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아파트.
그러니까 생존자 들의 아지트에서 벗어난지 5일이 지났다.
우리(나, 그녀, 담식이, 자유)는 맨션에서 불과 10분 거리 정도 떨어진 다른 상가를 찾아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챙겨놓은 식량과 옷가지 등을 내 차에 실어놓은 터라 그리 문제될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 상가는 위치상으로도 마트와 가까워 필요한 생필품은 바로 조달되었다.
다만 워커 들을 피해 뒷골목으로 멀리 돌아가 건물 틈 사이를 겨우 빠져나온 다음 뒷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담식이는 재갈을 채우고 내가 안아서 갔고, 그 뒤로 그녀가, 또 그 뒤로 자유가 따라붙었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옥탑방에 터를 잡고 혹시 모를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다.
우선 정문에 부비트랩(장난이 아니다. 정말 군용)을 설치하고 옥상에는 라이플 3자루를 부채꼴 각도로 설치했다.
게다가 옥상 한구석에는 수류탄 50발이 들어있는 상자를 든든하게 문옆에 두었다.
이정도 만발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위성 안테나를 어렵사리 설치해 노아와 위성 주파수를 맞추려고 3일 밤낮을 새버렸다.
전직 해커 출신인 성식이가 있었다면 2시간이면 해결될텐데 아쉬운대로 우리가 해볼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예전에 성식이한테 생필품을 제공하고 틈틈히 배워둔터라 하루 정도 더 지나면 설치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나름 앞마당 멀티(?)를 한 우리 들은 잠시 한시름을 놓고 옥상 난간에 기대 맞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후아~날씨 더럽게 좋네, 씨발."
"그러네. 젠장. 이 날씨 좋은 날 놀러도 못가고 이게 뭐냐."
"누가 아니래냐, 씨발. 세상이 멀쩡할 때는 일만 죽어라해서 못 놀았지, 세상이 좆같을 때는 저 좆같은 놈 들 때문에 못 놀지.. 아무튼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 좆같은 세상이야. 카~악 ㅤㅌㅞㅅ!"
자유는 난간 아래를 째려보며 무의식적으로 가래침을 뱉었다.
불행하게도 입 벌리고 ‘우우‘거리던 워커 한 놈이 자유의 황금빛 내용물을 그대로 삼키는 불상사가 벌어졌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만약 세상이 뒤집히기 6개월 전이라면 지금 모습보다 더 열폭해서 여기까지 ㅤㅉㅗㅈ아 올라왔을 것이다.
"야, 근데 자유야."
여전히 궁시렁거리는 자유를 부르자 속사포 욕질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넌 왜 날 따라왔냐?"
"왜긴 왜야. 그냥이지."
마치 매점에 갈 때 은근히 꼽사리 끼는 놈처럼 자유는 무의식적으로 받아쳤지만 슬쩍 내눈치를 보는 걸 보면 그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따라오는데 라이플 3자루랑 수류탄 50발을 들고오냐?"
"임마. 항상 사람은 보험을 들어야해.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누가 아냐?"
"아니 그러긴 한데..... 그때 다른 놈 들은 다들 피하는데 넌 왜 대수롭지 않게 날 자진해서 따라왔냐고."
"....."
자유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난간에 두 팔을 기대고 파란 하늘을 응시했다.
장난하냐?
하나도 안 멋있거든?
"심심해서."
"뭐?"
"몰라 새꺄. 그냥 심심해서 따라왔어."
"야, 심심할 게 따로있지....."
"아오 씨발. 새끼 존나 따지는 게 많네!"
자유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담배 꽁초를 발로 짓이겼다.
"예선이 그년이 너 좀 잘 감시하라더라. 사실 저 총이랑 수류탄도 예선이가 다 대준거야."
"뭐? 정말?"
"그래 새꺄. 그런데 그거 아냐? 예선이는 항상 널 걱정하고있어. 하긴 그년도 참 별난 년이야. 네 앞에서는 존나 그날인 여자처럼 성질부리
면서 꼭 뒤돌아서면 안절부절 못하고 말이야."
"....."
자유가 셔츠 앞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다시 꼬나물고 불을 짚이려는 찰나 갑자기 뭔가 떠오르는 듯 나에게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야, 혹시...."
"뭐?"
"예선이가..."
"예선이가 뭐?"
"널 좋아하는 걸 아닐까?"
"....."
이게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워커에게 뇌 좀 씹혔나?
"장난하냐?"
"아이 새꺄. 빼지말고 생각해봐. 딱 그림이 나오잖아. 앞에서는 쿨한척, 뒤에서는 안절부절. 그게 뭐냐? 널 좋아하는 거지."
"됐거든요."
"햐~예선이 그년도 참 독특한 년이네. 아니 그런 예쁘장한 년이 어째서 170cm 루저인 너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네 놈 아구창에 수류탄 50발 좀 던져줄까? 그리고 예선이랑 절대 그런 사이 아니니까 괜한 오해하지 말아라."
"짜식!"
자유가 내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임마?"
"여자의 마음은 항상 갈대이니라."
"뭔 개소리야. 이 손이나 치워."
"어허! 너보다 더 인생의 빡사게 살았던 선배 말을 좌심방 좌심실에 고이 간직해놔!"
"워커가 심장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크크큭!"
자유가 이번에는 난간을 붙잡고 크큭거리자 난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발로 그놈 엉덩이를 사정없이 까버렸다.
-퍼억!
"아, 이새끼야! 떨어질뻔 했다!"
"아, 그랬냐? 난 몰랐다. 왠 축구공 2개가 춤을 추길래 시져스킥을 날려달라고 소리친 줄 알았지."
"크큭! 야, 성식이도 예선이 좋아한다, 그거 아냐?"
"몰라 새꺄 이거나 쳐 먹어!"
난 자유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린 후 옥탑방 안으로 들어섰다.
옥탑방은 방이 2개다.
그리고 중간에 거실과 부엌이 있다.
운이 따른건지 전 상가 주인이 3층 상가 건물 모두 원룸으로 세를 내주고 자신은 옥상에 넉넉하게
집을 지어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조하면 불법아닌가?
아니면 말구....
어차피 우리한테 잘된 일이다.
그녀와 우리가 같이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물론 그녀는 아직 어떤 이유에 의해서 바이러스를 극복했는지 모른다.
아니,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이곳에 오기 전, 자유도 이 점에 대해 진지하게 충고하긴 했다.
"야, 승철아. 내가 보기에는 저 여자 워커와 인간의 중간 인것 같다."
"뭔 소리냐?"
"인간도 아니고...워커도 아니라는 소리이지."
"......"
과연 일리있는 소리였다.
아마 자유의 인생 중 옳은 소리 베스트 5에 꼽힐 정도로....
아무튼 난 생각을 정리하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