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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29화 (29/262)

< -- 2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내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고 생각했는대도 정신은 오히려 멀쩡했다.

그런데 누군가 분명히 피를 흘렸다.

뭔가....뭔가 이상했다.

"흐흑...젠장....."

성식이가 왼쪽 허벅지를 붙잡고 쓰러져있었다.

하지만 내 두 눈을 잡아 끄는 건 성식이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어떤 여자였다.

그녀는 척 보아도 여군 장교였고 군복 왼쪽 가슴에 붙은 명찰에는 '정도연'이라고 써있었다.

"이게 무슨...."

본명이 정도연인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있는 신부를 붙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성식이는 총알이 박힌 다리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성당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를 붙잡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어떻게든 그대 들을 살리려고 했는데...."

신부님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숨소리가 너무 거칠었다.

난 그가 이 세상과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않았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제발....죽지마세요..."

"자매여. 난 이미..... 사명을 다하지 못한 몸입니다...."

신부님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여군을 붙잡았다.

"하지만......나 대신 하느님의 뜻을 이어갈 형제를 발견했습니다....."

신부님이 서서히 나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 여자 역시 나를 쳐다보았다.

"신부님. 저 남자는 누구죠?"

여군이 황급히 물었지만 신부님의 얼굴은 고통으로 더욱 일그러졌다.

그의 복부에서 새빨간 피가 더욱 진하게 흘러나왔다.

"오바드야의 환시.....하바쿡의 예언자....프투엘의 아들 요엘.....그 들을 잊지 마십시오."

"신부님...."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분이 선택하신 사람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말이 끝으로 신부님은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숨을 쉬지도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와 정도연....

그러니까 그 여군과 신부님 사무실에 서로 마주앉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내 귀에 붙은 이어폰도 어깨에 붙은 카메라도 모두 떼어내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그 여군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오늘만큼은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마치 10년간 일어날 일 들을 오늘 다 겪은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이제는 좀 쉬고 싶었다.

"신부님...누가 죽였어?"

"....."

순간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입은 어떻게든 열어야 했다.

오해가 없어야 했다....

"저와 같은 생존자요...."

"내 총에 맞은 놈 말하는 거야? 너한테 총을 겨눈 놈?"

"예."

"만약 신부님 부탁이 아니었다면 넌 진작 죽었을 거야."

"......"

그녀의 표정은 냉랭했다.

이해했다.

나 역시 구차하게 변명따위 늘어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신부님이 널 뭘 보고 믿는다는 건지 모르겠지만.....어찌되었건 너가 신부님 마지막 부탁...그러니까 유언을 따라줬으면 해."

"그게 무슨 말이죠?"

정중위(계급이 중위였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문을 응시했다.

빌어먹게도 오후의 해는 보란듯이 열정적으로 타들어갔다.

"신부님은 항상 하느님을 자신을 선택하지 않으셨다고 했어.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선택해서 이곳에 데리고 온다고 하셨지. 그게 바로 하느님의 인도라고

하면서 말이야."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알아듣게 직접적으로 설명했으면 좋겠다.

"이해가 안가지? 나 역시 그 당시에는 신부님 말이 무슨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오늘에서야 알 것 같아."

정중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신부님 말씀대로 하느님이 널 이곳으로 인도했겠지. 일단 난 그렇게 생각하련다."

"....."

모든게 자기 멋대로다.

저런 부류는 머릿속에서 결정이나면 그대로 움직이는 행동파인데 주로 직업 군인 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되던 간에 명령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그런걸 다 무시해 버리는 사람 들이다.

나 역시 전직 부사관 출신이기에 저런 성격을 너무나 잘 파악할 수 있다.

"당신은 신부님과 무슨 관계입니까?"

"내 종교가 천주교라서 친해진 것 뿐이야."

"단지 그 이유때문에 친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럼 뭣 때문에 친한 것 같은데?"

정중위는 날카롭게 반문했고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생각해보니 신부님은 사람을 감싸 안으려는 경향이 짙으셨다.

"천주교란 종교를 신부님때문에 선택 하신 거 아닙니까?"

내 대답에 정중위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빙고.

"당신이 어쨌던 간에 잘난체 하지 마십시오. 누가 누굴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습니까?"

"뭐?"

"당신만 신부님하고 특별한게 아닙니다. 비록 오늘 신부님을 짧게 만났어도 저 역시 특별합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신부님이 그렇게 되신 건 사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어떤 미친놈을 여기까지 오도록 성당문을 열어논게 화근이었죠. 그래서 당신이 절 죽여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또는 억지로 용서한다고해서 그게 쿨한게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짓밟고 반대로 행동하는 거니까요."

"....."

"마음이 안 움직인다고 머리로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한번쯤은 본능대로 행동하세요. 난 당신 손에 충분히 죽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젠장 또 울리고 말았군....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 됐어."

정중위는 눈물을 닦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시간이 없어. 미안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시간도 설명할 시간도 부족해. 일단 날 따라와."

"어딜가는 겁니까?"

"신부님이 잊지마라고 한 사람 들을 만나러."

"예?"

하지만 정중위 힘이 너무 좋은 나머지 하염없이 끌려가기만 했다.

그렇게 성당 밖으로 나온 우리는 군용 지프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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