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승철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 없냐?"
"재수없는 소리하지말고 집중이나 해."
"새끼...."
나와 자유는 서로를 등지고 워커 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물들었지만 두 눈과 신경은 온통 전방에 쏠려있었다.
하지만 설화 누나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마치 준비운동을 하는듯 했다.
"죽기 전에 운동이라도 하는 거에요?"
자유가 비꼬는식으로 묻자 설화 누나는 허리 펴기를 3회 반복한 후 고개를 돌렸다.
"그럼 넌 죽어봤냐?"
"아뇨. 그런데 몇 분 후면 죽어있겠죠."
자유는 무덤덤하게 대답했지만 표정에는 온갖 심란함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설화 누나는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우리와 표정이 정반대였다.
뭔가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다랄까.......
"난 살기 싫어도 또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화 누나는 씨익 웃으면서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몰랐냐? 나 아직 저 놈들과 같은 부류야."
"......"
생각해보니 아직 설화 누나의 피부색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누나한테 따뜻한 기운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럼 둘이 잘해봐."
"....."
정말 설화 누나는 우리한테 손을 흔들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 우리는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와, 진짜. 목숨 걸고 살려줬더니 이제 와서 배신을 때려? 야이 거지 같은 년아!"
흥분한 자유가 온갖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설화 누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워커 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진짜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 지경에 빠졌는데...."
"젠장...."
이제 워커 들하고의 거리가 10m 남짓 가까워졌다.
비는 거의 그쳤지만 아직 태양은 먹구름 속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운을 기대할 순 없었다.
-쿠웨에엑!
워커 들은 더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놈 들의 살 썩는 비린내와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머리를 굴려봤지만 설화 누나가 걸어간 그 자리를 뚫고 가는 법 밖에는 없었다.
"자유야."
"응?"
"우리 저 길목을 어떻게든 뚫어보자."
"뭐, 뭐 제정신이야?"
"지금 우리한테 방법이 없잖아. 설화 누나가 지나간 자리를 어떻게든 뚫고 지나가야해."
"도대체, 왜?"
"왠지 그곳이 약해보여서."
"뭐? 그게 말이 되....."
-쿠에엑!
자유가 돌아보려는 찰나 갑자기 설화누나가 지나간 자리에서 놈 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머릿속의 한줄기 빛이 번쩍 지나갔다.
나는 설화 누나가 뛰어간 방향에서 몸을 180도 돌렸다.
"자유야! 지금이야! 그냥 쏴!"
"뭐?!"
-투다다다
-쿠에엑!
자유가 미쳐 대답하기 전에 조정간을 연사로 놓고 무작정 방아쇠를 당겼다.
반동때문에 총구가 자꾸 하늘을 향해 치솟았지만 하나라도 더 죽이자는 심산으로 놈 들의 다리를 의도적으로 겨냥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자유 역시 조정간을 연사로 놓고 사정없이 갈기기 시작했지만 덕분에 워커 들이 주춤거렸다.
"지금이야. 반대쪽으로 뛰어!"
"아우, 씨! 너 어쩌려고 그래!"
나와 자유는 설화 누나 있는곳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내 예감이 맞다면....그 예감만 맞다면....
-쿠에엑!
우리가 달려들자 놈 들이 반응하고 우리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마를 찔러!"
"...아오..."
M16 소총에 미리 꽂아놓은 대검을 번쩍 들자 마치 두부 썰듯이 놈의 이마가 반으로 갈라졌다.
-푸우욱!
평소라면 오금이 저려 못했을 짓을 정말 살려고 발악하니까 모든지 다 할 것만 같았다.
"으으으. 싫다!"
자유도 온갖 인상을 구기면서 대검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전혀 소용없는 짓이었다.
기껏해야 워커 살점을 베는 정도였다.
"야이 새꺄, 똑바로 죽여!"
"아, 징그러워서 못하겠다고!"
"아오, 죽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해라!"
정말 자유는 해도해도 너무했다.
무슨 파리 ㅤㅉㅗㅈ는 것도 아니고 대검을 이리저리 휘두르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누굴 신경쓸 처지가 못ㅤㄷㅚㅆ다.
놈 들은 쓰러진 놈을 짓밟고 더욱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어쩔 거야!"
"....조금만...."
정말 정신없게 놈 들을 죽이면서도 나는 누나가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자꾸 내 예상이 틀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
"헉헉! 승철아. 이제 우린 마지막인 것 같다."
5분이 지나고....
또 10분이 지나도 내 기대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야, 그렇게 시원찮아서 어디 살만하겠냐?"
정말 너무나도 반가운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처음엔 환청인가 싶었는데 내 직감은 점점 이것이 현실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누나!"
"어, 저 여자...."
놀랍게도 누나는 상가 지붕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찌나 그 모습이 반가운지 나는 당장 누나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사기를 좀 쳤는데 예상대로 허약한 놈 들이네."
"아오, 구경하지말고 좀 도와줘요!"
"아깐 거지같은 년이라매?"
"....아, 그건...."
역시 사람은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된다.
"자유야 넌 아무래도 혼자 열심히 살아야 할 팔자나 보다."
"젠장, 닥쳐!"
자유도 입으로는 투덜투덜대고 있지만 누나가 반가운 건 마찬가지였다.
누나의 존재만으로 우리는 서로 마음이 놓인다는 걸 느낀 것이다.
"그래. 내가 너희 들에게 빚도 있으니까 오늘만 도와준다."
설화 누나는 말이 끝나자 무섭게 상가 지붕에서 가뿐히 내려와 놈 들에게 한줄기 빛처럼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쿠에에에!
정말 순식간에 놈 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꽉 막혔던 우리 시야가 점점 트이기 시작했다.
"뭐하냐? 얼른 뛰어! 뒤에 놈 들 온다."
"아, 예."
우리는 서로 반갑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앞만보고 뛰기 시작했다.
"우리 차다!"
뒤ㅤㅉㅗㅈ아오는 놈 들과 우리 사이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었지만, 셋이서 충분히 차를 탈 여유는 있었다.
내가 얼른 운전석으로 뛰어들자, 마치 짜놓은 것처럼 자유는 뒷좌석으로 탔고 누나는 번넷 위로 한바퀴 굴러서 앞좌석 문을
열었다.
"출발해!"
누나가 의자에 앉아 소리를 지르자 나는 얼른 시동을 키고 기어를 1단으로 놓은 후 사정없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부우우웅!
"우아아악!"
RPM 게이지가 순식간에 치솟자 엔진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가자 자유가 뒤에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나 역시 핸들을 붙잡지 않았다면 벌써 앞 유리창과 진한 키스를 나누었을 것이다.
"어? 저거 네 개새끼 아냐?"
누나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난 얼른 그곳을 쳐다보았다.
"마, 맞아요! 담식아!"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담식이는 아까 우리와 헤어진 장소에서 꽤 떨어진 건물 구석에 숨어 벌벌 떨고있다가, 내가 소리를 지르자
꼬리를 흔들면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담식이의 속도로 시속 60km으로 달리는 차와 같이 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라 다를까 담식이는 순식간에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일단 차 멈출게요."
"미쳤어?! 그냥 달려. 내가 구할테니까."
누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벌컥 열더니, 옆 천장 손잡이를 ㅤㅂㅗㅌ자고 몸을 내밀었다.
"지금이야, 속도를 좀 줄여."
"예!"
누나가 팔을 쭉 내밀자 담식이 역시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누나 쪽으로 열심히 뛰었다.
"지금이다!"
담식이가 가까워지자 누나는 얼른 담식이 앞발을 낚아채 뒷자리에 냅다 던져버렸다.
"우왁!"
결국 뒷좌석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자유의 얼굴로 담식이가 날라들었지만 우린 결국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