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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34화 (34/262)

< -- 3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휴우...."

의자에 몸을 기대고 두 눈을 감자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중위는 나와 반대로 분위기가 심각했다.

그녀는 매우 굳어진 표정으로 23연대 CP(23연대 본부대) 건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에..... 소장님이 들어 가신 건가요?"

-끄덕끄덕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은 필연이든 악연이든 인연에 얽히게 되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죽을때까지 잊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다.

"소장님께서는 어떤 분이셨나요?"

내 질문에 정중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소장님? 좀 별난 분이셨어. 오죽했으면 의학 상식이라곤 파스 붙이는 게 전부셨던 분이 백신을 만들겠다고 하셨으니까."

"으음. 그건 좀 무모했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 분은 결국 해내셨어. 대단한 분이셨지. 자신의 인맥을 모두 동원해서 바이오센터 연구원 들을 움직이게 한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

"그랬군요..."

정중위는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만약 정부에서 제대로 지원을 해줬다면 이 끔찍한 사태를 막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기 바빴지. 결국 소장님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재산을 다 털어서 백신을 만드셨지만 이미 그 때는 늦고 말았어."

정중위 말대로 이 바이러스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만약 그 날이 오기 전에 이 백신이 세상에 퍼졌다면 인류가 멸망직전에 갈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백신 샘플만 구할수 있다면 지금 해부중인 시크릿-X 감염자에게 실험을 해볼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중요한 단서를 얻는다면 이 바이러스를 정말 100% 해결할지도 모르지만 당장 답답한 게 남아 있었다.

"흐음... 그 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고 설령 만난다고해도 뭘 어떡해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투덜거리자 정중위는 피식 웃었다.

"어쩌면 이것도 소장님 방식일지도 모르겠네. 모르면 무조건 뛰어 들어라."

"크큭. 그러겠네요."

"그럼 움직이자고."

"예."

차에서 내린 우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23연대는 3개의 대대 건물과, 연대 CP, 취사장이 나뉘어져 있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대대 건물 창문과 입구문은 두꺼운 철판으로 단단히 봉쇄되어 있었다.

"대대 건물은 백신을 투여하지않은 감염자 들이 모여있고, CP 건물에는 백신을 투여한 100명의 감염자 들과 소장님이 있어."

"그럼 백신 맞은 감염자 들을 직접 확인하려고 스스로 안으로 들어 가신 건가요?"

"응. 결국 그런 셈이야."

"그렇다면 혹시 살아계실수도....."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한 말이었지만 정중위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글쎄...."

괜히 그런 말을 한건가?

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감염자 들에게 백신을 투여한 상태라면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

"소장님께서 연락을 하셨으면 하셨지 안하실 분은 아니야. 게다가 나랑 신부님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까지 하셨는 걸...."

"...."

우리는 왠지 아담한 23연대 CP 건물 앞에섰다.

가끔씩 쿵쿵거리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자세히 듣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정중위가 내 어깨를 툭쳤다.

"무섭냐?"

"아니거든요."

정중위는 CP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CP는 대대 건물과 다르게 출입이 가능할 수 있도록 최첨단 보안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1인치 LCD 패널까지 부착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건 정중위가 지문 인식패드에 엄지 손가락을 올리자 숫자패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밀번호는 알아요?"

"당연하지. 이것도 금고와 똑같아."

정중위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보안키 숫자를 눌렀다.

-인증에 실패하셨습니다.

"어?"

정중위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보안키를 눌렀지만 계속 인증 실패만 떴다.

"뭐야? 왜 이래? 왜 이러지?"

정중위가 정신없이 숫자패드를 눌렀지만 돌아오는 건 '인증 실패'와 '3분후 다시 시도하세요.'라는 메시지 뿐이었다.

"차근차근 천천히 눌러봐요."

"맞단 말이야! 2..1...5..6..7..3.."

-인증에 실패하셨습니다.

-쾅!

화가 난 정중위가 주먹으로 철문을 거칠게 쳐버렸다.

아까 금고문이 한번에 열린 것과 달리 본부대 철문은 쉽사리 열리지가 않았다.

어쩐지 너무 일이 쉽게 풀린다고 했다.

"이럴리가 없어. 나와 신부님이 문을 닫을 때 분명 이 비밀번호로 설정했었다고!"

"제가 한번 해볼게요."

내가 나서서 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혹시나해서 숫자를 반대로 입력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안되네요."

"젠장...."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정중위는 철문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아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잡고 뜯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신부님이 알려주신게 다란 말이야...."

"....."

이거 위로를 해야할지....

그때,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장이 CP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서 안쪽 문을 잠궜다면 굳이 보안키를 왜 설치했을까?

사실 아까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는데 그게 뭔질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앞 뒤가 서서히 안 맞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안키를 설치한 이유가 뭐에요?"

"뭐긴 뭐야.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한거지."

"그럼 자물쇠를 설치해도 되잖아요."

"우린 소장님한테 그렇게 부탁 받은것 뿐이야."

"부탁이요?"

"그래. 소장님은 자물쇠보다 보안키가 더 튼튼하다고 하셨어. 신부님도 별 이견이 없으셨고..."

정중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그냥 그랬을리가 없었다.

처음에 정중위 말을 곧이 곧대로 들었지만, 훈련소장과의 일 들이 너무 지나치게 감성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소장님은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까지 어떤 분이셨나요?"

"엥? 왜 자꾸 그런걸 물어봐?"

정중위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 따졌지만 내 표정이 너무 완강했는지 움찔거렸다.

"군인 들이야 다 똑같지 뭐. 훈련소장님도 그냥 평범한 분이셨어."

"그래요....."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훈련소장은 바이러스가 퍼지자마자 너무 갑작스럽게 백신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물론 군인은 사명감이 그 누구보다 출중하기 때문에 그런 일에 스스로 뛰어들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일을 굳이 뛰어들어서 스스로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쪽 계통에 전문적인 사람이 그랬다면 별 의심없이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난 아주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다.

"혹시 훈련소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원재경 소장님. 왜?"

"...!!"

왠지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만약 내 기억에 맞다면...

"혹시 사진 있어요?"

"너 좀 이상하다? 왜 자꾸 훈련소장님을 의심하는건데?"

"제 기억이 맞다면 소장님은 6년 전 현역 시절 때 연대장을 지내셨던 분과 성함이 똑같아요."

"그럼 상관이었단 말이야?"

"일단 이름만 들었을 때 그래요."

"그럼 이걸 봐바."

정중위는 자신의 야상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건 훈련소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연무대 소식'이었다.

나는 그것을 펼쳐보았다.

"이럴수가...."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연무대 소식지 맨 앞장에는 훈련소장 인사말이 실려있었는데 사진 속의 인물은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왜, 왜 그래?"

정중위가 벌떡 일어서서 나와 연무대 소식지를 번갈아 쳐다봤지만 나는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원재경.

분명 그는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위험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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