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예선이는 하루 종일 창틀에 기대 어느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밖은 짙게 어둠이 깔렸고 한방울, 두방울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지만,
예선이는 그마저도 느껴지질 않는지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을 뿐이다.
한편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성식이의 마음 역시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예선이 마음 속에는 온통 그 놈 생각 뿐이다.
물론 그게 본인의 생각에만 머문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젠장. 저렇게 내색하지 않으면 안되나?'
그러나 사람 마음이 한번 한곳에 머물게되면 쉽게 떠나질 않는다.
야속하게도 성식이 역시 예선이에게 머물게 ㅤㄷㅚㅆ으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다만 언젠가 예선이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흠흠!"
성식이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예선아."
"......"
성식이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자신의 마음 좀 알아달라고 유치해지는 것보다 꾹 참는 게 백번났다.
"예선아."
"응? 아, 성식이구나.... 언제왔어?"
"방금."
"그랬구나.... 그런데 무슨 할 말 있어?"
"나는 꼭 할 말 있어야 되냐?"
"응? 뭐라고?"
성식이는 속이 확 뒤집어지는 걸 느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또 참아냈다.
"아니다. 괜히 나만 미친놈이지...."
"왜? 뭐 때문에 그래?"
"됐어. 이거나 봐바."
성식이는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손에 쥐고있던 서류뭉치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방금 노아에서 긴급 메일로 보낸 거야. 한번 확인해봐."
예선이는 성식이 얼굴을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서류를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 이거 정말이야?"
"모르겠다. 정말인지 거짓인지는.... 하지만 노아에서 괜히 허튼 소리를 할리가 있겠냐?"
"마, 말도안되."
예선이 얼굴은 이미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워커가 진화를 하다니... 그냥 기우일 뿐이겠지."
"기우? 아니, 이건 징조야. 스위스 생체 연구팀도 어느 정도 인정한 사실이랬어. 게다가 유럽 서부지역과 미국 뉴욕에서도 돌연변이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까지 하고 말이야."
"돌연변이?"
"응. 워커 들 외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하고 있나봐. 더불어서 뇌 기능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하고."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 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묻는 거잖아. 앞으로 어떡할거야?"
성식이는 정말 한치의 흐트림없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예선이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성식이 속은 또 한번 뒤집어진다.
"글쎄...난 잘...."
"넌 노아 지부장이야. 동시에 대한민국 남부지역 생존자 들의 대표이기도 하고."
"하지만...내가 뭘 어떻게 해야...."
"야! 승철이 그 새끼 걱정하듯이 이 일에도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
갑자기 성식이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지르자, 예선이의 표정이 꼭 워커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것 같이 일그러졌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너 그거 아냐? 승철이가 떠난 후에 하루종일 그러고 자빠져 있다는 거?"
"....."
예선이가 아무말 못하자 성식이 속은 뒤집힐대로 뒤집혔지만, 이제는 스스로 지쳐서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아무튼 빠른 시일내에 대책을 세워야 해."
"....그래...."
"그리고 느닷없이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아, 아냐. 내가 잘못한거지 뭐. 그동안 미안했어."
예선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목소리까지 죽이자 성식이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러는 자기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가는 예선이가 더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애들한테는 아직 말 안했어. 일단 어느정도 대책을 세운 후에 움직여야 애들도 걱정을 안하지."
"그래...."
"일단 난 돌아갈게. 천천히 생각해봐."
"아냐. 일단 같이 있자. 이 일은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시던가."
성식이는 그대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고, 예선이는 서류를 몇번씩 들춰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30분 쯤 흘렀을까?
예선이 표정은 한결 긴장에서 풀렸지만 걱정하는 기색은 여전했다.
"아무래도 방어 체계를 2단계 높혀야할 것 같아. 아파트 주변에 지뢰도 더 심고.... 아, 우리 지하 통로는 아직 멀쩡하지?"
"응. 거기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수시로 확인하고 있어. 아직 안전해."
지하통로가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예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통로는 아파트 보일러실로 통하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생존자 들이 파놓은 또 다른 통로가 아파트 단지 밖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아파트가 고립된다고 하더라도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 출고가 따로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내일 날이 밝는대로 애들하고 정찰 좀 나가야할 것 같아."
"일단 노아에서는 최대한 워커 수를 줄이라고 권고하고있어. 돌연변이가 되기 전에 없애버리라는 뜻 같아."
"그렇구나....."
그렇게 성식이와 예선이가 대책을 세우는 사이, 테이블 위에 놓인 무전기에서 빨간불이 깜빡였다.
누군가 이 무전기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누구지? 우리 애들은 항상 주파수를 고정시켜놓잖아."
예선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묻자, 성식이는 조심스럽게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치직-! 치직-!]
"누구야?"
[치직-! .......고.....기.....]
"뭐야? 어떤 새끼야?!"
안 그래도 예민해진 성식이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무전기 주파수 맞추는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고기가.....치직!....필요.....치직!....하.....치직!....다......]
"......"
듣기에도 불쾌한 저음이 성식이와 예선이를 완벽한 충격으로 내몰았다.
[.....너...희...가...사....는....곳....을....알....고....있....다.....먹....으....러....가...겠....다....
너...희....들...의...살...아...있....는....살...점....을.....]
"애들 다 깨워야 되! 어서!"
"흐흑!"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성식이가 소리를 지르자 예선이가 흐느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비상 사이렌을 울리려던 예선이의 팔을 성식이가 재빨리 붙잡았다.
"시끄럽게 하지말자. 그 놈들이 더 눈치챌지도 몰라."
"그, 그럼 어떻게 해?"
"일단 직접 ㅤㅉㅗㅈ아다니면서 애들을 깨우고 무장하자. 그리고 플랜A 계획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플랜 A를 실행했다가는 아지트 내 무기가 다 사라질 수도 있어."
예선이가 너무 뻔한 걱정을 하자 성식이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그 무전 못들었어? 놈 들은 우리가 놀랄 틈도 안주고 변해버렸어. 노아의 경고가 맞아버렸다고. 그것도 너무 빨리!"
"......흐흑!"
"지금 울 때가 아니야. 어서 우리도 무장 준비하자. 그런데 야간 순찰조는 왜 이렇게 무전이 안와?"
"야간 순찰조가 누군데?"
"제희랑 현구."
"오늘 어디로 돌았는데?"
예선이가 묻자 성식이는 거실에 걸린 동네 지도를 훑어보았다.
"이곳에서 반경 500m야. 그러니까....."
성식이가 손으로 지도를 가리키려는 동시에 온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예선이의 두 손도 입을 가려버렸다.
"서, 설마 그 애들....."
"이런 젠장!"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된 성식이가 얼른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제희야! 현구야! 내 말 들리면 어서 대답해!"
[치직!.....치직!....사각사각.....]
"........"
-쿵!
사각사각....
뼈와 살점이 뜯기는 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들리자 성식이는 무전기를 든 손이 풀려버렸고, 예선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사라져가던 놈 들이 다시 일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