 멈추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오랜만이군요, 제임스."
- 그렇군. 성과는 있었소?"
"아쉽지만 아직...."
- 변명....을 하는군.
"이봐요. 한국에 아무리 시크릿-X 감염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 똑같아 보이는 감염자 들 사이에서 어떻게 찾는단 말입니까?"
- 그들은 다르오. 자각 능력이 있고 몸에서 티타늄보다 강한 강철이 뼈를 덥고 있단 말이요."
"그렇긴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그들을 찾으려면 나를 도와줄 인력이 많이 필요해요."
- 당신 혼자서 찾는 게 우리가 요구하는 임무요.
"어쨌든 난 다시 서울로 가고있소. 약속대로 S.B.I.C로 갈 수 있는 헬기를 준비시켜 주시오."
- 시크릿-X 감염자를 단 한명이라도 찾으라고 했을텐데?
상대방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원재경은 얼굴까지 시뻘게지며 주먹으로 핸들을 있는 힘껏 처버렸다.
"내 말 잘 들어! 이 코쟁이 새끼야! 내가 제작한 백신만 하더라도 1만개가 넘어. 그걸 감염자들에게 투여하고 내 스스로 생존자 집단을 만든다 하더라도
너희보다 규모가 배로 커지는 건 시간 문제야! 내 말 알아들어?
- 진정하시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소.
상대방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원재경은 기가 찬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뭐, 시간? 흥. 지금 그 말은 나보고 찾을때까지 본사에 얼씬도 하지 말란 소리가 아닌가?
- 장군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검증하라고 하셨소. 설마 장군께서 그깟 백신을 제조했다고 당신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도 한때 장군이었어, 이 새끼야! 지금 누구 앞에서 장군이래?
- 말이 통하지 않는군. 뭐, 좋소. 어차피 우린 거래에서 시작된 관계였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알아뒀으면 좋겠소. 난 평소에도 당신을 장군께
아주 좋은쪽으로 설명해 드리고 있소. 하지만 오늘같이 사탕 든 어린 애들마냥 떼를 쓰겠다면 내 생각은 분명히 달라지겠지.
"....."
원재경은 짙게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방은 사람을 요리하는데 있어서 타고난 기질이 있었다.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된다는 뜻이다.
"조, 좋소. 내가 시크릿-X 감염자를 찾아내면 서울에 당장 헬기를 띄어주시오."
- 그런건 걱정하지 마시오. 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 들을 증오하는 사람이니까. 단, 조건이 있소.
"무슨...."
- 반드시 살아있는 상태로 데려와야 합니다.
"알겠소.
원재경은 탁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속에서 열 불이 끓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칼자루는 S.B.I.C에서 쥐고있다.
- 아, 전화를 끊기 전에 한가지 좋은 정보가 있으니 당신한테 제공하겠소.
"그게 뭡니까?
- 우리 정보부에서 FBI 기밀 문서를 뒤지던 중 우주 박테리아 실험 죄수 명단을 확보했소.
"그래서?"
- 명단 뿐만이 아니라 그 들의 사진도 몇 개 찾아냈소. 내가 이 사진을 이메일로 전송하면 그걸 토대로 찾길 바라오.
"알겠소.
- 그럼 행운을 빌겠소.
전화가 끊기고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멀티 메일 5건이 수신되었다.
원재경은 사진을 살펴보았지만, 사진만으로 이 땅에서 시크릿-X 감염자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바로 뒤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원재경이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와 마주쳤던 생존자 들이었다.
"저것 들이 도대체 어딜가려고...."
이제 막 원재경이 탄 세단을 지나치려는 찰나였다.
그는 어떤 여자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설마...."
그 들은 논산 IC로 차를 몰았고 원재경은 급히 휴대폰 사진첩을 뒤져 아까 보내준 명단을 확인하였다.
"틀림없어. 그 여자야...."
원재경은 속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좋아. 그럼 몰래 따라가서 쓰잘데기없는 놈 들은 죽이고, 아까 그 예쁘장하게 생긴 년은 내가 가져야지. 그리고 그 감염된
여자를 데리고 이 나라를 뜨는 거야. 흐흐흐."
원재경은 다시 시동을 걸고 생존자 들이 향했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한편 일행이 탄 차는 논산 IC를 벗어나 육군훈련소로 향하고 있었다.
냉동차 운전석에는 자유가, 조수석에는 예선이와 설화가 각각 타고 있었다.
예선이는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설화는 창문을 응시한체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나, 왜 그래요?"
"아까 그 새끼랑 눈이 마주쳤어."
"예? 그 새끼라뇨?"
"아, 아까 그 돼지 새끼 있잖아. 늙어가지고....."
"아, 그 원 뭐시기라는 인간이요?"
"그래."
설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유는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인간이었어요. 그 거들먹거리는 꼬라지 하고는...아, 그것보다 어떻게 그 자랑 눈이 마주쳤다는 거에요?"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더라고. 그러다가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는데.... 뭐랄까? 아주 기분 나쁘게 웃었다고 해야할까?"
"에이,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표정까지 볼 수 있겠어요? 그냥 기분탓이겠죠."
자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설화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분명해. 마치 뭔가를 발견한듯한 얼굴이었다니까...."
"흐음.... 그래요? 예선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예선이는 정면만 응시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설화는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들어 예선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머릿속에 승철이 그 놈 생각으로 꽉꽉 차있구만. 이러니 성식이 그 자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지."
"에이, 누나..."
자유가 얼른 눈치를 주었지만 설화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이, 짝사랑에 빠진 소녀!"
설화가 예선이 팔을 잡고 사정없이 흔들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 도착했어요?"
"도착은 무슨....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예? 아, 아니에요...그냥...."
예선이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을 얼버부렸다.
"뭘 어렵게 생각해? 네가 좋아하는 승철이는 쉽게 죽을 놈이 아니니까 걱정도 하지마. 내가 장담할게."
설화는 호탕하게 등까지 두드리면서 위로랍시고 안심시켰지만 예선이는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자유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누나는 분위기 기가 막히게 잘 띄우네요."
"내가 뭐, 임마!"
"됐어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설화가 자유에게 달려들려고하자 예선이가 얼른 팔을 들어 막았다.
"그만해요. 자유 너도 그만하고."
"쳇!"
설화가 고개를 홱 돌려 창문을 응시하자 예선이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자유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까 나한테 하려고 했던 말이 뭐야?"
"아, 다름이 아니라 아까 논산 IC에서 그 아저씨랑 누나랑 눈이 마주쳤거든."
"정말?"
"응. 뭘 하고 있었는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대."
"휴대폰을? 그 남자도 위성으로 통신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랬을지도... 뭐, S....B 뭐신가 하는 단체도 심상치 않은 걸 보면 휴대폰 쯤이야 쉽게 가질 수 있겠지."
"그렇구나... 아무튼 그 남자 조심해야 돼. 풍기는 인상 자체부터가 위험해 보였으니까."
"어찌되었건 미행이 붙는지 안 붙는지 확인하고 가야겠어."
자유가 고개를 백미러 쪽으로 쓰윽 내밀었지만 뒤에는 도로 위에 엉켜진 차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들은 원재경이 자신 들의 목적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