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대장! 예선아! 애들이야! 애들이 살아있어!"
성식이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예선이는 여전히 멍하니 먼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예선아..."
성식이가 예선이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나 때문이야...."
생각보다 예선이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아주 심한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눈물이 계속 흘러도 닦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식이는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예선아. 승철이가 지금 왔데."
"....."
"너, 승철이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네 앞에 와있는데 안 나가 볼거야?"
"승...철이...?"
"그래."
순간 예선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갑자기 아파트 옥상 끝으로 달려가 상체를 숙였다.
"예선아! 위험해!"
갑작스런 예선이의 행동에 성식이는 깜짝놀라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승철이 지금 어디있어? 자유는?"
이제서야 예선이의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성식이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서 지금 싸우고 있어. 아무래도 둘이서 저길 돌파하려고 하나봐."
"우리도 어서 도와야 해."
"예선아, 같이가!"
예선이가 옥상문을 향해 뛰어들자 성식이가 급하게 무기를 챙겼다.
"지혁아! 넌 여기서 애들을 지켜줘."
"예? 아, 예. 잘 다녀오세요...."
지혁이는 급하게 지혈한 왼쪽팔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푸각!
-크아아악!
누나의 실력은 거의 상상을 추월했다.
중국에서는 첩보원을 키울 때 온갖 무술을 다 가르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보다.
정말 지금 상황만 아니라면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누나는 대검 하나로 놈 들을 한번에 쓰러트렸다.
사실, 인간의 뼈 중 뇌를 지키는 머리 부분이 가장 딱딱한데도 누나는 수박 자르듯 놈 들의 이마를 갈랐다.
"헉헉! 젠장. 수가 너무 많아."
"조금만 참아. 성식이랑 애들이 도우러 올거야."
나랑 자유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떻게든 놈 들을 쓰러트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물론 총을 쓸 수도 있었지만 누나가 맞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전면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승철아! 자유야!"
그때, 아파트 입구 불이 켜지더니 성식이와 예선이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왜 둘 뿐이지?"
자유는 반가움과 황당함이 뒤섞인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지원군이 오는 건 좋았는데 수가 너무 적어 실망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을 가릴 때가 되지 못했다.
"승철아! 너 도대체 어디서..."
"이야기는 나중에!"
예선이가 성식이 뒤에서 소리쳤지만 놈 들이 더욱 거세게 달려들었기 때문에 정신을 팔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성식이도 소총에 대검을 꽂아 놈 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수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해서 지금 상황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놈 들은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젠장. 안되겠다. 어쩔 수 없이 그걸 쓸 수 밖에...."
"예? 그걸 쓰다니요?"
내 질문에 답할 겨를도 없었는지 설화 누나는 적당한 장소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선 오른손으로 왼팔을 움켜쥐는가 싶더니 갑자기 핏대를 세우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설화 누나는 아까 그 정장 입은 놈과 비슷한 부류였던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누나의 팔꿈치 부분부터 왼팔이 사라지고 거기에 족히 1m는 되 보이는 듯한 날카로운 칼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잊었냐? 나도 시크릿-X 감염자야."
누나가 씨익 웃으면서 놈 들 사이로 뛰어들더니, 칼로 변한 왼팔을 붙잡고 마치 투푸환을 하듯 크게 휘둘렀다.
-크아아아!
누나가 그것을 한번 크게 돌 때마다 놈 들의 머리가 행가레 하듯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뭘 멍때리고 있어! 빨랑 죽여!"
"네, 네!"
우리가 하나를 죽일 때 누나는 거의 열을 죽이고 있었다.
확실히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놈 들은 빠르게 그 수가 줄어들었고 마지막 한 놈이 남았을 때 누나는 미련없이 대검으로 놈의 몸을 두동강 내버렸다.
"끝났네...."
온 몸을 감싸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자 나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게다가 우연인지 비까지 그치고 아침 햇빛이 서서리 동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우욱!"
갑자기 자유가 오바이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몰랐는데 우리 아지트는 온통 놈 들의 것들로 널부러져 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그쳐 서서히 역한 냄새가 우리의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
우리는 그 처참한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평온했던 곳이 하루아침에 생지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다 들 일단 들어가자. 여기 있다가는 전염병이라도 옮겠어."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설화 누나는 우리를 다독거리면서 일으켜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성식이가 나한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었지만 갑자기 눈 앞에 빛이 반짝이면서 지면에 곤두박질쳤다.
"이 개새끼야."
성식이는 내가 일어설 여유도 주지않고 그대로 나를 깔고 앉아 멱살을 붙잡았다.
"너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ㅤㄷㅚㅆ는 줄 알아? 이 꼬라지를 보고 네가 할 말이라도 있어?"
-퍼억!
또 다시 성식이의 거친 주먹이 내 왼뺨을 후려쳤다.
하지만 난 제대로 대항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성식이 말대로 이 모든 사태는 내가 만든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둬!"
예선이가 얼른 달려와 성식이를 뜯어말리려고 했지만 여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넌 뭐해! 빨리와서 말려!"
결국 예선이가 닥달하자 자유는 거의 반쪽이 된 얼굴로 우리를 뜯어말렸다.
"야, 이 병신 들아. 이런 곳에서 그렇게 뒹굴고 싶냐? 싸워도 안에 들어가서 싸워~"
그러나 자유는 이미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말릴 수 없었다.
결국 설화 누나까지 가세를 해서 우리는 겨우 떨어질 수 있었다.
"아휴, 이 어린 것들이 꼬라지하고는....."
"마, 말을 하다니..."
예선이가 설화 누나를 보고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그러고보니 쟤는 설화 누나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들어가서 이야기 할게."
"너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성식이는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죄책감이 자라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