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꽈드득!
"에구구...."
허리에서 자꾸 비명을 지른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온 몸이 쑤신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비까지 억수로 쏟아진다.
컨디션도 별로고 날씨까지 우중충하니 기분이 영 좋질않았다.
꼭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음냐...."
그런데 자유 이 자식은 뭐가 편한지 아주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다.
어쩐지 가위에 좀 눌린다 싶었더니 이 자식이 내 배에 발을 올려서 그런거였군.
아무튼 오늘은 어떻게되든 우리 아지트로 돌아가야한다.
그렇기 위해서 누나랑 자유를 먼저 깨워야겠군.
"야, 일어나."
"으음.... 조금만 더...."
"빨랑 안 일어나? 지금이 몇신줄이나 알아?"
"몇신데?"
"오전 11시. 얼른 일어나...."
"아, 진짜..."
자유는 투덜투덜대면서도 아직 덜 뜬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서 겨우 일어섰다.
"일단 밥먹고 출발하자."
"아, 정말! 뭐 먹을건데?"
"....."
앞으로 이 놈을 깨울 때는 먹을 것으로 유혹해야겠다.
"밥에 참치 통조림에 포장김치."
"에엑?! 다 인스턴트잖아."
"다 인스턴트라니? 엄연한 한식이야."
"쳇..."
자유는 투덜투덜대면서도 거실 한복판 떡하니 자리잡고 앉았다.
자, 이제 자유는 깨웠고 설화 누나만 남았군.
"누나...."
-벌컥!
내가 노크를 하기도 전에 누나가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그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쓰러질뻔했다.
"밥 없냐?"
"지, 지금 하려구요...."
내가 쓰러지던 말던 누나는 부스스한 긴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긴 하품을 해댔다.
"우하함~ 반찬은 뭐냐?"
"밥이랑 김치랑 참치캔이래요."
자유가 투덜투덜거렸지만 설화누나는 아무렇지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예? 그게 괜찮아요? 아, 요즘 입맛도 없는데..."
자유가 인상을 찌푸리자, 설화 누나가 갑자기 자유 얼굴 앞에 떡하니 앉았다.
"으힉!"
"그렇게 입맛이 없으면 너도 핏줄이 팔딱팔딱 뛰는 심장 한번 먹어볼래?"
"우엑! 내가 미쳤어요?"
"그럼 난 뭐 미쳐서 그걸 먹었겠냐?"
"......"
누나는 반장난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확실히 누나는 워커였고 바이러스에서 회복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는 점점 호전되고 있지만 언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럼 밥투정하지말고 걍 주는대로 먹어라."
"네...."
잔뜩 기가 눌린 자유는 고개만 끄덕일뿐 더 이상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이러니 집안이 좀 조용해지는군.
"넌 뭐해. 얼른 밥 차려와. 배고파"
"네..."
으음.
지금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오후 1시 20분.
우리 일행은 식사를 마치고 짐을 다 챙긴 후 조용히 상가 1층으로 내려갔다.
재수없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그걸 기회 삼아 자외선을 극히 싫어하는 워커 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버렸다.
"젠장. 오늘은 무쏘로 다 들이박아야겠네."
자유가 조용히 투덜거리면서 1층 입구 계단 아래를 힐끗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용히 나가기 힘들 것 같다."
아니라다를까 설화 누나는 자신의 베낭에서 군용 대검 한자루를 꺼내들었다.
"누, 누나 설마?"
자유가 놀란 눈으로 물었지만, 누나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검집에서 대검을 뽑아들었다.
"난 총질 잘 못해. 특히 그런 소총 같은 건 나에게 완전 쥐약이야. 난 이 사이즈가 딱이다."
"하지만 워커 들은 급소를 찔러도 안죽어요."
"여길 찌르면 되. 놈 들은 여기가 생명이야."
누나는 대검집 끝으로 내 이마를 쿡쿡 누르면서 설명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죠?"
내 질문 자체가 멍청했는지 누나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하긴 새꺄! 뒤에서 엄호해야지."
"그렇긴 한데 수가 너무 많아요. 뒤에서 당할 수도 있다구요."
"그럼 한 놈은 뒤에서 쏘고 한 놈은 날 엄호해."
"그게 말처럼 쉬워요?"
"쉽지 않으면 어떡할건데? 너네가 나보고 희망이라매."
"......."
누나는 정말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밤새 건너방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희망이 보이면 바로 잡으라고. 그게 내가 인생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중 하나다."
누나가 정말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자 나는 얼떨결에 고개까지 끄덕였다.
정말이지 누나의 사람 설득하는 방법은 별로인데 순순히 따르는 우리가 이상하다.
"그럼 출발하자."
"아, 저기 잠깐만!"
"왜?"
"아무리 그래도 계획은 세우고 나가야지요."
"계획 세울게 뭐가 있어? 어차피 차는 여기서 가까운데 있을 거 아냐?"
"그래. 승철아. 누나말대로 정면돌파해서 가자."
"안되 임마. 생존자 들은 항상 신중해야한다고."
"쳇!"
자유 역시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지 누나랑 같이 재촉했지만 그건 안될 말이었다.
워커 들은 평소 이 시간 때면 자외선을 피하느라 모두 숨어있지만 오늘은 비가 오기 때문에 사정이 달랐다.
물론 워커 들의 힘이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여러놈이 뭉쳐서 공격하면 우리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난 방금 설화 누나에게서 힌트까지 얻었다.
이것을 잘 이용해야만 우리가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하긴 신중하다고해서 나쁠 건 없지. 그래서 계획이 뭐야?"
누나 역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이성을 되찾았는지 다시 계획을 물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 간단한 약도를 그렸다.
"일단 저 문을 벗어나면 워커 들이 떼거지로 달려들거에요. 우선 문 앞에 있는 놈들을 따돌리고 우리는 반대쪽으로 달려야하죠."
"그리고 나서?"
"반대쪽으로 달리면서 3블럭만 더 가면 대로가 나타나고 거기에 우리 차가 있어요."
"그럼 답은 하나네!"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자유가 시원하게 볼일을 다 본 사람처럼 말이 이었다.
"저 놈들을 따돌리고 우리는 뒤지게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네."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계획을 왜 세우냐?"
"아우, 진짜 또 뭐가 문제인데."
"우리가 워커 들을 따돌리고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이 3블럭 골목에서 뭐가 또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야. 만약 재수없어서 골목 틈에서
워커 들에게 붙잡힌다고 생각해봐."
"으음....."
"일리가 있네...."
내 설명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작에 심각하면 얼마나 좋아.
내가 더 설명을 안해도 되고 말이야....
이런 기분파 들 같으니라고....
"좋아. 일단 네 계획대로 한다고 쳐. 그럼 저 문 앞에 있는 놈 들은 어떻게 따돌릴 건데?"
"흐음. 이럴 때를 대비해 따로 준비해 놓은 게 있지."
"뭔데?"
두 사람이 매우 궁굼한 표정으로 묻자 나는 가방에서 검은 봉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야? 뭔가 좀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자유가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리면서 내가 내민 봉지를 열어봤다.
"이, 이건!"
"그래. 생고기다. 물론 냉장시켜서 좀 상하긴 했지만 저 놈들이 그런걸 따지겠냐? 게다가 신선한
고기도 못먹은지 꽤 됐잖아."
"그럼 너는 이걸로 저 놈들을 유인하겠단 말이야?"
"그렇죠. 헨델과 그레텔의 방법을 역 이용 하는 거에요."
"과연...."
두 사람은 내 작전에 감명했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하지만 아직 내 작전을 다 설명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전의 핵심은 미끼가 아니에요. 바로 타이밍이죠."
"타이밍?"
"예. 워커 들은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쥐죽은 듯이 가야 해요. 총은 정말 긴박할 때 써야하구요."
"하지만 아까는 총을 들고 나가자며?"
"물론 그때는 그랬지만 누나가 대검을 든 모습을 보고 갑자기 더 안전하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
"그럼 워커 들을 칼로 죽이겠다는 거야?"
"응. 우리는 총에 대검을 꽂아서 공격할 거야. 누나는 아까 그 사이즈가 편하다고 했으니 됐고."
"아, 젠장. 군대 전역하면 모든 게 끝일 줄 알았더니, 사회에서 설마 총검술을 실전에 사용할 줄이야...."
자유는 손에 들고 있는 대검 날 끝을 끔찍한 표정으로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