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35화 (35/262)

< -- 35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특히 나와 그의 인연은 거의 악연이었다.

아까 말했듯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그런 악연인 것이다.

나와 그의 악연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이제 막 중사를 달았을 때였다.

그당시 육본(육군본부)에서는 가정이 어려운 장병을 대상으로 위로금과 함께 9박10일이라는 엄청난 포상휴가를

내걸었는데, 마침 우리 소대에 그런 부하가 한명 있었다.

그래서 그 부하의 충분한 의견을 들은후 중대장님께 보고를 하였고, 대대장님 역시 혼쾌히 추천서를 써주셨다.

결과는 매우 순조로웠다.

그 부하는 100명의 장병 중 한명으로 뽑혔고 육본에서 300만원 상당의 위로금과 9박10일의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아주 우연찮게 부사관 동기를 만나게 되었는데, 동기의 부하 역시 위로금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별 생각없이 3백만원을 받았다고 했는데 동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500만원의 상금이라고 말해주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 즉시 전화를 걸어 육본에 확인을 하였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너무나 당혹스럽고 한편으로 뭔가 이상하다 싶어 대대장님을 찾아가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이중사. 이 일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 상부에서도 이에 대해 별 말이 없어."

"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500만원 중에 200만원이 도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나는 굳이 액수를 따지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었다.

육군의 수뇌부인 육본에서 나온 위로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날 분노케 하였다.

하지만 대대장은 오히려 나를 이상한 놈으로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 들은 아무런 말이 없는데 자네 혼자 왜 그러나? 자네가 추천했다고 지금 위세라도 떨겠다는 거야, 뭐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정당하게 받아야 할 돈이 중간에서 사라졌다구요!"

"지금 항명 하는 거야, 뭐야?! 상부에서 그렇게 명령을 내리면 곧이 곧대로 따를 것이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그런게 아닙니다, 대대장님! 우리 대대 부하가...."

"닥쳐! 일개 중사 따위가 어디서 따지고 들어?! 너 이새끼 군복 벗고 싶어?!"

그 일은 삽시간 부대 내에 소문으로 퍼져버렸고 같은 간부 들을 하루 아침만에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 직속상관인 소대장, 중대장 역시 나를 슬금슬금 피하면서 '되도록'이면 전근을 가라는식으로 강요까지 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무엇을 잘못했나싶어 다른 부대 동기 들과 선배님 들에게 전화를 해봤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똑같았다.

"뭐하러 그런 일에 끼어들어? 그냥 가만히 있으면 위에서 알아줄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대대장님께 용서를 빌고 없었던 일로 해."

사실 내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나는 누구에게 인정받기위해 그런 일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냥 할 일이 없어서 돈벌기 위해 군에 입대한 것도 아니었다.

군대는 군대답게라는 내 사명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군복을 벗을 각오를 하고 육본에 진정서를 써서 제출하였다.

솔직히 누가 그 돈을 빼돌린지 그 때까지 알 수 없었지만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대대장이 날 호출하더니 내가 대대장실 문을 열자마자 사정없이 내 뺨을 후려쳤다.

-짜악!

"크흑..대, 대대장님?"

"이 개새꺄! 너 때문에 우리 부대가 쑥대밭이 되게 생겼어. 네가 육본에 까발렸냐?"

"예?"

"누가 위로금 가로챘다고 까발린 게 너냐고?"

".....맞습니다. 하지만 누가 가로챘다고 한 게 아니라 사라졌다고....."

-짜악! 짜악!

대대장은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정신없이 내 두뺨을 후려갈기더니 군화발로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차버렸다.

-퍼억!

"으윽!"

"일어서 이 새끼야! 네가 지금 육군 중령 말이 우습게 들렸다 이거지?"

"그, 그런게 아닙니다...."

"그런게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면 누가 네 마음대로 육본에 진정서 써 넣으래?"

"그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는 바닥에 정면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누군가 내 허리에 망치로 내려친 느낌이었다.

"크헉!"

"잘못? 뭐가 잘못됐는데, 이 새끼야!"

-퍼억!

나는 그때 개 패듯 맞는 게 어떤건지 뼈저리게 몸소 체험을 했다.

만약 연대장이 때마침 호출을 안했다면 그 날 나는 허리나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너, 연대장님께 무릎 꿇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 만일 하나 또 꼴통 짓거리하면 네 그 잘난 대갈통에 총알 박힐줄 알아! 알았어?!"

"......"

대대장은 지프에 올라타는 나를 끝까지 협박하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온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눈 앞에 흐릿한 걸보니 내가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단지 서러워서 그런건 아니었다.

그 날 나는 세상이 이토록 무서운 곳인지를 처음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더러운 곳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이 제대로 몸에 와 닿았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더 어이없고 더러운 일은 겪은건 연대장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였다.

그때 내가 소속된 연대 연대장(대령)인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그는 땅딸막한 키에 몸이 다부졌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 살 들이 군복 여기저기에 튀어나와 있었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카락과 짙은 눈썹은 다부져 보였지만, 쫙 찢어진 눈과 두툼한 입술은 한눈에 봐도 사리사욕에 눈이 먼 작자같았다.

그는 뭔가 번쩍거리는 골프채를 휘두르면서 초록색 카펫위로 열심히 골프공을 굴리고 있었다.

"자네가 이승철 중사인가?"

"....예."

"육본에 진정서를 써 넣었다고?"

"예."

"뭐 때문에?"

그걸 몰라서 묻지는 않은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은 걸 봐서는 윗 대가리들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야, 안 그런가?"

연대장의 눈과 몸은 여전히 골프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이미 나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굳이 그런 건 아닙니다. 제 부하가 받아야 할 정당한 것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거? 뭐가 정당하단 말인가?"

"육본에서는 분명히 생활이 어려운 장병을 선별해서 위로금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제 부하는 그걸 모두 받지 못했습니다."

"장병 들은 휴가만 잘 줘도 군 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연대장님. 이건 단순히 휴가, 돈 문제가 아닌 우리 군인 들의 참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육본에 진정서를 써 넣은겁니다."

-탁!

연대장은 골프공을 신경질적으로 쳐버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참다운 모습? 누가 자네한테 그딴걸 가르쳤나? 대대장이? 아니면 중대장이?"

나보다 키가 훨씬 작은 연대장이었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확실히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확실히 계급 사회는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군복을 벗은 몸이나 다름없었다.

대대장의 협박은 이미 내 기억 속에 사라져버렸다.

"조국이란 그 두 글자가 저한테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뿐입니다."

조국이란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을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게 치고 올라왔지만 연대장의 표정은 냉랭하기만 했다.

"이 친구 아주 꿈나라에서 살다 온 친구구만."

연대장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골프를 하기 시작했다.

"하긴 자네같이 짬밥도 안되고 계급도 낮은 친구 들이 꼭 그런 착각을 하더군."

"......"

"여긴 군대야.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명령이 있으면 복종만 있는 곳이라는 뜻이야."

"......"

그가 스윙을 할 때마다 흔들리는 기름진 얼굴이 번들거렸다.

왠지 그가 모든 걸 독식하는 듯 보였다.

"더 쉽게 설명해줄까? 이번에 장군으로 승격하려면 정규 코스말고도 그 외의 코스도 잘 챙겨야 해. 즉, 이 골프공처럼 꼭 정해진 라인이 아니라 약간의

변수를 줘가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거지."

연대장이 골프채로 친 공이 빠르게 회전을 하면서 사이드쪽으로 쭈욱 빠지더니, 갑자기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홀에 정확히 들어갔다.

아무래도 1, 2년 골프를 친 실력이 아닌 것 같았다.

"세상일은 변수가 가득해. 정면만 보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낙오될 뿐이지. 게다가 군대는 상관이 잘 되야 자신도 잘 되는 법이야. 위에서 끌어줘야

아래에서도 따라 오는건 절대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이치이지. 자네는 부사관이니까 최고 원사 아니면 준위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구만."

"....."

"진급은 나 혼자만으로 하는 게 아닐세."

"저는 그렇게 진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연대장의 골프채가 또 다시 멈췄다.

"대대장이 나한테 거짓 보고를 했군. 말을 잘 알아듣는 친구라고 했는데 정 딴판이니까 말이야."

마치 그 말은 나에게 '당장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고 없었던 일로 해라.'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내 이성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로지 군대에 대한 증오와'惡'만이 마음 속 깊이 박혀 있었다.

"저한테 원하시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소신을 꺾을 순 없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께서도 바로 이럴 때 소신을 꺾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라를 지킬 수 있으셨던 겁니다. 게다가 저는 충무공의 후손입니다. 저는 제 핏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자랑스러운 조상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습니다."

"아, 자네가 충무공의 후손이었군."

갑자기 연대장의 표정이 섬뜩하게 변했다.

"난 원균의 후손인데 말이야....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을까?"

연대장은 나에게 다시 다가와 골프채를 내 목에 가져다 대었다.

"핏줄이 어쩌고 저쩌고 따지기 전에 네 놈의 처신을 잘 보고 떠드는 게 어떨까?"

"...."

"네 놈은 상대를 너무 잘못 봤어. 육본에는 내가 부대 공금을 횡령해도 눈 감아줄 친구 들이 아주 많다는 뜻이지. 육본이 괜히 자네의 진정서를 숨기지 않고

다시 돌려보낸 이유를 이제 알겠나?"

"...예?"

순간 뭔가 심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라 다를까 연대장은 자신의 서랍장에서 한장의 종이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 종이는 진정서였고 아주 낮 익은 글자 들이 빼곡히 쓰여있었다.

"다시 한번 이딴 짓거리를 한다면..."

연대장은 골프채를 한번 크게 등 뒤로 빼더니 내 목을 정확히 겨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골프채는 내 목에서 불과 1cm 정도를 남기고 멈춰섰다.

"......"

"내 골프 경력이 10년이라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자네 목은 부러졌을 거야."

"....."

"나가."

난 그 길로 연대장실에서 빠져나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군복을 벗어버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에요."

한참 상념에 젖어 있던 나를 정중위가 깨웠다.

"나 참 싱겁기는... 소장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말해줄 것 같이 하더니만...."

"......"

정중위는 아직 순수하고 군대의 때를 아직 입지 않은 군인이었다.

굳이 내가 그녀에게 시궁창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없었다.

"아니에요. 내가 뭘 잘못 본 것 같아요."

"뭐야... 바보아냐?"

"그런가보죠."

내가 씨익 웃자 정중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다시 보안키 앞에섰다.

"네가 생각하는 동안 나도 좀 생각을 해봤는데 보안키 문 비밀번호를 생각해냈어."

"예? 정말요?"

"그래. 내가 너무 신부님이 주신 힌트에 집착해서 가까이 있는 걸 제대로 못봤던 거야."

"그게 뭔데요?"

정중위는 대답없이 씨익 웃더니 이내 빠르게 키패드를 눌렀다.

- 보안이 해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철문은 양 옆으로 자동으로 열렸고 정중위는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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