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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32화 (32/262)

< -- 3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그렇게 쪼개지만 말고 힌트라도 알려줘봐."

정중위가 보챘지만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왠지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단 말이지, 흐흐...

"힌트는 방금 정중위님이 알려 주셨잖아요."

"내가? 내가 뭘?"

"에이, 잘 생각해봐요."

정중위를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동자를 굴렸지만 이내 울상을 지었다.

"나 머리 나쁘단 말이야."

"에잇, 그럼 인심썼다. 힌트는 계급에 있어요."

"계급이라니 도대체 뭐야?"

"아이참 생각을 잘 해봐요."

"우리 이럴 시간 없잖아. 빨리 알려줘."

정중위가 짐짓 정색을 했지만 그게 나한테 통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럼 몰라도 되요. 나만 알아도 되니까."

"야!"

"아~ 난 훈련소장님이 주신 힌트를 가지고 신부님이 알려준 사람 들을 만나러 갈까나?"

"와, 너 진자 나쁘다!"

"하하. 알았어요. 알려줄게요. 우선 '늘 앞서가는 자'는 이 금고를 아는 사람. 즉, 신부님과 정중위님을 말하는 거에요."

"그게 왜 나와 신부님이야?"

"아이참, 잘 생각해봐요. 늘 앞서간다는 뜻은 시크릿-X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에요.

지금같은 시기에 시크릿-X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바이러스 해결법을 찾을테니까요.

아까 정중위님 추리가 맞긴한데 소장님께서는 내가 올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신 것 뿐이에요.

즉, 신부님과 정중위님이 이곳을 찾아와주길 바라셨던거죠."

"흐음.... 좀 일리가 있다."

정중위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막대기만 보라는 뜻은 뭘까?"

"누나가 아까 '무슨 일병, 이등병도 아니고'라 했을 때 번뜩 떠오르는 건데요...

혹시 훈련소 훈련병 들 아직도 주차별로 주기하나요?"

"응. 당연하지."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육군훈련소 훈련병 들은 총 5주의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훈련병 수만 하더라도 1만 5천명이 넘기 때문에 모든 훈련 교관과 조교가 훈련병 들의 훈련 일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군복에 명찰을 붙이고 '▤'이런 모양의 칸을 그려서 훈련 한주가 끝나면 매직펜으로 한칸을 채우는 것이다.

뭐, 쉽게 말해서 다른 훈련교관이 어떤 훈련병을 봤을때, '아, 저 놈은 3주차니까 사격훈련까지 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랄까?

더 쉽게 말하면 '아 저거 좀 훈련 짬이 되는구나.'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

정중위가 나를 재촉했다.

"막대기만 보라는 뜻은 훈련병 들의 훈련 일수를 보라는 뜻인데, 왜 그것을 봐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정중위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씨익 웃었다.

"난 알 것 같은데?"

"예? 그게 뭔데요?"

내가 되묻자 정중위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알아맞춰봐. 하지만 난 힌트 같은 건 안준다."

"......"

무서운 여자다.

좀 왈가닥이라 덤벙거릴 줄만 알았는데 내것을 역 이용해 먹다니...

으음, 앞으로 경계해야겠군!

아무튼 머리를 좀 굴려봐야겠다.

막대기는 내 말대로 훈련주기를 뜻하는 것이니까 그것에 관련된 걸 찾아야하는데....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뭉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그것을 뒤지다가 중요한 보안 문서에 깨알같이 적힌 메모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쉽게도 거기에는 시크릿-X에 관련된 글은 아니었지만, 훈련병들의 훈련스케줄을 적어놓은 듯 했다.

그런데 이 문서는 보급물자에 관한 것인데 왜 훈련병 들의 훈련 스케줄이 적어있을까?

"설마..."

순간, 내 머릿속에 또 다른 생각이 번뜩였다.

"뭔지 알 것 같네요."

"뭐, 뭐? 벌써?"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내가 알아맞추자 정중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도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긴가민가하지만 당당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정중위라면 내 덤덤한 반응에 속아서 스스로 정답을 알려줄테니까.

"그게 뭔데?"

"훈련소장님은 그 명찰에 뭔가 중요한 단서를 남기셨어요."

"그, 그 이유가 뭔데?"

크큭, 아무렇지 않은척하면서 당황해 하기는...

그렇다면 내 예상이 맞나보군.

"보통 연대에 투입되는 훈련병 들은 그즘 같은 시기에 훈련을 받아요. 그러니까 명찰에 새겨진 훈련 칸수를 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죠. 그대신 훈련 소장님은

23연대에 감염자 들을 몰아넣기 전에 분명 그 명찰에 무언가 메모를 했을거에요. 그러니, '막대기를 보라.'가 아니라, '막대기만 보라.'라는 글을 남기셨죠. 솔직히

본부대에 오면서 그 많은 감염자 들 중에 신부님이 말씀하신 사람 들을 어떻게 찾나 싶었는데.... 여기 훈련소장님께서 관리하신 문서 들을 보니 잘 알것 같아요."

"문서라니?"

정중위는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자 나는 서류 한장을 집어들어 내밀었다.

"소장님께서는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어요. 이렇게 중요한 보안 문서에 조차 전혀 내용과 상관없는 메모를 하신 것을 보면 이건 거의 습관이나 다름없죠."

"맞아...."

그제서야 정중위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장님께서는 회의 때 수첩과 볼펜을 안 가지고 오는 간부 들이 있으면 심하게 꾸중을 하셨어. 사람 머리는 한계가 있으니까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기록이 없으면 죽는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그건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정중위도 같은 생각 아니었어요?"

"맞아. 하지만 난 명찰이니까 무슨 메모라도 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지, 훈련소장님의 평소 버릇을 생각하진 않았거든. 내가 전속 비서인데 말이야....."

정중위는 어깨까지 추욱 늘어뜨리면서 자책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소장님께서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하시진 않을 거에요."

난 집무실 책상 한켠에 올려진 액자를 정중위에게 내밀었다.

액자 속 사진에는 늠름한 소장님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영관(소령~대령급) 들이 기립해 있었지만, 정작 소장님 옆에 서있는 사람은 정중위 뿐이었다.

"봐요. 소장님은 당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으시다구요."

"...그럴까?"

"그럼요."

정중위 표정이 한결 풀어지자 내 마음도 편해졌다.

이제는 누굴 찾아야하는지 알았으니 23연대에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럼 뜸 들이지 말고 출발하죠.

"그래."

나와 정중위는 소장님의 다이어리를 챙긴 후 소장실 밖으로 나섰다.

잠깐 시계를 살펴보니 5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슬슬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감싸기 시작했다.

대략 한 두시간 후면 어둠이 이 세상에 깔릴 것이다.

"빨리 가야겠어요."

"응."

우리가 중앙계단으로 내려가려는 찰나였다.

-쿠르륵!

언제 모여들었는지 놈 들이 본부대 1층에 가득 차있었다.

만약 계단 중앙 모퉁이를 돌았다면 정면으로 마주 쳤을 것이다.

다행히 놈 들은 우리 발 아래에 있었다.

"어, 어떡하지?"

정중위가 조심스럽게 묻자 난 고개를 흔들어 돌아가자고 했다.

정중위 역시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어디서 저렇게 모여든 거야?"

"모르겠어요. 일단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할텐데."

"어떻게 빠져나갈건데? 1층은 놈 들의 소굴이라구"

"그럼 2층에서 탈출해야죠."

"뭐?"

정중위가 채근했지만 난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2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은 중앙계단 뿐이었고 결국 창문을 통해서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뭔가가 내 눈에 띄었다.

"방법을 찾았어요. 하지만 위험을 감수해야만 해요."

"무슨 위험?"

"로프 훈련은 받아봤죠?"

내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자 정중위 역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차, 차라리 저걸로 놈 들을 밀어 버리는 게 어때?"

"지금 농담하는 거죠?"

우리가 바라보는 곳에는 '소.화.전'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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